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살나무 숲에서」띄우는 울음의 미학
     - 정국희의 시 세계 -

                                                                    문인귀/시인


  
   시를 ‘잘 쓴 시’ ‘좋은 시’로 구분해 말한다. ‘좋은 시’는 무엇을 썼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일 테고 ‘잘 쓴 시’는 어떻게 썼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전자나 후자 모두가 똑 같이 50대 50으로 이루어져야 시적 완성에 도달한다고 본다. 시가 건네줘야 하는 사명은 존재의 가치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건네주지 못한다면 사물이 존재이게 하는 가치관은 희석되고 변질된 채 전달되어 시가 담擔하는 묵시적黙示的 역할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는 또한 산문과는 달리 은유(metaphor)와 운율(rhythm)이라는 기본 구조원리로 구성되어진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시의 완성은 표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시는 꾸며서 될 일이 아니다. 혹자는 은유隱喩를 하나의 ‘수식修飾’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은유는 꾸밈이 아니다. 은유는 두개의 사물이 하나의 의미를 향해 화학적 결합을 이루는 시의 본질인 것이고 독자의 몫인 시의 여백을 제공하는 방편인 것이다. 현대시에 있어서 형용이나 수식의 절제가 어필(appeal) 하는 것은 현대인의 감각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보다 직설적 시적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정국희시인의 시는 군더더기 없는 직설적인 은유기법으로 쓰여 지고 있다. -필자 주: ‘직설적 은유기법’이라는 말이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시 창작에 있어서 형용이나 수식의 과다사용을 피하고 곧바로 은유로 쓰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나는 3년 전에 정국희시인을 처음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본인이 시집 서문에 밝힌 것처럼 자신이 한창 시에 미쳐있을 때였던 것 같다. 지금도 그 ‘끼’로 시를 쓰고 있지만, 당시 그의 시 쓰기는 몹시 급해있었다. 장마철에 둑이라도 금방 터질 것 같은 저수지의 팽창 같은 그런 긴장과 초조로움이었고 마치 산불처럼 겉잡을 수 없이 일고 있는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그러나 그 불길은 무엇인가를 태우려는 막연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긴 세월동안 그를 아프게 한 ‘이름 하나’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슬픔으로 품고 있는 불씨였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슬픔이란 이러저러한 동기에 의해 자극을 받아 발산되는 인간 기본 구조적 내적산물內的産物이어서 좀처럼 다스려질 수 없는 업보業報인 것이다. 덜고 싶은 짐이면서도 오히려 안고 가는 고행, 그래서 인간은 슬픔을 향해 무던히도 더듬이질을 해대며 살고 있는 생명체인지 모른다. 이런 면에서 정국희시인은 원초적인 슬픔을 보다 더 절절하게 느끼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이다.  


생선 축에도 못 끼는
비늘도 있는 둥 마는 둥한 것들이
바다에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막무가내 집단 염장鹽葬 되었다

밀폐된 독 안
첩첩히 쌓인 죽음들
살아서는 도무지 맞댈 수 없는 몸들이
죽은 뒤에야 몸을 포개고
느긋한 체온을 느끼고 있다

깊은 바다 속
가닥가닥 신경 곤두세워
물살 옮겨 나르던 시절이
소태 같은 소금기에 절여져
바다의 여백이 지워져가는 묵적黙寂의 시간

몸을 녹이느라 안으로 연소하는
파종의 몸부림이
푸른빛 감도는 희망의 일부로
몸을 삭혀가고 있다
                
                - 멸치 젓 - 전문


   살아서는 도무지 맞댈 수 없는 몸들이 밀폐된 독 안에 첩첩히 쌓이는 죽음으로 만난 다음에야 몸을 맞대고 체온을 느끼며 삭혀지고 있는 멸치들, 이들의 꿈과 소망은 몸을 삭히고 발효시켜 젓갈이 된다는 것에 있었을까. 사람도 삶이라는 멜팅 팟(melting pot)에 들어 염장鹽葬되고 있다는 데에서 같은 의미의 긴장감을 보게 된다. 죽어서 느끼는 느긋한 체온이며 푸른빛 감도는 희망의 일부가 꿈일 수 없다. 멸치가 죽음으로써 내는 젓 맛이란 멸치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멸치젓에 한한 한 멸치의 존재는 멸치로써의 존재가치가 말살된 모순인 것이다.
   정국희 시인은 이러한 모순을 파헤쳐 내고 있다. 사랑과 이별에서, 그리움과 외로움과 고독에서, 한갓 지난날의 삽화처럼 전락하는 한 시절 그토록 절절했던 아픔들에서, 그리고 자신의 살아온 날의 편린을 하나하나 세워놓는 현실에서 그렇게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비록 새로운 삶을 위해 옮겨온 신천지라 해도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그것은‘맨살나무 숲’에 또 하나 맨살나무를 보태는 현실과 마주치게 되는 모순 말이다.

   다음 시 몇 편을 참고해 본다. 불혹지년不惑之年을 넘기며 짚어보는 자아에서 보여 지는 결론을, 그리고 삶의 편린들을 엮어 온 발자취가 병행해온 ‘두려움’이란 삶 그 자체였음을, 모성이라는 원초적 업보와 그 윤회의 존재론적 슬픔을 캐내고 있음을 본다.    

행여/천하게 보일세라/진한 립스틱 한번 못 발라 보고/조심조심 살아온 세월/입안에선 종주먹 휘둘렀을망정/삐뚜름한 말본새로/까들막거려본 적도 없다//이렇게나 저렇게나/어떤 식으로라도/너나없이 이고 가는 세월인데/맘 놓고 철퍼덕,/퍼질러 앉아 보지도 못하고/스스로 억누르며 살아낸 세상이/더도 덜도 아닌/한 시간짜리 필름 한 롤이면/섭섭할 듯 끝날 여정이/지금 여기/맨살 나무위에 노을로 앉아있다.
                                                               - 맨살나무 위에 앉아- 전문

첫날밤같이 서툴게 내민 꽃잎에
놀람으로 달음질하던 내 유년을
고대로 복습하던 딸들
더 이상 놀랠 일 없다는 듯
*탬폰으로 짐 꾸려 룰루랄라 떠나고
날아다니던 쓰레기통은
날개를 접었다

쓰레기통 비우러 다닌 사이
내 몸은 벌써 중년 초입에 당도해 있었다.
                                                        - 날개 접은 쓰레기통 - 중


코쟁이 나라에 자식을 맡겨 놓고/자나 깨나 노심초사로 연결 시켜 논/텔레파시는/내가,/아플 때나/ 힘들 때마다/찌지직 꿈속으로 신호를 보내나 보다//몸 밖으로 한 생명 내놓는 순간부터/죽을 때까지 품고 갈 걱정이/오직/엄마라는 이름으로 치러낼 죄 값처럼
                                                                 - 꿈자리 - 중

저 까실한 길을/맨몸으로 가야하는 것이 있다//있던 곳에서/떨어져 나와/땅 바닥을 뒹굴어도/끝내 탓하지 않고/먼 길 떠나는/처음부터 마지막까지/그저 맡기는 것이 있다
                                                               - 낙엽 - 중

그 집 부모가 바다에 나간지 사흘째 되던 날/동내사람들이 눈이 없어진 퉁퉁 불은 몸을/가마니에 덮어 리어카에 싣고 오던 날 밤/울음인 듯 웅성거리는 소리 들으며/자면서도 무서웠던 그 밤부터/아니, 사실은/기다란 물고기 같은 것이 내 눈을 뽑으려고/나를 향해 헤엄쳐오던 그 꿈을 깨고 난 후부터/어른거리는 물만 봐도/멀미가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 멀미 - 중

   정국희시인이 가지고 있는 아픔의 요소는 그의 시 바탕이 되고 있는 애애절절한 ‘슬픔’의 모티브(motive)인 체증으로 남아있는 슬픈 ‘이름 하나’에서 비롯되는 것 같지만 그 아픔은 ‘나’ 하나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인간 본질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조상님네가 이미 겪었던 일이 오늘 우리의 가슴앓이와 오버랩(overlap) 되어 우리 앞에 현현하는 실체가 되며 또한 시대를 초월한 ‘나’와의 동일 코드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목 중간쯤에서
   늘 젖은 채로 걸리는 이름 하나
   살아온 날만큼
   묵은 체증으로 가슴에 남았다가
   염증을 일으킨다.  
                   - 체증 - 중

사는 맛의 절정도 못 올라 본 등 밑으로/펄럭, 한기가 살 냄새로 들 때마다/살아온 기억 환하게 깨어나/
생의 한 켠 붙잡고 있을/진즉에 떠나버린/삭혀도 삭혀지지 않는 지겨운 사랑//그 사랑 떨쳐내기 위해/몇 번이고 생을 다스렸을/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 어디/한 두 가지겠냐마는/인정되지 않는 이별을/지금에사 인정 하듯/얇은 몸이 가늘게 떨고 있다.
                                                        - 이별 - 중

‘오리나 되는 읍내 신작로를/한달음에 내달리셨다는 할머니/본처가 오고 있다는 소식/미쳐 못 들은 작은 각시/얼른 피하려고 봉창문고리 잡는 순간/무쇠 같은 손에 머리채 잡혀/마당에 내팽개쳐졌다는//동백기름으로 쪽 지운 희디 흰 상판대기가/영락없는 백여시라서/부아만 나면 달려가/머리채 잡고 흔들어대던 그 작은 각시/각혈하고 죽던 날/이렇게 일찍 저승 갈 줄 알았으면/그리 무작스럽게 안했을 텐데/불쌍해서 어쩔까나 다리 뻗고 우셨다는’
‘내 남편 홀린 그 여자/얼굴이나 한번 본다고 야무지게 갔다가/가슴이 하도 떨려 근처도 못가보고/돌아오면서 울던 날/옅은 구름 속에서 할머니는/쯧쯧 혀를 차고 계셨겠지.’
                                                       - 백여시 - 중        

   ‘백여시’에 할머니와 화자의 경우를 대비해 놓았다. 상황은 같으나 대처하는 진행이 다르다. 그러나 결국 양자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불쌍해서 어쩔까나’하며 다리 뻗고 우는 할머니와 ‘내 남편 홀려간 그 여자 얼굴만이라도 한번 보겠다고’ 갔다가 근처에도 못가보고 돌아오며 우는 화자話者, 여기서 가해자도 없고 피해자도 없는 아픔만을 안고 돌아서는 정경으로 귀결된다.

   정국희시인의 시는 쉽고 편안하게 읽혀진다. 우선 시어의 선택이 일상적 상용어에서 이루어지며 표현에 있어서도 별다른 형용이나 수식을 피하는 대신 고향인 전라도 토속어를 어휘와 함께 잘 배열함으로 독자들에게 친밀감을 더해 시의 보다 빠른 이해로 이끌고 있다.  
   시인의 가슴에 맺혀있는 하고 싶은 말이 여러 가지로 표현되지만 정국희시인의 시 쓰기는 이미지가 너무나도 뚜렷한 형상으로 들어나고 있다.  시는 심상을 형상화함으로써 독자의 가슴에 전위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내 자석이 묵을 음식
해찰 없이 얼른 가라고
비뚤비뚤 눌러 쓴 박스를 열자
항상 니가 걸린다며 내 쉰 한숨이
한 됫박 갯바람으로 퍼져 나온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가락도 없는 저음이
숨죽이고 있는 어둠 속
한 때 비늘 세운 것들의
눈초리를 모았음직한
김, 파래, 멸치, 미역이
줄어든 몸으로 앉았다가
기지개를 켠다

내 새끼!
몸성히 잘 있었냐고....
얼마나 살기가 힘드냐고....
                               - 소포 1 - 전문

   “저는 이 시를 읽으며 ‘얼마나 살기가 힘드냐고.....’라는 구절에 오랫동안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평이하고 상식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속엔 상식을 뛰어넘는 소박한 감동이 있습니다. 저는 시가 거창하고 위대한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감동에서 진실 되게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향의 어머니가 보낸 소포를 뜯으며 어머니의 음성을 듣는 마음의 귀를 지녔다면 누구나 다 시인의 마음을 지닌 것입니다.”
   이 글은 정호승 시인이 미주문학 2007년 겨울호에 낸 계간 평에서 발췌한 것이다. 부언해서, 이 시가 쉽게 읽히며 쉽게 공감되는 것은 소포 속에 숨어있는 한숨과 줄어든 몸으로 앉았다가 기지개를 켜는 미역, 김, 멸치 등이 은유하고 있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 대부분이 이렇게 시 쓰기 원리를 흩트리지 않고 쉽게 독자를 찾아가고 있다.

   또한 정국희시인의 시 소재는 사물보다 사건에서 많이 얻어지고 있다.  사건을 해학적諧謔的이고 희화적인 표현으로 다루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한다. 비록 애증과 애환을 다루고 ‘슬픔’의 미학을 바탕으로 한 詩라 해도 구수하고 재미를 맛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옹골진 덤인 것이다.

달라붙는 게 천성이긴 하지만/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단물만 쏙 빨아 먹고/ 퉤!/뱉어버린 몹쓸 인간 때문에/할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       - 껌- 전문
차가 쭉쭉 잘 빠질 때부터/알아봤어야 했다/잘못 된 길이었음을//중략/기계에 카드를 인식시키지 못하고/쭈삣쭈삣 당황한 표정을 짓자/검지가 튀어나와/까딱까딱 오라는 시늉을 하더니/탐색이 천성적으로 배어있는/유니폼 앞에 차를 세운다//매사에/덜렁덜렁 살아 온 삶이었음을/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는데//겁나게 엄포 놓는 위세 앞에/내 이민의 삶이/애초부터/잘못 들어 선 길이었음을 용서 비는 데/주눅 든 눈에서/왈칵/설움이 쏟아진다.                                                       - 멕시코 국경에서 - 중
작은 할머니 세상 뜨자/그제사 한숨 놓고 사시는 가 했더니/그 여시가 그새를 못 참고/ 느그 할아버지 데려가 부렀다고/원통절통 사셨는데//설마하니 울 할머니/거기서도 양지바른 허청이 있어/가슴앓이 도지면 까던 마늘 팽개치고/신발에 불 달고/작은집으로 내달릴지도 몰라                - 질투 - 중


   슬픔은 질투도 시기도 미움도 아닌 순수한 인간 본연의 염색체인 가치관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은 울음이 한갓 울음으로 머물게 하지 않는 바탕이요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모성의 집체集體이기 때문에, 사랑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모순으로 ‘한恨의 내림’에 의해 이어지고 있는 모두의 아픔인 것이다.
   정국희시인의 시집 「맨살나무 숲에서」는 바로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시집은 그가 추구해 나갈 끊임없는 시 쓰기의 빙산일각氷山一角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믿으며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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