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찬강문학상 시조 심사평/본심 심사위원 이승하

2017.09.12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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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천강문학상 시조 심사평

 

 본심 심사위원 이승하(시인, 중앙대학교 교수)

         

2017년 제8회 천강문학상 시조 부문에 이렇게 많은 작품이 응모된 것은 시조시단의 활성화를 말해주는 확실한 증좌일 것이다. 등단 초년의 기성시인과 습작기의 예비시인이 다 투고할 수 있어서 그런지 기성시인의 원숙함과 예비시인의 신선미를 두루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심사 자리였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21명의 작품을 재독, 삼독하면서 느낀 것은 시조시단의 변화였다. 시조의 틀(형식)은 여전히 지키고 있지만 언어 표현이 대단히 세련되고 상상력이 기상천외해서 그런지 구태의연한 시조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시조의 형식은 정형이지만 내용은 열려 있는 총체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신예 시조시인들이 시조시단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고, 이것은 시조시단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일부 시인들에 의해 엇시조와 사설시조 쓰기가 붐을 이루고 있는데, 투고작 중에도 적지 않게 발견되었다. 형식면에서 본다면 분명히 조선조 후기의 사설시조를 연상케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실험도 아니요 파격도 아니다. 오히려 가락을 잃고 언어유희에 치우쳐 시조시단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 않은지 심히 걱정이 된다.

 

<망우정에서>는 곽재우 장군이 영암에서 2년간 유배를 한 뒤에 귀향, ‘망우정’이란 정자를 짓고 만년을 보낸 사실에 근거하여 쓴 시조다. 문학상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으로서 주제도 튼튼하고 품격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낯익은 시상 전개와 표현이어서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머지 작품 중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다는 점도 아쉬웠다. 시조는 닫힌 구조이기에 더 넓은 세계를 꿈꾸어야 하는데 “갓 헹군 낡은 생각을 빨랫줄에 걸어둔다”(「이른 봄에」)는 표현 그대로, 낡은 생각에 머물고 있다.

 

<꽃대, 일어서다>는 정석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형식상의 정격이야 박찬호나 류현진의 투구를 연상케 하지만 좀 더 멋진 상상력을 보여주기를 요망한다. <돌도끼 리모컨> 같은 흥미로운 작품이 한두 편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해감><새벽의 바깥>의 도회적 감수성을 높이 사고 싶다. 아직도 시조잡지에 발표되는 시조의 절반 이상이 계절의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자연친화적이며 농경사회의 풍습을 더듬고 있다. 그런데 찜질방을 찾아드는 노숙인, 수원역 앞 광장의 총알택시 기사들, 말죽거리의 구두수선공, 수원 장안공원의 노인네 등에 대한 묘사가 여간 세련된 것이 아니다. 서민적 삶의 실감도 전해지지만 위트와 유머가 있다. 3위로 밀려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차디찬 패러독스> 6편은 시조시단의 밝은 미래를 예감케 한다. <붉은 데자뷰> 같은, 주최 측의 취지를 반영한 작품도 있지만 <차디찬 패러독스>는 제목부터 눈길을 끌어당긴다. 세계 최정상급의 바둑기사를 무너뜨린 인공지능 알파고를 다룬 작품이다. 제목이 좋기는 한데 본문과 거리감이 있는 아쉽고, 4개의 종장 중 뒤의 3개 종장이 영 모호한 것도 아쉽다. 하지만 이 시조가 환기하는 문제의식과 문명비판정신은 결코 만만치 않다. <바람의 섬> <서울역 2번 출구>의 역사의식도 견고한 성채 같아서 상찬하고 싶다.

 

시조 부문의 대상은 소재ㆍ주제ㆍ표현의 삼박자를 완벽하게 이룬 <3대 조폭>으로 결정한다. 마늘밭에 바랭이와 뚝새풀과 쇠비름이 달려들어 수확이 어려워지자 농약을 쳐 물리쳤다는 범상한 이야기를 이렇게 현란한 언어의 불꽃놀이로 보여주고 있으니,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조직폭력배를 퇴치하는 경찰의 행위에 빗대어 그려나간 이 시조는 시조에 대한 일반인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데 일조할 뿐 아니라 새로운 시조 세계의 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공약公約 & 공약空約> <색깔론> <반딧불혁명> 같은 시대상황에 대한 비판의식도 뻔한 소재와 진부한 주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시조시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시조도 얼마든지 현실을 풍자할 수 있고 세태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통곡의 벽>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다루었다. 어느덧 망각해버린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들춰내어 반성을 촉구한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우리는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인재’라고 하면서도 미연에 방지하지 않고 거듭 되풀이하는데, 이 점을 잘 일깨워주고 있다. “청맹과니 권력 앞에 넝마가 된 민주주의”(「반딧불혁명」), “이성 잃은 색깔론자 색출 작업 명목 아래”(「색깔론」) 같은 사회비판의식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은유성과 상징성을 좀 더 지녀야 할 것이다. 입상하신 두 분께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낙선하신 분들께는 위로의 악수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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