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비
이월란(10/03/19)
절실하지 못한 것들에 목을 맬 때마다
바람이 나를 흔들고 간 것은 우연이 아닐 터입니다
뒤로 걷는 사람들의 앞모습에 얼굴이 없었던 이유
돌풍 앞에서도 날아가지 않는 사람들의 질긴 뿌리를
간들거리는 나의 가는 뿌리로 건드려 볼 때마다
나는 뿌리 뽑힌 나무처럼 머릴 풀어헤치고
통곡을 묻었습니다
저기압의 후면을 따라붙은 황사의 난을 닮아
일시적인 소강지역에 몸을 숨기고 나서야
간사한 꽃이 되어 계절의 틈 사이를 살아내었지요
몇 번이고 갈아 엎은 길이 이제야 제대로 뚫렸을까요
알약 같은 수면의 간지러운 늪에서 발을 건질 때마다
다시 들어가고도 싶었지요
영원히 깨어나오지 않고도 싶었지요
양손에 들린 창과 방패가 서로 맞부딪칠 때마다
나는 어느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습니다
잃은 것을 찾는 두 손이 빈 주머니 속에서 나오지 못해도
성큼성큼 나침반을 새기며 겁도 없이 걷는 두 발이
내 것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습니다
얼굴이 없는 사람이고 싶었을 때조차
나는 고개를 꺾는 것이 그리도 무거웠습니다
황사의 계절이 다시 왔나요
땅엣 것들이 저렇게, 하늘에서도 내리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