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좋아서
이월란(10/04/15)
기다림을 만들어 본 적 있는가
피 마르듯 바싹바싹 타오르는 시간이 뜨거워
화인 같은 발자국 찍으며
자꾸만 뒤돌아 본 적 있는가
들꽃 날리는 삼월의 달력을 넘기면서
기다리는, 그런 겨울 끝의 봄이 아닌
약속 시간 앞에 두고 거울 앞에 서는
그런 발끝의 기다림이 아닌
뒤곁의 작은 새가 물어다 놓은 순간의 시간이
산을 넘고 사막을 지나 먼 가슴의 문을 두드리는
그런 기다림이 마냥 좋아서
기약 없는 밑그림, 자꾸만 그려 본 적 있는가
미세한 먼지와 눈을 맞추는
기다림 없는 시간이 불구의 생명 같아
숨소리 새기듯 시계바늘에 맥박을 걸어두고
살아있음을 태우던 그 시간
낙엽 태우는 매케함만이 살아 있는 냄새 같아
푸른 기억의 잎들을 한 잎 한 잎 떨구어 불을 내고
홀로 엎드린 오버랩 속에 멍, 앉아 있다
속물 같은 기다림에 속았어도
속지 않은 기분, 기다림의 길이 차라리
돌아보니 가장 아름다운 길이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