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어린 딸

        박영숙영

뼈 속에 바람 들고
하얀 안개꽃 머리 위에 이고 있어도
나는 엄마의 어린 딸
엄마가 담아 보낸 김치 향에
목이 메던 젖 내음

징 소리로 울리는 빈 단지에
촉촉이 그리움 젖어 넘친다

휑한 눈에 튀어나온 광대뼈
햇빛에 그을린 초라한 모습으로
텃밭 가에 꽃씨를 뿌리시던

말 못했던 엄마의 속마음
화사한 꽃으로 피어나서
헤적헤적 부는 바람에 쓸쓸히 떨어지던

입을 다문 꽃잎들 곱게 접어
가슴 깊이 품었을 여자의 마음

채울 길 없는 빈 김치 단지에
생전에 엄마가 좋아하셨던
꽃들을 꽂아놓고 바라보니
무명 치마 흰 저고리 단아하게 차려입고
불경을 외우시던
엄마의 목소리 들리는 듯하다


+ 어머니 1

어머니
지금은 피골만이신
당신의 젖가슴
그러나 내가 물고 자란 젖꼭지만은
지금도 생명의 샘꼭지처럼
소담하고 눈부십니다.

어머니
내 한 뼘 손바닥 안에도 모자라는
당신의 앞가슴
그러나 나의 손자들의 가슴 모두 합쳐도
넓고 깊으신 당신의 가슴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새다리같이 뼈만이신
당신의 두 다리
그러나 팔십 년 긴 역정(歷程)
강철의 다리로 걸어오시고
아직도 우리집 기둥으로 튼튼히 서 계십니다.
어머니!
(정한모·시인, 1923-1991)


+ 어머니, 나의 어머니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이 불러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
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
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
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
(고정희·시인, 1948-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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