오징어의 배를 가르며
이월란(10/03/11)
밤새 냉장실에서 몸을 녹였을 너를 생각했지
그렇게 갈라질 뱃속에 너를 품었을 때
세상도 함께 품었음을
상온에서 금새 녹아버릴 내장 속의 얼음 알갱이들을
헤아리며, 해산하며
함께 해산해버린 꿈의 결정체를
땅빛 기억의 옷을 다 벗기고
하얀 알몸으로 너부러지는 현실을
한 주먹으로 감싸쥐어도 좋을
연체동물의 허물어지는 세월로 바다를 가르며
다리가 머리에 붙어 있어
머리로 너에게로 갔지
듣지도, 날지도 못하는 날개 같은 귀로
너에게로 갔지
적을 만나면 먹물을 토하고 달아난다잖아
그렇게 검푸러진 바다를
가상의 곡선으로 출렁인다지
짝짓기를 할 때마다 열 개의 다리로 감싸던
그 단단했던 바위 아래 주저앉고 나서야
비린 현실의 도마 위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