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게
이월란(10/03/17)
희망의 팔짱을 끼고 웨딩마치를 올렸을 때
나는 절망의 애인을 잊기로 했었다
꿈과 체념 사이를 이간질 하던
간신 같은 세월의 손을 잡고
남루했던 청춘을 등지고도 살아남은 중세는
매일 아침 희망과의 동침에서 깨어나도
나의 밑바닥까지 들여다 본 절망을
눅눅해지는 침실 머리맡에 앉혀두었음은
아침의 해아래 매일 지워내도
돌아서는 비루한 절망의 뒷모습이
어쩌면 고향처럼 늘 아늑했던 것임은
쥐고 있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매혹과 환멸의 강 사이
매일 아침 희망의 세례를 받고도
어둠이 오듯 매일밤 절망이 내리면
눈부신 절망이 새옷을 입고 내리면
오늘은 수족의 혁명에 가담하고
내일은 마법에 걸린 머리가 되었기 때문
보이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나를
결코 기소하지 못하는 나의 법정에서
희망의 청원을 거절하지 못해
보석으로 풀려나는 절망의 뒷모습으로도
희망을 향해 낯뜨거운 팔을 또 벌리고 말았기 때문
배를 맞추고 말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