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옥 평, 문인귀시인 시집 '낮달'에 대하여
2010.04.16 14:56
<참고>: 이 글은 고 송상옥회장님께서 지난 해에 있었던 나의 시집 출판기념회에 오셔서 말씀해 주신 것을 같은 해 10월 어느 날 이메일로 나에게 보내주셨다.
따라서 이글이 고인께서 문학에 관해 남기신 마지막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같이 나누고 싶어 올린다. -문인귀
문인귀 시인 칠순 기념 시집
‘낮달 출판에 붙여
송 상 옥
올해 칠순을 맞은 문인귀 시인의 새 시집 ‘낮 달’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작고한 원로 시인께서 6년쯤 전 미주 시인들의 시에 대한 말씀 중에 “시는 문 시인의 시가 괜찮지”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으며 그 분의 그 말씀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 분은 문 시인의 시에서 여러 면을, 또 여러 면에서 보셨겠지만, 저는 ‘순수성’을 보았습니다. 시에서의 순수성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고, 당연한 요소라 하겠으나, 그렇지 못 한 시들이 범람하고, 또 그 당연한 것을 담는 데에는 고도의 기량이 요구되고, 또한 차근차근 쌓은 연륜이 필요한 것입니다. 문 시인의 시를 갖고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건 전문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므로, 제가 여기서 말하기는 부적절해서 생략하고, 다만 한 걸음만 나아가 한마디로 바꾸어 말하면, 문 시인은 ‘시의 생명’이 어디 있는지 아는 시인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를 쓴다고 시의 생명이 어디 있는지,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다 아는 건 아닙니다. 누가 가르쳐서도, 어느 책에서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시인 스스로 깨우쳐야지요. 그러니까 문 시인은 이미 그 경지에, 흔히 말하는 원숙한 경지에 도달한 건 아닐까,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시의 순수성, 시의 생명, 그것은 곧 시심이기도 합니다. 시를 생각하는 마음, 시를 사랑하는 마음, 시를 읽는 마음, 시를 짓는 마음, 시를 갈구하는 마음, 시를 캐내는 마음.... 이런 것들이 다 시심입니다. 시심을 키운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갈수록 복잡하고 오염 투성이의 세상에서, 세속을 도외시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 와중에서 진정 시심을 지니고 가꾸는 그 자체가 어려운 것입니다. 시뿐만 아니고 소설도 마찬가지이나, 문학 장르의 형식상 시에서 그 중요성이 더한 것입니다.
문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달이 많이 등장하고, 그 속에 보석인양 새하얀 박, 박꽃이 몇 군데 눈에 뜨입니다. 6년 전의 두 번째 시집 ‘떠도는 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 새하얀 박꽃에 내리는 이슬마다
촘촘히 들어앉는 이유에 대하여
웃는 사람보다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을 찾아가는 이유에 대하여
- ‘달의 침묵’ 일부
칠흑 밤 그 어둠 속에서도
돌아서서 내외하셨을 어머니의 숨결과
소리 없이 다가서시던 아버지의 하얀 웃음이
희고 보드란 새하얀 박속에
-‘비밀스런 일’ 일부
밤이 깊어서야
아내 손잡고 밖으로 나가본
훤한 보름달, 거기로
훌쩍 옮겨 앉으시는 두 분의 뒷모습
여태
저희 지붕 위에 내려 계셨던가봐요.
어머님,
아버님,
-‘한가위 밤에’ 전문
문 시인의 시력, 연륜을 말해주는 구절들입니다.
‘시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시에서 문 시인은 ‘한 장 한 장 뜯기어 쏘시개로 타버리는 시집 때문에, 시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아.“하고 시를 낮춰보거나 부정하는 사람들과 풍조에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눈길을 끄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단 두 줄의 ‘작가의 말’입니다.
“시 한 편 완성할 때마다 당신에게 먼저 읽어주던 마음으로 이 시집도 당신한테 먼저 드립니다.”
‘당신’은 일생의 반려인 아내일 수도 있고, 자식들일 수도 있고, 시인의 마음속 스승일 수도 있고, 시집을 대할 많은 사람, 즉 우리 모두일 수도 있습니다. 또 이 글에는 자신의 분신인 또 한 권의 시집을 내게 된 기쁨, 자신이 쓴 시작품들에 대한 자랑스러움, 시인으로서의 겸손과 오만까지도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짧으면서도 많은 걸 담고 있는 ‘작가의 말이 또 있겠습니까.
시집 표지 안 쪽 날개에 나와 있는 시인 소개 글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문 시인은 다 아시는 대로 ‘시와 사람들’ 동인회를 만들어 뜻을 같이 하는 시인들과 함께 시심 개발과 시 나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시 전도사 역할을 꾸준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당 나라 시인 두보는 ‘인생칠십고래희’라고 했습니다. 고래로 일흔까지 사는 건 드문 일이라는 뜻이지요. 그건 그 시절에나 해당되던 말입니다만, 시를 쓰며 여기에 이른 것 또한 축하할 일입니다.
문 시인께서 앞으로도 시 창작과 시 전도사로서의 일을 더욱 정력적으로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 2009년 월 일
.........................................................................
따라서 이글이 고인께서 문학에 관해 남기신 마지막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같이 나누고 싶어 올린다. -문인귀
문인귀 시인 칠순 기념 시집
‘낮달 출판에 붙여
송 상 옥
올해 칠순을 맞은 문인귀 시인의 새 시집 ‘낮 달’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작고한 원로 시인께서 6년쯤 전 미주 시인들의 시에 대한 말씀 중에 “시는 문 시인의 시가 괜찮지”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으며 그 분의 그 말씀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 분은 문 시인의 시에서 여러 면을, 또 여러 면에서 보셨겠지만, 저는 ‘순수성’을 보았습니다. 시에서의 순수성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고, 당연한 요소라 하겠으나, 그렇지 못 한 시들이 범람하고, 또 그 당연한 것을 담는 데에는 고도의 기량이 요구되고, 또한 차근차근 쌓은 연륜이 필요한 것입니다. 문 시인의 시를 갖고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건 전문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므로, 제가 여기서 말하기는 부적절해서 생략하고, 다만 한 걸음만 나아가 한마디로 바꾸어 말하면, 문 시인은 ‘시의 생명’이 어디 있는지 아는 시인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를 쓴다고 시의 생명이 어디 있는지,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다 아는 건 아닙니다. 누가 가르쳐서도, 어느 책에서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시인 스스로 깨우쳐야지요. 그러니까 문 시인은 이미 그 경지에, 흔히 말하는 원숙한 경지에 도달한 건 아닐까,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시의 순수성, 시의 생명, 그것은 곧 시심이기도 합니다. 시를 생각하는 마음, 시를 사랑하는 마음, 시를 읽는 마음, 시를 짓는 마음, 시를 갈구하는 마음, 시를 캐내는 마음.... 이런 것들이 다 시심입니다. 시심을 키운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갈수록 복잡하고 오염 투성이의 세상에서, 세속을 도외시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 와중에서 진정 시심을 지니고 가꾸는 그 자체가 어려운 것입니다. 시뿐만 아니고 소설도 마찬가지이나, 문학 장르의 형식상 시에서 그 중요성이 더한 것입니다.
문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달이 많이 등장하고, 그 속에 보석인양 새하얀 박, 박꽃이 몇 군데 눈에 뜨입니다. 6년 전의 두 번째 시집 ‘떠도는 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 새하얀 박꽃에 내리는 이슬마다
촘촘히 들어앉는 이유에 대하여
웃는 사람보다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을 찾아가는 이유에 대하여
- ‘달의 침묵’ 일부
칠흑 밤 그 어둠 속에서도
돌아서서 내외하셨을 어머니의 숨결과
소리 없이 다가서시던 아버지의 하얀 웃음이
희고 보드란 새하얀 박속에
-‘비밀스런 일’ 일부
밤이 깊어서야
아내 손잡고 밖으로 나가본
훤한 보름달, 거기로
훌쩍 옮겨 앉으시는 두 분의 뒷모습
여태
저희 지붕 위에 내려 계셨던가봐요.
어머님,
아버님,
-‘한가위 밤에’ 전문
문 시인의 시력, 연륜을 말해주는 구절들입니다.
‘시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시에서 문 시인은 ‘한 장 한 장 뜯기어 쏘시개로 타버리는 시집 때문에, 시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아.“하고 시를 낮춰보거나 부정하는 사람들과 풍조에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눈길을 끄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단 두 줄의 ‘작가의 말’입니다.
“시 한 편 완성할 때마다 당신에게 먼저 읽어주던 마음으로 이 시집도 당신한테 먼저 드립니다.”
‘당신’은 일생의 반려인 아내일 수도 있고, 자식들일 수도 있고, 시인의 마음속 스승일 수도 있고, 시집을 대할 많은 사람, 즉 우리 모두일 수도 있습니다. 또 이 글에는 자신의 분신인 또 한 권의 시집을 내게 된 기쁨, 자신이 쓴 시작품들에 대한 자랑스러움, 시인으로서의 겸손과 오만까지도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짧으면서도 많은 걸 담고 있는 ‘작가의 말이 또 있겠습니까.
시집 표지 안 쪽 날개에 나와 있는 시인 소개 글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문 시인은 다 아시는 대로 ‘시와 사람들’ 동인회를 만들어 뜻을 같이 하는 시인들과 함께 시심 개발과 시 나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시 전도사 역할을 꾸준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당 나라 시인 두보는 ‘인생칠십고래희’라고 했습니다. 고래로 일흔까지 사는 건 드문 일이라는 뜻이지요. 그건 그 시절에나 해당되던 말입니다만, 시를 쓰며 여기에 이른 것 또한 축하할 일입니다.
문 시인께서 앞으로도 시 창작과 시 전도사로서의 일을 더욱 정력적으로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 2009년 월 일
.........................................................................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22 | 혼돈 | 문인귀 | 2016.12.06 | 125 |
121 | 윤석훈 시인의 부음을 듣고 | 문인귀 | 2015.05.19 | 394 |
120 | 하루살이 노래 | 문인귀 | 2013.02.26 | 453 |
119 | '시의 존재감에 충실한 삶에의 추구' 배송이 시집 '그 나무'에 대하여 | 문인귀 | 2011.08.16 | 791 |
118 | 「맨살나무 숲에서」띄우는 울음의 미학 - 정국희 시집 「맨살나무 숲에서」 | 문인귀 | 2011.03.05 | 833 |
117 | "혼돈混沌속의 존재, 그 인식과 시적미학詩的美學" 정어빙 시집 <이름 없는 강> | 문인귀 | 2011.02.24 | 838 |
» | 송상옥 평, 문인귀시인 시집 '낮달'에 대하여 | 문인귀 | 2010.04.16 | 955 |
115 | 시공(時空)을 섭력(涉歷)해 온 존재, 그 ‘길’에 대하여 -오연히 시집 '호흡하는 것들은 모두 빛이다' | 문인귀 | 2010.02.11 | 941 |
114 | 감도는 기쁨을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과 결실 | 문인귀 | 2007.12.03 | 999 |
113 | 아픔으로 표출되는 회귀(回歸)에의 미학 -정문선시집 '불타는 기도' | 문인귀 | 2007.11.30 | 1024 |
112 | 존재적 가치와 ‘알맞게 떠 있음’의 미학<강학희 시집 '오늘도 나는 알맞게 떠있다'> | 문인귀 | 2007.11.13 | 977 |
111 |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 | 문인귀 | 2007.08.27 | 754 |
110 | 한가위 밤에 | 문인귀 | 2007.07.24 | 616 |
109 | 깊은 밤에 | 문인귀 | 2007.07.24 | 659 |
108 | 달의 침묵 | 문인귀 | 2007.07.23 | 709 |
107 | 달아달아, 지금은 어디에 | 문인귀 | 2007.07.23 | 689 |
106 | 문인이라는 이름의 전차 | 문인귀 | 2006.08.19 | 606 |
105 | 새로운 천년에는 새로운 미주문학을 | 문인귀 | 2006.08.19 | 580 |
104 | '가난한 마음의 형상화를 위한 겸허의 미학' 조영철 시집 「시애틀 별곡」 | 문인귀 | 2008.12.05 | 1260 |
103 | 하늘 길 | 문인귀 | 2008.12.01 | 8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