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3 17:06
장소현 7번째 시집 <나무는 꿈꾸네>를 읽고
최근 <해누리> 출판 장소현 시집은 7번째 시집으로 40편의 시가 실려 있다 1부 나무는 스승님, 2부 아우를 그리며, 3부 보내지 못한 편지, 4부 내 친구 발명왕, 5부 눈 속에 떠나가다 등 40편의 시문들이 실려 있다. 이 시집의 주인 장소현 시인은 시를 끌어안고 오랜 세월 동안 희. 노. 애. 락의 생애를 살아오시는 분이다. 시는 물론 희곡 평론(미술) 수필 등의 다양한 글로 이미 독보적인 일가를 이루신 분이다.
그러므로 새삼스럽게 장 시인의 시집에 대하여 필자의 소견을 말하지 않아도 이미 시는 제 옷을 입고 세상에 발을 내디딘 바이고 필자 역시 독자로의 옷깃을 여민 지가 여러 날이 되었기에 이런 저런 사족을 붙이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러나 시인의 부탁에 따라 소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저 높은 곳
가로와 세로가 만나
거룩한 피 아직도 뜨겁고...
어떤 이는 더하기라고 해석하고,
다른 이는 열()이라고 읽고 가득함이라고 새기는
십자가는 아무래도 나무라야,
더운 피 깊은 속까지 스며들어야 하므로...
하느님, 하나님, 한울님
왜,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믿음()은 결국 사람()의 말().
그러므로 사제는 결국 시인이어야 한다고...
지구별 위
위도와 경도가 만나는 곳 어디에선가
우리 마음 속
씨줄과 날줄 엇갈리는 어느 곳에선가
사랑의 더운 피 지금도 흐르고...
십자가는 아무래도 따스한 나무라야.
<십자가는 나무> 전문
장 시인은 십자가를 원초적 입장에서 노래한다. 어디에서나 십자가는 저 높은 곳에 자리하고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곳이다. 이는 우주 창조의 원리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어찌 보면 가로와 세로는 밤과 낮, 하늘과 땅, 남과 여, 위와 아래, 밝음과 어둠 등, 상대적인 관계나 대치의 집약일 수도 있고, 어찌 보면 선과 악까지도 상징하고 있다고 보아지는 다양한 메타포어(metapore)의 표현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도 이에 포함되고 있음도
- 1 -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나무는 매우 딱딱한 물체이면서도 때로는 한없이 부드럽고 연한 물체로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이는 바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대칭한다고 보아지기도 한다. 애초 로마의 형틀로 제작된 십자가는 그 재료가 나무다. 나무는 세상의 어떤 물체보다도 인간과 매우 가까운 관계에 속한다. <하느님, 하나님, 한울님>은 한글 표기만 다르지 결국 한 분 하나님(God)을 지칭하는 명사이다. 우주에 한 분인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보통명사라면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라 여럿을 지칭하는 말이 된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신 이시다. 시인은 “사랑의 더운 피 지금도 흐르고”의 위치는 십자가의 씨줄과 날줄이 만나는 교차점이라며 따스한 나무라고 노래한다. 이로 보면 시인의 따스한 신앙심이 역력히 보인다.
생명 살리는 물은
땅속 잔뿌리 끝에서
가는 가지 끝까지 잎맥 구석구석까지
멀고 먼 길
한 마디 불평도 없이
비 안 내리는 사막에서도
푸르른 삶 이어가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사람 핏줄의 총 길이는 3만 리, 지구 둘레를 세 바퀴나 도는
머나먼 거리, 엄마 찾아 삼만 리, 그 길고 긴 핏줄을 따라 피가
몸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46초.
나무의 핏줄은 얼마나 길까?
물은 얼마나 긴 여행을 해야 하는 걸까
비 오지 않는 세월
내 마음 바싹 말라 바스러질 때
어디서 물 길어 올려야 하는 걸까
어디서?
<물길 핏길> 전 문
이 시중 우리의 감동은 어디서 오는가. 한 마디 불평도 없이 푸르른 삶 이어감에 감동이 있는 것인가, 또 사람 신체 구조상의 3만 리의 길이에서도 오는가? 이 두 가닥 중에서 감동은 오히려 한 마디 불평도 없이// 비 안 내리는 사막에서도/ 푸르른 삶을 이어가는 힘에서 오는 것이라고 느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반적인 정보로 시문이 구성 되었을 때는 일반적인 감동을 주는 것일 뿐, 제대로의 감동을 받기는 어려운 것은 아닌지. 시의 내용에 비해 제목이 지나치게 강한 압박을 주지는 않는지.
- 2 -
험한 세상 어찌 지내시나?
어제는 비를 맞으며 바다를 만나러 갔네. 물이 물을 만나 기뻐 노래하고,
물이 물을 만나 얼싸안고 춤을 추더군. 비 그치니 무지개 뜨더군. 참 보기 좋더군.
어쩌면 나무도 자살을 하지 않을까? 돌아오는 길에 죽어 서있는 나무를 보며,
똑바로 서서 흠뻑 비에 젖는 죽은 나무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네,
어찌 생각하시나?
가령 수없이 많은 씨앗 땅에 떨어져 싹 트지만, 파란
새싹으로 태어나지만
나무로 자라는 건 그 중의 몇 그루뿐이지
모두가 살 수 없다는 걸 나무들은 알지
스스로 죽어 가름이 되는 나무들
가령 숲이 너무 빼곡해 숨이 막히면
바람 모질게 부는 날
나무들끼리 몸 비벼 불을 내지
타올라 스스로를 화장하지, 분신자살
그리고 숲은 한결 건강해지지
나무가 다비하는 날 바람이 소리치지
스님들 불 들어갑니다.
모두 잘 살자고 스스로를 태우는
거룩한 자살
그걸 그저 자연의 법칙이니, 약육강식이니
그런 말로 얼버무리는 건 너무 편안한 생각이 아닐까?
이천년 전, 한 청년도
우리 모두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나무에 매달려 피 흘리셨지.
<나무의 자살> 전문
첫 연의 시의 착상이 선명하고 아름답다. 이런 감동으로 물이 춤추듯 계속 연을 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2연부터 나오는 시행들이 첫 연과 무관한 느낌이기에 산만한 생각이 든다. 시는 첫 이미지와 통일감을 이루어야 한다. 이런 저런 많은 내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끝 연의 “이천년 전, 한 청년”은 자살이 아니다. 당시 재판(관중들의 아우성)으로 사형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 3 -
나무는
죽어서도 당당하게 서 있어
아름답게 빛나는데...
뜨거운 불길 견디고 끝내
재가 되어 스러지지 않고
새까만 슻 되어 반짝이는 나무는
죽어서도 죽지 않네, 죽을 수 없네
아무렴 재와 숯은 다르지
암, 다르고 말구...
산불 잔인하게 휩쓸고 지나간 자리
새로운 질서 뿌리내려
저 아래 어린 나무들 새싹 파릇파릇
재잘재잘재잘재잘거리는 소리
그 소리 들으며 흐뭇하게 웃고 싶어
나무는 죽어서도 당당히 서있네
우뚝 서서 빛나네
새로운 질서가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는 걸
희생 없이 어는 게 결코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 보여주고 싶어
나무는 죽어서도 서있다네...
산도 숲도 나무도
늘 새롭게 또 새롭게ㅐ 거듭나는데
사람은 그러지 못하지
나무가 죽어서도 당당한 그 마음
사람은 죽어도
알지 못하지
사람은.
죽어서도 살아있는 나무
우리 집 아주 오래 된 나무식탁
어디 사시던 나무이신가?
내가 재미있게 읽는 종이책들
내 이름 박아 우쭐거리며 펴낸 책들
언제 어디 서계시던 나무일까?
- 4 -
“나무 한 그루만도 못한 책
자꾸 박아내지 마세요” *
죽어서도 죽지 않는 나무처럼
죽어서도 당당하게 살아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얼마나?
죽어서도 죽지 않는 사람.
* 농부 철학자 윤구병 선생의 말씀
<나무는 죽어서도> 전문
이 시의 제목으로 <나무송가>라면 어떨지. 통일감을 잘 살린 글이다. 산문성이 강하지만 시로서의 성공감이 든다. 나무에 대한 존칭이 좀 강한 느낌이 드는 편이지만 의인화한 글이기 때문에 원만하다. 자연에서 느끼는 이치를 시적 정서로 살린 점이 특이하다.
늘 지나다니는 길목에 당당하게 서있던 큰 나무가 어느 날 없어져 버렸다. 얼마간 여행을 다녀온 사이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길목을 지날 때마다 뭔가 허전하고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잘 생각해보니 나무가 있던 자리가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 나의 동수나무가 사라졌다.
어디로 가신 걸까? 잠시 이웃 마을로 마실이라도 가셨나?
나보다 훨씬 나이를 많이 자신 그 나무는 나를 보면 늘 씽끗 웃곤 했다. 아주 착하디착한 웃음으로 많은 것을 말하곤 했다.
한 자리만 계시려니 답답하지 않으세요?
내가 물으면 웃으며 대답했다.
뭘 그리 분주하게 옮겨 다니시나? 정신없게... 한 자리에 있어도 볼 건 다 보고, 알건 다 안다네
정말요?
그럼 바람이 알려주고, 먼 나라의 소식은 철새가 전해주지... 흘러가는 구름이라고 무심하시겠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시시콜콜 말해시지... 우린 모두 친구야
정말 그럴 것 같았다. 모두가 친구라니 얼마나 든든할까. 어지간히 나이 드신 나무가 허튼 소리를 하실 리 없지, 아무렴.
어디로 가신 걸까? 갑자기 갑갑해지셨나?
이 어른 도대체 나이를 몇 살이나 자신 걸까?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나이테를 헤아려보려 했지만,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촘촘한 나이테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그 연륜의 엄숙함이라니, 세월의 두께라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그루터기를 쓰다듬어보면 알 수 있다. 나이를 많이 자신 이 어른은 비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당당하게 웃으며 톱날을 받으셨겠지. 나의 세상이 이제야 끝났는가, 고마워...
- 5 -
그렇다 이 어른은 자살을 하신 것이다. 틀림없다. 큰 나무 아래서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는 말을 들으셨을 것이다.
바람이 지나가며 없어지는 것, 사라지는 것, 잊혀지는 것도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닐세, 너무 섭섭해 마시게나 라고 시무룩하게 일그러진 내게 말했다.
버혀진 동수나무는 내 마음 속으로 옮겨 오셨을 뿐이다.
반갑고 고마운 비가 며칠인가 내렸다. 그리고 나는 봤다. 버혀진 동수나무 그루터기에서 부끄러운 듯,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솟아오르는 연초록색을... <나이 자신 나무> 전문
동수나무는 나이를 많이 자신 나무이다. 사람도 나이 들면 남에게 존경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천상천하 모든 만물이 시의 대상이 된다. 특히 세월을 많이 거친 나무를 곁눈으로만 보고 지나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기도하고 심지어는 나무 가까이에 가서 두 손으로 쓰다듬어 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나무에 대한 존경심까지 지니는 사람도 있다. 이는 나무를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소현 시인도 이에서 다르지 않다. 이는 마음이 넓고 자비로운 사람이 품을 수 있는 덕목이다. 나무를 의인화 하여 존경심을 품고 노래하고 있다.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고마운 일이다. 나무는 죄 없이 사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순수하다. 그러나 사람은 나무와는 다르다. 그 순수함이 나무와 같지 않기 때문이리라. 사람은 성자가 아닌 이상 나무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장소현 시인의 시세계는 극히 순수하고 존경스러움에서 출발한다.
엄마나무는 산 속 깊은 곳에 산다. 죽어서도 산다. 따스한 햇살 맑은 공기, 영롱한 이슬, 축축한 안개, 고운 새소리와 함께 산다.
죽은 뒤에도 꼿꼿하게 서서, 낯모를 어린 나무 가슴에 안아 키우는 나무를 엄마나무(Mother Tree)라 부른다. 어디서 날아온 무슨 씨앗인지 묻지 않고 넉넉하게 키우는 엄마나무.
죽어서 사는 엄마나무,
엄마나무 아가나무는
둘이서 하나
산 것과 죽은 것이
결국은 하나
나무는 나무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죽어서도 살아 낯모를 자식 키우는 엄마나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죽은 나무도 세상 아름답게 하려 지기 몸 던지는데, 사람은?
사람다운 사람 찾기 어려운
마른 세상 한 귀퉁이에 서서
엄마나무 물끄러미 바라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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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다, 엄마나무처럼 살고 싶다.
나는 죽어서 무엇을 품어 키울 수 있으려나.
엄마나무는 죽어서도 씩씩하게 오래오래 산다. 세상 뭇 생명들 보듬어 안으려고 썪을 줄도 모르는 엄마나무는 쓰러질 수 없다. 아가나무는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며 자라고...
나무는 나무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죽어서도 사는 엄마나무에게
배우는 오늘 하루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무심한 흙먼지.
<엄마나무> 전문
이 순수함이 줄을 잇고 있는 이 상황에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무심한 흙먼지”야 말로 인간세상의 풍조이다. 시인은 죽어서도 할 일을 아직 살아 있으면서 미리 생각한다. 극히 성스러운 마음이다. 모든 인생이 엄마나무처럼 살 수만이라도 있다면...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던 날
너는 태어났지, 비와 함께
피난살이 부산 바닷가 판잣집 단칸방
비는 내리는데 흐느끼듯 비는 내리는데
온 세상 젖어 축축한데
아버지는 밖에 나가 놀라며
나를 내쫒았지
비는 하염없이 내리는데
같이 놀던 동무들 아무도 없고
‘서울내기 다마네기’ 라며 놀려대던 동무들
하나도 보이지 않고
비는 무겁게 무겁게 내리는데
짧은 처마 밑에 서서 오독하니 혼자 서서
찬비 고스란히 맞으며 오돌오돌 떨며
하루 종일 긴긴 하루 비는 내리고
해질녘 문 열리고 겨우 집에 들어가니
거기, 네가 태어나 있었지
아버지 거친 손이 너를 받고 태를 잘랐지
삼팔따라지의 고달픈 손이...
비 오는 날 비와 함께 태어나서
- 7 -
네 한 평생이 축축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우리 시대가 모두 그랬을까
어쩌다 비 내리는 날이면
빗줄기 사이사이로
너를 본다.
네가 보이고 무지개 뜬다.
비로 자주 찾아와
내 마른 마음 적셔주기를...
거친 빗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너는
한 평생 줄곧 비를 맞으며,
힘겹게 살았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래도 온 몸이 빗물로 흠뻑 젖어도
불평 한 마디 없이
굳세게 이겨내곤 했지.
네가 비를 맞는 걸 알면서도
빗물로 흐르는 눈물 가리며
독한 물에 취해 가까스로 견디는 걸 보면서도
우산 하나 제대로 씌워주지 못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래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맑은 날도 있었겠지만
속까지 흠뻑 젖은 몸 말리기엔 모자랐던 모양이지
잦은 네 영혼 위에
작은 우산 하나 제대로 씌워주지 못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잘 가시게, 비가 아주 알맞게만 내리는 곳으로
부디 안녕히
우리 곧 다시 만나리니
잘 가시게, 부디 안녕히
<가을비> 전문
시인의 삶이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시인의 마음까지 그렇다.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다. 시에서 감동을 빼고 나면 빈껍데기뿐일 뿐인데, 시 속에는 시인의 처절한 삶이 솔직하게 고백되었다. 이는 진실로 값비싼 이미지이다. 돈 주고도 못사는 비싼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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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비 내리는 날이면
빗줄기 사이로
너를 본다
네가 보이고 무지개가 뜬다.“
이는 제6연이다. 이 부분은 독자를 그냥 지나치게 하지 않고 한참을 머물러 있으면서 감동시킬 뿐만 아니라, 황홀한 시의 풍경의 포승줄이 되어 독자의 심령을 감싸주는 것이다. 이만큼 이 부분은 참으로 귀하고 귀한 문학적 표현이다. 얼마나 지극히 사랑하고 그리운 대상이면 “빗줄기 사이로/ 너를 본다”는 표현을 할 수 있었을까? 영혼과 뼈에 사무친 그리움이 아니면 이런 경지에 도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가을비 내리는 날 태어난 아우를 절절히 그리워하는 모습을 어찌하면 이보다 더 확실하고 감동적인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정소현 시인의 글에는 어떤 형태의 글이든지 꾸밈없는 솔직함이 가득하다. 글이라고 해서 모두 솔직한 글은 아니다. 거짓으로 가득한 글이 있는가 하면, 진실성이 희박한 글들도 있다. 그러더라도 독자들 거의는 속는 줄 알면서도 읽어주기도 한다. 이는 진실 솔직한 글이 드물다는 증거이다. 솔직한 글만 존재한다면 이런 문제는 시비를 가릴 필요가 있겠는가? 장소현 시인의 글은 문학적인 비유나 유능한 글 솜씨에서 나타나는 점도 간과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솔직 담백한 그의 자세가 독자들을 여지없이 감동시킨다. 이것이 장 소현 시인의 글의 생명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글을 든다면 두말 할 것 없이 <성경>이다. 지나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솔직하게 기록했다. 위선이나 꾸밈이 없다. 오직 사실 그대로일 뿐이다. 마치 성경 기자들은 부끄러움초차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경을 기록했나 싶을 정도이다. 진정으로 솔직하게 쓴 글만이 진실로 참다운 글이다. 거짓이 가미된 글은 빈껍데기 글이다. 이런 점에서 장소현 시인의 솔직하고 품위 높은 글에 찬사를 드린다. 나날이 더욱 맑고 밝게 정진하시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최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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