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빙 시집 ‘이름 없는 강’에 대하여-

혼돈混沌속의 존재, 그 인식과 시적미학詩的美學



                                                                                                                       문인귀/시인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일 뿐 결론일 수 없다. 따라서 과정이란 정리되지 않은, 결론을 향해 밟고 있는 수순이며 경로이기에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은 바로 혼돈의 세계 그 자체일 것이다.  
  혼돈混沌이란 애초부터 ‘어떤 그 무엇’과 다른 또 하나의 ‘어떤 것’이 구별됨 없이 존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우리와 마주치는 이러한 혼돈의 세계를 한시적인 과정에서 정리해 결론을 얻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어빙시인의 ‘이름 없는 강’을 통해 그의 시 세계를 음미하노라면 적어도 그 강박관념만큼은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시집 여기저기에서 과정 속의 존재가 얼마나 귀중한 가치인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할 수 없는 약속까지
    그날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어야했던 일까지
    요단강이나
    연꽃을 노래하는 일까지도
    어김없이 지킴으로써
    나는
    신사로 남는다.    
  
   위의 시는 ‘선택’이라는 시 전문이다.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약속이나 이뤄질지 말지, 인간의 한계로썬 짐작도 할 수 없는 어떤 약속까지, ‘요단(기독교 상징)’이나 ‘연꽃(불교 상징)’이나 종교에서 주장하는 그 어떤 룰(rule)에도 다 적용해야하는 피조물이라는 존재입장에서 이도 저도 아닌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신사로 남는다.’라는 선언을 통해 그 신사야말로 우유부단함이 아닌 현실적 존재이며 ‘있음의 가치’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날,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어야했던 모든 과정을 답습한다 해도 해결되지 않는 혼돈 속에 서 있는 자아는 바로 ‘있음’ 그 자체로 가치를 다하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채움으로 완성해야하는 곳에서는 미흡함으로, 비움으로 완성하는 무아無我의 세계에서는 그럴수록 더 또렷하게 들어나고 마는 자아로 비록 ‘영원불멸의 위대성’을 주장하고 있는 그들의 영역을 넘나들기만 하는 존재라 해도 그 자체야 말로 확실한 가치를 지닌 존재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골방에는
당신의 소리 없는 소리에
어제 밤 떠놓은 물이 살얼음을 얹었습니다
아닙니다
그 물은 내가 떠오기 전에 벌써
얼음 이었습니다
-중략-
일백년을 공들여 쓰신
무無,
차라리
당신의 말씀만 생각하자는데
나의 손끝에 매달린 붓끝에선
검은 땀방울만 뚝뚝 떨어집니다

                    - ‘검은 고드름’ 중에서

  ‘당신의 소리 없는 소리에/어제 밤 떠놓은 물이 살얼음을 얹었습니다.’에 이어 곧 ‘아닙니다/그 물은 내가 떠오기 전에 벌써/얼음 이었습니다’로 자신이 떠놓은 것은 물이 아니라 얼음이란 이름을 가진 ‘나’ 자신(실은, 그의 이름인 ‘어빙魚氷/Irving’을 상기하면서 이 시를 읽는다면....) 이었다고 말을 한다. 이는 곧 일백년을 공 들이면 찾아질 수 있는 자아에 대한 결론적 의미의 고행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찾았다는 ‘당신의 無’와는 별개인 자아를 확인하는 것이며 그 점은 곧 자신이 추구하는 ‘과정의 진실’인 시 세계임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연작시 ‘입문일지’ 7편으로 단편적이지만 화자話者가 겪는 과정과 결론을 ‘육신이 토막이 되어야 한다’ ‘주지스님의 손끝에 눈 하나 박으며 그만하라’는 죽비 소리를 고대하는 모습이랄지, 108배를 하다가 셈을 잘못 해서 109배를 하고 마는 모습, 하루의 고행에 보내주는 윙크를 만점이라고 적는 등 위트가 넘치는 해학적 표현으로 재미있고 생생하게 잘 그렸다.
    
     짜디 짠 땀내에 절어가는 육신
     토막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한다’     -입문일지 1에서

     세상의 고깃덩어리는 어찌도 무거운지
     한배 한 배 더할 때마다
     등에 땀으로 엉키는 번뇌
     가빠진 숨소리는 셈을 잊어버리고
     주지스님의 손끝에
     눈 하나 박는다’                      -입문일지 2 에서,

     오늘은 셈을 잘못 했는지
     109배를 해버렸다         -입문일지 3에서

    보기만 해도 짓눌려지는
    대웅전 앞 집체만한 바위
    그래도 당신의 발밑에 놓여지는 법문
    내 마음 속에 자리하는 주춧돌       - 입문일지 4에서

   오늘밤은 마음 놓고 코를 골아도 된다!
   정말 즐거운 밤
   스님도 승우도 없는 날 밤         -입문일지 5  전문

   두 번째로 만드는 카래
   어빙! 성공이다
   엄지를 들어올리며 환히 웃으시는 스님
   식욕을 더해주는 점수겠지만
   한식구가 되는 기쁨으로
   나는 만점이라 적는다           - 입문일지 6에서

   7일 동안
   흙먼지만 뒤집어쓰고 앉아있는 차문을 열었다
   솔 냄새 풀냄새 흙냄새 땀 냄새
   부처님 냄새가 꽉 차있었다.       - 입문일지 7 에서

    ‘입문일지 7’은 마치 부처님을 만나는 결론을 얻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가 그 순간 입적入寂 이라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그 후,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어야할 부처님 냄새를 간직하지 못한 채 사는 냄새를 가득 채운 자동차(삶의 테두리)를 몰고 다니며 다시 고행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결론이 없는 과정 속에 존재하는 자아, 그래서 우리는 고독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인생사에 있어서 고독을 맞보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만 유독 정어빙시인은 그 고독의 원인에 대한 인식 차원에서 자신을 바라보다가 어찌 보면 엉거주춤해 보이기도 하고, 우유부단優柔不斷해 보이기도 하는 존재, 그리고 그 정도의 가치로썬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할 만한 가치로 치부되어 온 어설프기 짝이 없는 자신을 본다. 그래서 더욱 앞에서 거론한 시 ‘선택’에서 ‘나는/신사로 남는다.’라는 의미를 시 곳곳에 상기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신사란 ‘남을 배려하는 사람’을 이름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종교를 통해 독존적인 자의식의 완성을 향하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에 대한 자신의 배려가 과정 중에 이루어지는 완성으로 연류 된다. 그래서 정어빙시인은 어떤 일이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몫에 몸을 던지듯 뛰어들어 일을 하는지 모른다. 웬만한 육체노동쯤이야 젊은이 못지않게 시원스레 처리해 내는 분이다. 또한 그는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좀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자상하게 신경을 쓰며 대소사는 물론 자잘한 일까지 마다하지 않고 나서서 돕는다. 이러한 정시인의 적극성은 스스로를, 앞서 말한 과정론적 바탕에서 찾은 미학의 차원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롤 모델(role model)이게 하고 있다.      

    현실이 없는 과거를
    확실히 비어있는 미래를
    이 순간에도
    숫자의 무한대로 엮으며
    자기만의 기억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공간으로
    금을 긋고 있다
                  - ‘달력’ 중에서

   ‘달력’은 질서정연하게 나열되어 있는 날짜와 요일을 한눈으로 볼 수 있어 마치 세월을 한꺼번에 들여다보는 형국이다. 따라서 과거와 미래, 그리고 한달, 두 달, 1년, 2년,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세월의 도열 속에서 지난달을 들추거나 다음 달 장을 넘겨보는 것으로 과거와 미래를 자유자제로 넘나드는 타임머신의 초능력을 지니기나 한 것 같은 자아를 등장시킨다. 세월의 복판에 서있는 그 자아야 말로 ‘오늘’이라는 실제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실제인 오늘은 결국 기억으로 남는 과정임을 은유하며 그 과정 속의 존재 의미의 중심으로  ‘빈 플라스틱 통’이라는 시를 통해 과정이 초래하는 미래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찢기고 밟히고
   토사구팽 신세가 되어도
   묵묵히
   용광로에 들어
   꽃병으로 다시 태어나는 너
                                                - ‘빈 플라스틱 통’ 중에서


  한번 쓰고 버리는 1회용 플라스틱 빈 통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쓰레기일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과정 중에서 보여 지는 가치관일 뿐 실제 빈 플라스틱 통은 물이 들어 있을 때부터 물이 비워지는 순간까지의 한시적 과정에 의해 그 가치가 끝날 수 없는 것이다. 물을 담았던 ‘빈 물병’,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다급할 때는 오줌통으로도 사용 한 ‘빈 플라스틱 통’등 이 모두는 쓰레기라는 소모의 결론과는 달리 현실적인 그 과정을 벗어날 때 새로운 인식으로 거듭남을 꿈꾸게 하고 있다. 그것은 찢기고 밟히는 쓰레기로써, 토사구팽 신세로써의 가치가 아닌, 꽃병으로 거듭나는 삶의 종래적 가치에 연결시키고 있음에서이다.

   정어빙시인은 시를 통해 혼돈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존재여건의 필연성과 그 가치관을 부각시켜 ‘혼돈 속에 존재하는 가치관의 진실’과  ‘혼돈이라는 과정의 결론적 가치의 진실’ 로 시적완성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그가 노리고 있는 시적완성은 혼돈混沌속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얻은 가치관을 결론적 가치관인 내세관에 접목시키는 시적미학詩的美學의 추구에 있다는 것이다.

   ‘이름 없는 강’이란 표제처럼, 흐르면서도 이름 없음으로 인해 무가치해 보이는 과정의 진실이 바로 정어빙 시인의 첫 시집의 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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