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존재감에 충실한 삶에의 추구' 배송이 시집 '그 나무'에 대하여
2011.08.16 08:18
시의 존재감에 충실한 삶에의 추구
-배송이 시집 ‘그 나무’ 에 대하여-
문인귀/시인
나는 “시는 지천(地天)에 널려있다” 라는 말을 즐겨 쓴다.
가시적 현실세계를 비롯해서 가상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존재’라는 개념 하에 형성된 사물의 군집(群集)이다. 이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 그 자체가 사물군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물의 존재가치를 확인 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는 시작(詩作)활동을 하는 시인에게 있어서 사물군, 즉 그가 속해있는 공간이야말로 그에게 제공되는 무한한 시의 소재요 대상의 세계일 것이다.
시가 해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란 삶의 시화(詩化)이다. 시를 삶에 적용하며 삶 자체가 시가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온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과연 그런 세상이 도래할까,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사물로부터 찾아낸 그 가치가 나를 둘러 싼 공간인 사물군으로 되돌려질 때 삶의 시화란 우리에게 요원하기만 한 일이 아니다. 꽃이 꽃 되게 하고 내가 그 꽃이 됨으로써 내가 아름다워지게 하는 요술은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1. 시화(詩化)
나는 배송이 시인의 시를 보면서 배시인은 앞서 말한 ‘삶의 시화’를 위해 노력하는 시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시 ‘그 맑음처럼’은 아침에 피어있는 꽃과 꽃잎에 얹혀있는 이슬에 자신을 비춰보는 모습을 그렸다. 나도 저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하는 소원인 것이다. 이렇게 꽃을 꽃이게 두고, 이슬의 맑음을 맑음이게 둔 채 그것에 자신을 비추며 함께, 맑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습이야말로 삶의 시화 현상이 아닐까.
가을꽃이
웃고 있습니다
아침 공기 속에
얹힌 이슬이
참 맑습니다
이슬에
내 모습 비추일까
들여다봅니다
혹
그 맑음처럼
나도 그리
고울까 싶어서요.
-그 맑음처럼- 전문
다음 몇 편의 시에서도 삶의 시화에 대한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도심을 드나드는 프리웨이 출입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꽃이나 과일을 싸들고 운전자의 눈길을 좇아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시의 화자도 처음에는 체리를 파는 그 남자를 향해 고개를 흔들어 필요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가 다시 ‘5달러어치의 가난을 그에게서 떼어 낸다’는 마음으로 체리 한 봉지를 건네받는다. 집에 돌아와 체리를 씻으면서 자신의 가난 또한 덜어내는 모습이 보인다. 풍요로 채워지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어떤 장날에’에서도 같은 시도를 볼 수 있다.
-전략-//프리웨이에서 내리는 길목에/검게 그을린 얼굴의 남자가/하얀 이를 드러내며/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체리를 흔들어댄다//고개를 젓자/어정쩡 내리는 팔에/체리봉지가 무겁다//5달러어치의 가난을/그에게서 떼어 내/운전석 옆자리에 던져놓고/엑쎌레터를 밟는 발에 힘을 주었다//소쿠리에 체리를 담아/수돗물을 콸콸 틀어 가난을 씻어낸다/그릇에/활짝 웃던 그의 하얀 치아가 가득/싱싱하다.
-체리 파는 남자-에서
-전략-시끌벅적한 시장 골목/양 옆으로 늘어선 난전/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그 할머니/이끌리듯 다가간 내게 보내오는/간절한 눈빛/깊게 패인 주름살에 들어있는/기다림/소쿠리엔 지친 산나물이...//있는 것 다 주세요/내 손을 잡아주는 거친 손/뭉클한 행복에 눈시울이 떨린다//그날/기다림을 먹었다.
-어떤 장날에-에서
2. 모성
배시인의 시 쓰기는 ‘어머니’의 삶과 생이 아우른 모성애에 그 원천을 두고 있다. 그의 모성에 대한 신뢰는 시 ‘어떤 기억’에서 시작된 7살 때의 기억으로부터 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인간의 모성에 대한 신뢰의 의미에 머물지 않고 더 큰 어머니인 신을 향한 신뢰의 선언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신봉하는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삶의 실체를 다루기에 앞서 우선 그의 시의 온상인 모성을 살펴본다.
시 ‘어떤 기억’은 ‘그해 겨울/오지게 추웠던 날 아침/마을 우물엔 나 혼자였다’로 시작 된다. 7살짜리 여아가 동생 기저귀 빨래를 했던 기억이다. 어떻게 해서 갓난이 동생이 아랫목에 뉘어있는지, 그 생각에 골똘 하느라 추운 줄 모르고 빨래를 한다. 추위에 젖은 손이 이고 간 대야에 달라붙었어도 추웠던 기억은 없다. 화자는 대야에 달라붙은 언 손을 녹여주며 흘리는 엄마의 눈물을 보며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라는 고백을 한다. 모성은 바로 이러한 경험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또한 딸아이가, 여자이기 때문에 감당해야하는 일에 대한 어머니의 안쓰러운 마음 역시 어머니의 마음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세상에 예수를 보내면서 하나님께서도 어머니의 맘 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엄니가
감나무를 심자고 하신다
땅을 파고
구덩이에 거름을 섞고
묘목을 심은 뒤
꼭꼭 다지시는 정성어린 손길
따스한 볕 아래서도 춥다 셨는데
덧입었던 조끼를 벗으시는 건
고염나무가 감나무 되기 위해 접붙임 하듯
엄니 마음에 어린 생명 접붙임 된 것일까
감꽃 엮어 목에 걸고
눈부신 관을 쓴
어린 딸의 팽팽한 목소리
사방에 퍼지는 것 보셨는지 몰라
주절주절 꺼내놓으신 추억의 토막들
햇살만큼이나 익은 감이되어
벌서부터 온 몸에
주렁주렁 열렸는지 몰라
왜 이렇게 더운지 모르겠다며
날씨 탓이라도 하시려는지
연신 하늘을 올려다보시는
울 엄니
-접붙임- 전문
이처럼 어머니는 팔순이 되어서도 감나무 접붙이기를 딸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그것은 ‘엄니 마음에 어린생명 접붙임’이 된 것이며 또한 거기서 ‘햇살만큼이나 익은 감이 돼/ 벌써부터 온 몸에/주렁주렁 열리는’ 것을 보는 형상으로, 그리고 덥다는 핑계로 하늘을 자꾸 올려다보는 울 엄니가 된다. 그러는 엄니의 모습은 이제 딸에게 할 일 다 했다는 것이리라.
어머니는 한 고목으로 바뀌어도 그의 얼굴에 ‘주름마다 빙긋한 웃음이 고이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접붙여 자란 가지에 맺는 행복으로 물결치는 푸르름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리라.
3. 관계
관계란 존재 하는 것끼리 연결되어 이루는 조화이다. 여기서 말하는 조화를 이룬다 하는 것은 사물과 사물의 평행적 조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든 존재의 경중과 높낮이와 질의 다름에 따라 상대 되는 다른 존재가 좌우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시 ‘이방인’에서는 더불어 사는 삶의 균형에서 화자는 꽃밭에 들어온 잡초와 달팽이를 잡아 죽이는 존재가 됨으로 한 존재에 의해 다른 존재의 가치관을 변형시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다음 시에서는 위에 말한 ‘관계로 인해 존재의 가치관이 변형되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가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싱그러운 나무였고
안락한 의자였다
너를 바라보며
나는 날마다 채워져 갔고
너는 날마다 야위어 갔다
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깨닫게 되었다
나를 채우기 위해
너의 빛 전부를 살랐다는 것을,
네가 없는 세상은 어둠이지만
내 안에서 너는 등불이 되었다
-달과 나- 전문
4. 불꽃
배송이시인의 시는 삶 속에서 마주치는 사물에서 자신을 찾는다. 그리고 찾아낸 자아를 바라보며 새로운 존재로의 발돋움을 위해 끊임없이 다듬어댄다. 그것은 그에게 있는 확고한 신앙 때문 일 것이며 이 일에 자신을 두려움 없이 던지고 있다.
-전략-//연필을 깎아 글을 쓴다//오래된 기억 속에/깎을 때마다 맡아지던/향나무의 내음처럼/은은한 향으로 피어나/사각사각/쓰고 지우고 다시 또 써보는/글//지울 수 있어 편안한 연필처럼/모나지 않게/밝고 맑은 향기를 품어 내는/결 고운 사람으로 사라지고 싶다.
-마음의 소리- 에서
유행 지나고/세월 따라 변한 몸매에 맞게/입을 수 없었던 옷을 고쳤다//눌러 붙은 욕심/날실씨실에 숨었던/죄들을 잘라내고/좀 먹은 양심을 수선 한다//몸에 딱 맞아 떨어진다/맵시가 절로난다.
-옷 수선- 전문
타오르지 않으면
나는 없어요
뜨겁게 타올라야
내가 있는 거예요
나를 태우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예요
-불꽃- 전문
나는 9년 전에 당시 내가 출석하고 있던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남가주사랑의 교회에서 개강한 시 창작교실에 지금은 한국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상만목사의 소개로 배시인을 처음 만났다. 배송이시인은 M장애인 선교회의 사랑교실에서 자폐증으로 전신을 쓰지 못하는 아동들을 위해 오랜 기간을 봉사하고 있는 분이었다. 더욱 나를 놀랍게 했던 것은 배시인은 자신의 신장 하나를 떼어 이웃에게 이식시켜 줌으로 죽어가던 생명의 불씨를 다시 소생시켰다는 소개자의 말이었다.
내가 그의 사적인 일을 이곳에 이렇게 올리는 것은 그는 시 창작활동에 앞서 이미 삶으로 시를 쓰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다. 시 ‘불꽃’에서처럼 ‘타오르지 않으면 나는 없다’는 말의 실천, ‘나를 태우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다’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을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그를, 그의 시 몇 편만으로 소개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본인에게 의논 한마디 하지 않고 이렇게 그의 시와 삶을 함께 소개하는 것이며 아울러 켄터키에 사는 친구 분과 배시인이 벌이고 있는 선교사역 또한 시의 존재감에 충실한 삶에의 추구인 것을 들어 격려와 감사를 드린다.
-배송이 시집 ‘그 나무’ 에 대하여-
문인귀/시인
나는 “시는 지천(地天)에 널려있다” 라는 말을 즐겨 쓴다.
가시적 현실세계를 비롯해서 가상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존재’라는 개념 하에 형성된 사물의 군집(群集)이다. 이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 그 자체가 사물군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물의 존재가치를 확인 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는 시작(詩作)활동을 하는 시인에게 있어서 사물군, 즉 그가 속해있는 공간이야말로 그에게 제공되는 무한한 시의 소재요 대상의 세계일 것이다.
시가 해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란 삶의 시화(詩化)이다. 시를 삶에 적용하며 삶 자체가 시가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온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과연 그런 세상이 도래할까,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사물로부터 찾아낸 그 가치가 나를 둘러 싼 공간인 사물군으로 되돌려질 때 삶의 시화란 우리에게 요원하기만 한 일이 아니다. 꽃이 꽃 되게 하고 내가 그 꽃이 됨으로써 내가 아름다워지게 하는 요술은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1. 시화(詩化)
나는 배송이 시인의 시를 보면서 배시인은 앞서 말한 ‘삶의 시화’를 위해 노력하는 시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시 ‘그 맑음처럼’은 아침에 피어있는 꽃과 꽃잎에 얹혀있는 이슬에 자신을 비춰보는 모습을 그렸다. 나도 저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하는 소원인 것이다. 이렇게 꽃을 꽃이게 두고, 이슬의 맑음을 맑음이게 둔 채 그것에 자신을 비추며 함께, 맑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습이야말로 삶의 시화 현상이 아닐까.
가을꽃이
웃고 있습니다
아침 공기 속에
얹힌 이슬이
참 맑습니다
이슬에
내 모습 비추일까
들여다봅니다
혹
그 맑음처럼
나도 그리
고울까 싶어서요.
-그 맑음처럼- 전문
다음 몇 편의 시에서도 삶의 시화에 대한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도심을 드나드는 프리웨이 출입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꽃이나 과일을 싸들고 운전자의 눈길을 좇아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시의 화자도 처음에는 체리를 파는 그 남자를 향해 고개를 흔들어 필요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가 다시 ‘5달러어치의 가난을 그에게서 떼어 낸다’는 마음으로 체리 한 봉지를 건네받는다. 집에 돌아와 체리를 씻으면서 자신의 가난 또한 덜어내는 모습이 보인다. 풍요로 채워지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어떤 장날에’에서도 같은 시도를 볼 수 있다.
-전략-//프리웨이에서 내리는 길목에/검게 그을린 얼굴의 남자가/하얀 이를 드러내며/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체리를 흔들어댄다//고개를 젓자/어정쩡 내리는 팔에/체리봉지가 무겁다//5달러어치의 가난을/그에게서 떼어 내/운전석 옆자리에 던져놓고/엑쎌레터를 밟는 발에 힘을 주었다//소쿠리에 체리를 담아/수돗물을 콸콸 틀어 가난을 씻어낸다/그릇에/활짝 웃던 그의 하얀 치아가 가득/싱싱하다.
-체리 파는 남자-에서
-전략-시끌벅적한 시장 골목/양 옆으로 늘어선 난전/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그 할머니/이끌리듯 다가간 내게 보내오는/간절한 눈빛/깊게 패인 주름살에 들어있는/기다림/소쿠리엔 지친 산나물이...//있는 것 다 주세요/내 손을 잡아주는 거친 손/뭉클한 행복에 눈시울이 떨린다//그날/기다림을 먹었다.
-어떤 장날에-에서
2. 모성
배시인의 시 쓰기는 ‘어머니’의 삶과 생이 아우른 모성애에 그 원천을 두고 있다. 그의 모성에 대한 신뢰는 시 ‘어떤 기억’에서 시작된 7살 때의 기억으로부터 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인간의 모성에 대한 신뢰의 의미에 머물지 않고 더 큰 어머니인 신을 향한 신뢰의 선언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신봉하는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삶의 실체를 다루기에 앞서 우선 그의 시의 온상인 모성을 살펴본다.
시 ‘어떤 기억’은 ‘그해 겨울/오지게 추웠던 날 아침/마을 우물엔 나 혼자였다’로 시작 된다. 7살짜리 여아가 동생 기저귀 빨래를 했던 기억이다. 어떻게 해서 갓난이 동생이 아랫목에 뉘어있는지, 그 생각에 골똘 하느라 추운 줄 모르고 빨래를 한다. 추위에 젖은 손이 이고 간 대야에 달라붙었어도 추웠던 기억은 없다. 화자는 대야에 달라붙은 언 손을 녹여주며 흘리는 엄마의 눈물을 보며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라는 고백을 한다. 모성은 바로 이러한 경험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또한 딸아이가, 여자이기 때문에 감당해야하는 일에 대한 어머니의 안쓰러운 마음 역시 어머니의 마음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세상에 예수를 보내면서 하나님께서도 어머니의 맘 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엄니가
감나무를 심자고 하신다
땅을 파고
구덩이에 거름을 섞고
묘목을 심은 뒤
꼭꼭 다지시는 정성어린 손길
따스한 볕 아래서도 춥다 셨는데
덧입었던 조끼를 벗으시는 건
고염나무가 감나무 되기 위해 접붙임 하듯
엄니 마음에 어린 생명 접붙임 된 것일까
감꽃 엮어 목에 걸고
눈부신 관을 쓴
어린 딸의 팽팽한 목소리
사방에 퍼지는 것 보셨는지 몰라
주절주절 꺼내놓으신 추억의 토막들
햇살만큼이나 익은 감이되어
벌서부터 온 몸에
주렁주렁 열렸는지 몰라
왜 이렇게 더운지 모르겠다며
날씨 탓이라도 하시려는지
연신 하늘을 올려다보시는
울 엄니
-접붙임- 전문
이처럼 어머니는 팔순이 되어서도 감나무 접붙이기를 딸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그것은 ‘엄니 마음에 어린생명 접붙임’이 된 것이며 또한 거기서 ‘햇살만큼이나 익은 감이 돼/ 벌써부터 온 몸에/주렁주렁 열리는’ 것을 보는 형상으로, 그리고 덥다는 핑계로 하늘을 자꾸 올려다보는 울 엄니가 된다. 그러는 엄니의 모습은 이제 딸에게 할 일 다 했다는 것이리라.
어머니는 한 고목으로 바뀌어도 그의 얼굴에 ‘주름마다 빙긋한 웃음이 고이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접붙여 자란 가지에 맺는 행복으로 물결치는 푸르름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리라.
3. 관계
관계란 존재 하는 것끼리 연결되어 이루는 조화이다. 여기서 말하는 조화를 이룬다 하는 것은 사물과 사물의 평행적 조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든 존재의 경중과 높낮이와 질의 다름에 따라 상대 되는 다른 존재가 좌우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시 ‘이방인’에서는 더불어 사는 삶의 균형에서 화자는 꽃밭에 들어온 잡초와 달팽이를 잡아 죽이는 존재가 됨으로 한 존재에 의해 다른 존재의 가치관을 변형시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다음 시에서는 위에 말한 ‘관계로 인해 존재의 가치관이 변형되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가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싱그러운 나무였고
안락한 의자였다
너를 바라보며
나는 날마다 채워져 갔고
너는 날마다 야위어 갔다
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깨닫게 되었다
나를 채우기 위해
너의 빛 전부를 살랐다는 것을,
네가 없는 세상은 어둠이지만
내 안에서 너는 등불이 되었다
-달과 나- 전문
4. 불꽃
배송이시인의 시는 삶 속에서 마주치는 사물에서 자신을 찾는다. 그리고 찾아낸 자아를 바라보며 새로운 존재로의 발돋움을 위해 끊임없이 다듬어댄다. 그것은 그에게 있는 확고한 신앙 때문 일 것이며 이 일에 자신을 두려움 없이 던지고 있다.
-전략-//연필을 깎아 글을 쓴다//오래된 기억 속에/깎을 때마다 맡아지던/향나무의 내음처럼/은은한 향으로 피어나/사각사각/쓰고 지우고 다시 또 써보는/글//지울 수 있어 편안한 연필처럼/모나지 않게/밝고 맑은 향기를 품어 내는/결 고운 사람으로 사라지고 싶다.
-마음의 소리- 에서
유행 지나고/세월 따라 변한 몸매에 맞게/입을 수 없었던 옷을 고쳤다//눌러 붙은 욕심/날실씨실에 숨었던/죄들을 잘라내고/좀 먹은 양심을 수선 한다//몸에 딱 맞아 떨어진다/맵시가 절로난다.
-옷 수선- 전문
타오르지 않으면
나는 없어요
뜨겁게 타올라야
내가 있는 거예요
나를 태우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예요
-불꽃- 전문
나는 9년 전에 당시 내가 출석하고 있던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남가주사랑의 교회에서 개강한 시 창작교실에 지금은 한국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상만목사의 소개로 배시인을 처음 만났다. 배송이시인은 M장애인 선교회의 사랑교실에서 자폐증으로 전신을 쓰지 못하는 아동들을 위해 오랜 기간을 봉사하고 있는 분이었다. 더욱 나를 놀랍게 했던 것은 배시인은 자신의 신장 하나를 떼어 이웃에게 이식시켜 줌으로 죽어가던 생명의 불씨를 다시 소생시켰다는 소개자의 말이었다.
내가 그의 사적인 일을 이곳에 이렇게 올리는 것은 그는 시 창작활동에 앞서 이미 삶으로 시를 쓰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다. 시 ‘불꽃’에서처럼 ‘타오르지 않으면 나는 없다’는 말의 실천, ‘나를 태우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다’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을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그를, 그의 시 몇 편만으로 소개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본인에게 의논 한마디 하지 않고 이렇게 그의 시와 삶을 함께 소개하는 것이며 아울러 켄터키에 사는 친구 분과 배시인이 벌이고 있는 선교사역 또한 시의 존재감에 충실한 삶에의 추구인 것을 들어 격려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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