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를 추모하며
2017.09.13 11:12
9월5일 그가 죽었다. 자택에서 스카프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아침 출근 중,5번 프리웨이 로스펠리즈쯤에서
라디오 아침뉴스에서 그 사실을 알았다. 조금 놀랐다. 그가 자살하다니 믿겨지지 않았다. 생명이 다할때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겠노라고 그는 말했었다.
개인적으로 그는 고교,대학교 선배이다. 몇 번의 술자리에서 낭랑한 음성으로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목소리가 참 좋군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이른 출세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후 '즐거운 사라'로 (1992년) 강의 도중 구속되었다.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몇 년 뒤 복직했지만 정규과목수업을 하지 못하고 후배교수들에게 왕따당했다. 그의 문제는 너무 솔직하다는 것이다. 외설이냐,예술이냐 논쟁보다 한국사회의 이중성과 위선을 그는 몹시 싫어했었다.한국문학의 지나친 교훈성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돌아가신 고원선생님은 그를 용기있는 시인이라고 하셨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는 너무 솔직하고 우직했다. 판사나 법학자,유림이나 종교단체가 그의 구속을 환영한 것은 그렇다치자,그러나 같은 문인중에서 그를 망나니로 비하한 이문열의 말 중에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교육적인 효과를 포기하는 듯함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수신분을 애써 유지하려 한 점을 비판했다. 왜 그가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처럼 교수직을 박차고 나오지 못했을까? 그랬다면 그에 대한 비판을 조금 희석시킬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먹고 사는 일의 고달픔을 걱정하지 않을 수없었기때문에 전문작가의 길을 망서리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아무튼 작년 은퇴후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외로움과 대인기피증,망가지는 건강 (이빨이 다 빠졌다고 한다.),절망감에 시달렸을 그의 영혼이 편히 잠들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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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마광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양철로 된 귀걸이, 반지, 팔찌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는 아름답다
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더 아름답다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
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가 없는 여인은
훨씬 덜 순수해 보인다 거짓 같다
감추려 하는 표정이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에 넘쳐
나를 압도한다 뻔뻔스런 독재자처럼
적(敵)처럼 속물주의적 애국자처럼
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
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
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분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리고 싶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라도 하여
내 몸을 주렁주렁 감싸 안고 싶다
현실적으로
진짜 현실적으로
-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자유문학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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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섹시, 청순, 귀여움 세 가지 스타일 가운데 어떤 여자를 가장 선호하느냐는 우스꽝스러운 설문이 떠돌아다녔다. 각자 매력의 우선순위를 꼽는데, 어떤 호랑말코 같은 남자는 놀 때는 섹시한 여자를, 결혼은 청순한 여자를 선택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를 보면 남자들이 사귀고 싶은 여자 베스트에서 1위는 귀여운 여자(39%), 그 다음으로 2위는 근소한 차이로 착한 여자(36%)로 나타났다. 3위 예쁜 여자(14%)와 4위 섹시한 여자(11%)는 한참 밀렸다. 섹시한 여자와 반드시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겠으나 마광수가 말하는 ‘야한 여자’도 겉으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스타일이리라.
그러나 당시 그들이 사귀고 싶은 스타일 1위로 꼽은 착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문근영’이 과연 솔직한 속내까지 다 포함하여 드러낸 결과였을까. 물론 오래전 유행했던 노래 ‘희망사항’은 그때나 지금이나 남자들의 희망사항이긴 하다.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 ‘내 고요한 눈빛을 보면서 시력을 맞추는 여자’ ‘내가 돈이 없을 때에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자’ ‘내가 울적하고 속이 상할 때 그저 바라만 봐도 위로가 되는 여자’를 마다할 남자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면 대개의 남자들은 거기에다가 섹시함을 더하는 ‘금상첨화’를 꿈꾼다. 청순한 신비로움과 더불어 야하고 섹시한 모습으로의 변신을.
마광수는 그런 남자들의 속마음을 작품에서 솔직히 드러냈을 뿐이다. 섹시한 여자는 거의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다. ‘말과 행동에 성적 매력이 있다’는 뜻의 ‘섹시하다’는 형용사는 칭송의 의미가 된지 오래다. 성적 매력의 보유가 자랑스러운 시대이다. 언젠가 전국 20대 여성 500명에게 “남성들로부터 어떤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1위가 섹시하다, 2위가 예쁘다, 3위가 지적이다였고 귀엽다 착하다 청순하다 따위는 족보에도 없었다. 여자는 단순히 예쁘다는 평판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세상엔 자신보다 예쁜 여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두껍게 화장을 하고 주렁주렁 늘어뜨리기도 한다.
이렇듯 그는 남자와 여자의 비대칭 욕망을 까발리고 뒤로 호박씨 까는 사회를 향해 조롱을 퍼부었다. 긴 손톱이나 퇴폐적 의상 등의 이미지를 관능적 판타지로 사용하여 시와 소설을 썼다. 그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의 서문에서 “보다 솔직하게 본능을 드러내는 사람,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천진난만하게 원시적인 정열을 가지고 가꿔 가는 사람”을 ‘야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야한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첫째가는 비결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해 발간한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통해서도 상상 속 가상의 ‘장미여관’을 모든 체면과 윤리와 의무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방구로 설정하였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귀엽고 착한 여자를 예쁘고 섹시한 여자보다 더 좋아한다고 점잖게 말하는 ‘건전한’ 남성 사회집단이었다. 그리고 “사랑은 관능적 욕망 그 자체이며 인간의 행복은 성욕의 충족에서 온다.”고 말한 그의 형이하학에 발끈하여 돌을 던졌던 여성단체였다. 그의 자살은 위선과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정신적 귀족주의자들에 의한 타살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들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장미여관’을 까발린 한 지식인에 대한 엄숙주의 사회의 보복이었다. 그는 언제나 학생들에게 저항하고 반란하라고 가르쳤다. 그의 ‘야함’에 대한 솔직한 토로 역시 그에게는 저항이었는지 모른다. 부디 저편 세상 ‘장미여관’에서는 ‘현실적으로, 진짜 현실적으로’ 관능적 끌림이 자유롭길 바란다.(해설,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