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행사
이월란(10/07/23)
사계절의 의식을 치른 뒤 여름으로 오는 사람들
뒷모습만 보고도 만남이 되었다
폭염과 폭설 한 줌씩 양쪽 주머니에 들어 있을 것만 같아
왼 손을 잡으면 너무 시릴 것만 같고
오른 손을 잡으면 너무 뜨거울 것만 같은 사람들
환절의 문턱을 한꺼번에 넘어와
내가 건너 온 세월처럼 서 있다
긴긴 하지의 해와 긴긴 동지의 별들을 안온히 품고
평상의 명도로 앉아들 있다
하얀 겨울의 마음과 붉은 가을의 가슴을 감춰두고
나처럼 여름옷을 꺼내 입고 여름의 체온으로 말하는 사람들
환생하는 사계절의 전설을 서로의 입 속에 넣어주며
나의 나이를 먼저 먹고 투명히 앉아버린 사람들
방치되어버린 한 해의 거울처럼 내내 나를 비추다
짧은 인사말 사이사이로
지난여름의 문턱까지 금세 뛰어갔다 오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