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2014.06.18 20:38

박영숙영 조회 수:1181 추천:26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시집『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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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정호승 시인의 시다. 사실 유행가처럼 널리 유통되고 있는 이러한 시는 해설이 따로 필요 없음은 물론 단상조차도 사족이 될지 모른다. 마음을 열고 시를 읽어 내려가면 객관적인 이해 없이도 그저 젖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가 가진 아름다움과 미덕은 바로 '따뜻한 슬픔'에 있다. 이 '따뜻한 슬픔'은 이 말고도 다른 그의 많은 시에서 발견되는 기본 정서로 이젠 정호승을 관통하는 관용적 어구가 되었다. 그의 시가 생판 딴 모습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정호승의 시를 요약하는 가장 적확한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슬픔이 따뜻하다는 말은 이런 시 속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슬픔이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일상의 삶에서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다. 슬픈 것이 어떻게 따뜻하며, 따뜻한 것이 왜 슬픈가. 그렇지만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이 '따뜻한 슬픔'이라는 모순된 말에 이의를 달지는 않는다. 처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에서부터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까지 읽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이의 슬픔의 어깨에 자신의 따뜻한 손이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부와 가난처럼 세상의 기쁨과 슬픔도 불공평하게 한쪽으로 치우쳐선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기쁨을 나눠 갖기가 애매한 사정이라면 내버려두고 슬픔은 누구나 마음만 있으면 쉽게 나눠가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슬픔에 한 번도 눈 돌리지 않는 오만한 기쁨은 사랑하지 않는다.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고, 더구나 슬픔을 짓밟고 올라선 기쁨은 기쁨일 리가 없다. 그러나 시인은 기쁨을 슬픔의 적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서로 적대관계에 놓여있지 않음을 말한다. 늘 기쁘기만 하거나 슬프기만 한 사람은 없을 터이므로.



슬픔의 과정을 거친 자만이 진실한 기쁨을 안다. 눈물을 흘려보지 않고는 사랑을 모른다. 눈물과 슬픔은 사랑의 진원지이다. 시종 배부른 자들은 배고픈 자의 고통을 모르고, 내내 기쁘고 행복한 자들은 슬프고 불행한 이의 밑바닥에 깔린 설움을 알지 못할 것이다. 서럽고 힘든 아픔을 경험한 사람만이 남의 슬픔에도 눈을 돌릴 줄 아는 법이다. 그러므로 슬픔은 남의 처지를 돌아보고 그들 애환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사랑의 시작이다. 스스로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며 그래서 고요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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