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웅의 시

2020.09.03 22:44

백남규 조회 수:150

배정웅의

 

 돌.jpg


 

배정웅의 시

 

 

시에는 사람살이의 모양과 생각과 느낌이 들어있다. 시의 화자는 무언가를 독자에게 전하고 싶다. 화자는 말을 하고 청자는 듣는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세상살이의 부대낌에 따라 발생한다. 그것을 표현하여 전하고 싶다.

시란 무엇인가?’ 오래 전부터 인간은 시를 써왔다.시가 무엇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시쓰기를 계속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가 않다. 공자는 ‘사무사라고 했고 엘리어트는 시의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 했다. 몇 가지를 더 소개하면,아리스토텔레스는시는 율어에 의한 모방이다.’ 그 모방에서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엘리어트는 시를 고급오락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예술유희설에 근거한 것이다. 19세기 낭만파시인들은 시인 개인의 감정의 표현으로 보았다. 하이데거는 시는 언어의 건축물로 보았다. 이 모든 정의는 시의 한 면을 중시한 정의이기 때문에 일면의 진실을 보이지만 여전히 시가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여기서는 시의 내용을 중심으로 시인이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가를 살펴보겠다.

 

 

방랑시인’, ‘바람의 시인이라 불리는 배정웅님의 반도네온이 한참 울었다에 실린 시 중에서 몇 편을 골라 분석해 보았다.

 

.

 

돌아 불러도 돌은 묵묵 부답이다.

부르는 내 소리가 도리어 부질없다.

육신의 어디엔가

분명 명징한 오관과 능란한 혀를

감추고 있음직한데 묵묵부답이다.

허허로운 침묵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승의 목숨 있는 것들은

아주 기막히고 슬픈 일을 당하면

모두 하나의 돌이 되는 것 아니랴

졸지간에 말문이며 오관이며

마음까지 한자리에서

망연히 굳어버린 것이라

그래서 그 가장자리에는 언제나

무어라 무어라 애타는 하소연 같은

언어의 적막

- 小考 1-

 

 

 

 

돌의 정체는 무엇일까? 산에 들에 흩어져 있는 암석,바위일까? 텍스트 안에서 찿아보면 아주 기막히고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일 것이다. 살다보면 끔직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세월호 침몰처럼 기막힌 일이 가끔 일어나는 곳이 세상이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끔직한 일도 많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매일 부딪히는 열악한 노동상황 때문에 매일 3-4명이 일터에서 죽어나간다고 한다. 전동차 자동문에 끼어 죽거나 컨베이어 벨트에 감겨 죽기도 한다. 슬프고 끔직한 일을 당한 사람들은 너무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고 그 사연을 누구에겐가 하소연 하고 싶다. 그러나 하소연을 들어야 할 사람들의 고압적인 자세에 마음은 돌이 되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힘이 없는 사람이기 쉽다. 돈과 지위,권력이 없는 하층민일수록 가슴속에 맺힌 말이 바깥으로 드러내지 못해 돌이 되는 것이다. 시인은 말이 되지 못하고 허공으로 떠다니는 말,보이지 않는 것들을 전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된 시가 자바시장의 비둘기이다.

 

 

 

로스엔젤레스 소재 자바시장에는

수시로 빠알간 외다리 비둘기들이 모여서 운다.

봉제공들이 먹다 버린 음식 찌꺼기를

부리로 쪼면서도 구구르르 눈물 흘리며 운다.

공업용 날카로운 나일론실에

진분홍 다리 한 쪽 야전 병사처럼 싹뚝 잘려나간

아픔과 공포로 운다.

그 모양을 창너머로 물끄러미 건너다 보는

눈이 시원해서 더욱 슬픈 아즈텍과 마야의 아가씨들

미싱 노동으로 무거워진 다리 절뚝이며

주인 몰래 비둘기 울음보다 더 나직이 흐느낀다.

독수리 나래를 단 비행기 한 대

비둘기 떼 위에 떠서

멕시코만 쪽으로 궤적을 긋고 있다.

 

-자바시장의 비둘기-

 

사물은 누군가에의해 관찰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한 현실이 아니다. 보려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위의 시는 형식상 3부분이고 내용상 2부분으로 된 시이다. 비둘기와 공업용 나일론 실, 아즈텍과 마야의 아가씨와 독수리나래 비행기가 대칭을 이룬다. 시인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가는 비교적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독자는 이미 어떤 세계에 살고 있다. 한 편의 시를 읽고 이해하고 해석하는데는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가정과 학교,교회,신문,라디오,영화 등에서 학습된 것을 내면화되어 있어서 어떤 세계이해방식이 독자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2020년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세계이해방식은 무엇일까? 거대한 규모의 실업과 불안전한 고용,극단적인 빈부격차,약소국과 강대국의 만회할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는 시대이다. 먹고 살기 바쁜 서민들이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있을까? 장하준같은 지식인(켐브릿지대 경제학 교수)이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지배계급의 사람들이 귀담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열악한 노동조건하에서 신음하는 무자비한 자본주의 현실에 갇힌 노동자를 대변하는 봉제공과 공업용 실에 다리가 잘린 비둘기가 오버랩된다. 비둘기는 봉제공이 되고 둘 다 절름거리는 약자의 상징이다. 비둘기에게 위협이 되는 독수리 날개를 단 비행기가 무엇을 비유하는 지는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승자독식의 약탈자본주의, 정글자본주의에서 강자의 상징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실패,낙오하고 있다. 오늘날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홈리스라 불리는 낙오자들이 대로변에서 생활하고 있다. 개인의 잘못도 있겠지만 시스템의 오류가 더 큰 이유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다. 최저임금을 받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보다 더 열악한 사람들도 많다. 그것을 보이는 시가 멕시코 국경열차-데드 트레인이다.

 

멕시코에 가면 어떤 기차가 있다네.

데드 트레인이라 부르는

은밀히 아주 은밀히 미국국경을 넘으려는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기차난간이건 지붕이건

가리지 않고 잠시 둥지를 틀긴 틀지만

차마 어쩌지 못하는 생의 졸음으로

한 해의 낙과처럼 떨어지기도 한다.

사흘 밤 나흘 낮을 애리조나 사막을 넘다가

혹독한 더위에 목이 타서 쓰러지고

밤추위에도 금방 쓰러진다네

(중략)

국경병원 영안실에는 그렇게 죽어서도

두고온 고향과 가족의 꿈을 끊지 못하고

차마 눈 감지 못하는 주검들이 누워있다네

내가 아는 볼리비아노 갓 스무살 빈센트도

두어해 전 그 기차를 타고 떠났다는데

그가 어디에 어떻게 안착을 했는지

아무도 아무도 아는 이가 없네

그의 어머니 로사여사느 지금도 저자바닥에서 사람들을 붙들고

내 아들 못 보았느냐고 내 아들 못 보았냐고

입안 누런 틀니를 오무작거리며

실성한 듯 묻고 다닌다네

 

-멕시코 국경열차-

 

죽음의 기차는 오늘도 수천명,중남미 사람들을 태우고 달린다. 공포와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달린다. 자기 나라에서도 소외된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티켓살 돈이 없고 멕시코 출입국사무소를 지나치치 않기 위해 죽음의 열차를 필사적으로 타고 밀입국을 시도한다.

 

한국동란때 우리 조상들도 남부여대 하고 피난열차에 몸을 싣고 자유와 평화를 찿아 남하했듯이 전쟁도 아닌 평화시에 약소국의 빈민은 스스로 난민이 되어 죽음의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이토록 가난은 무서운 것이다.

전쟁이 끝난 한국에서도 가난한 노동자들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죽는다고 작가 김훈은 한탄한다. 고층건물 신축공사장에서 노동자들이 일년에 몇 백명이나 추락하여 죽거나 불구가 되고 있다고 한다. 사고 원인은 안전장치가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돈이나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노동자들이 돈 없고 힘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라서 무시하여 그렇다고 김훈은 이야기한다. 생명경시,약육강식의 시대다. 이처럼 강자들은 강심장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삶터는 전쟁아닌 전쟁터이다.

 

시를 이해함에 있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단어나 구절에 국한되지 않는다. 텍스트 외적인 문화환경을 살펴보아야 그 의미가 확실히 드러날 때가 있다. 무심한 하늘을 굉음을 내며 날아가는 비행기는 그냥 비행기가 아니다. 비행기는 무력,군사력,폭력 -힘을 상징한다. 시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커튼 뒤의 사람들이 조정하는, 가난한 이들을 가두고 얽매는 시스템을 보여 주기 원하고 있다. 그들의 강심장에 따뜻한 인간의 피가 흐르기를 기원하며 비참한 현실을 재현하여 슬픔과 분노를 환기시키고 있다.

 

2020-8-22. 백남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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