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나이
2005.04.09 18:10
진짜 사나이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신영숙
아들이 봉투 하나를 내민다. 용돈이란다. 손에 받아들었지만 나는 이 돈을 아까워서 쓰지 못할 것 같다. 아들이 겪은 인고의 시간들을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기에 먼발치서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던 날, 머리를 짧게 자른 아들의 모습이 왜 그리도 춥게 보이던지, 누나와 헤어지면서 서로 끌어안고 펑펑 울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들 혼자 보낼 수 없어 우리 부부는 논산까지 동행했었다. 훈련소의 이모저모를 화면으로 소개하고 가족과 함께 숙소 세탁실 등을 둘러보게 한 후 연병장에 모인 신병들을 열을 세워 점호를 한 뒤 모두 어디론가 빠져나갔다. 아들의 모습을 눈으로 더듬으며 한참을 서있다가 연병장이 텅 비워버린 걸 확인하고서 우리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시절 남편의 직장은 서울에 있었지만 나를 혼자 가게 할 수가 없었던지 전주까지 함께 하면서 우리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이 퉁퉁 부어오르도록 울었다. 이튿날 아침, 어디서 시계소리가 울리기에 아들방 문을 여니 주인 없는 방에서 시계는 제 직분을 다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현관 열쇠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걸 보다 당분간은 아들이 집에 올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퍼져서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나는 그때의 기분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는 편지가 왔다. 자식 소식에 지쳐있던 내게 한 고비를 넘겼구나 하는 안도와 또 다른 시작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넋두리를 늘어놓고 싶어 대상을 물색하다가 이름도 모를 대대장에게 위문편지를 썼다. 아들에 대한 얘기들을 적다보니 장문의 편지가 되었다.
어렸을 때 아파서 가슴 철렁하게 했던 얘기, 군대를 보낸 후의 심정 등, 너무도 간절하게 적다보니 많은 얘기들을 늘어놓게 되었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저 대대장입니다, 아들을 정성 드려 키워서 군대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들여 기른 나무는 옆으로 틀어지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잠깐 기다리십시오." 하더니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바꿔주는 게 아닌가. 얼마나 긴장했던지 말을 못하고 네! 네! 네! 만 연발했다.
갓 들어온 신병이 대대장 앞에 불려 갔으니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나만 자식 군대 보낸 것도 아닌데 왜 그리도 못 견뎌했던지. 면회를 갔다 헤어질 시각이 되면 아들도 고개를 돌리고, 나도 목으로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그 무엇을 참아 내느라 손은 자꾸만 눈가를 훔치고 그러기를 몇 번이었는지 모른다.
상병이 된 후론 면회 시간이 남았는데도 엄마 빨리 가시라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쯤에는 나도 차츰 마음이 안정되고 접어두었던 수영장도 드나들며 내 생활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다 제대를 하게 되고 학교에 돌아오니 더 큰 취업이라는 과제가 앞을 가로막았다. 대학 졸업을 하고 제 꿈을 펼치기 위해 서울의 고시원 한 평 짜리 방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제대로 발도 뻗지 못할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햇볕을 받지 못해 얼굴은 백짓장보다 더 희고 계절이 바뀌었는지, 봄꽃이 피었는지, 무슨 옷이 유행인지, 요즘 인기 있는 연예인은 누구인지, 세상과 담을 쌓고 토굴 같은 방안에 묻혀 생활하기를 몇 년, 그 좋은 나이에 데이트 한 번 못해보고 세월을 보냈다. 처음에는 정말 느긋한 마음으로 해보자고 시작했던 게, 해가 자꾸만 바뀌다보니 나이가 들어 물러 설 곳이 없었다.
아들이 큰 결심을 하고 방향을 선회하여 펼쳤던 꿈의 날개를 접고 이제 공무원이 되었다. 사회 초년생! 이제 첫 발을 내딛었다. 국방의 의무도 마치고 나라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아들은 이제 진짜 사나이가 되었다. 그런 아들이 준 용돈이니 얼마나 대견하고 소중한지 모른다. 내 어찌 그 돈을 허투루 사용할 수 있겠는가.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신영숙
아들이 봉투 하나를 내민다. 용돈이란다. 손에 받아들었지만 나는 이 돈을 아까워서 쓰지 못할 것 같다. 아들이 겪은 인고의 시간들을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기에 먼발치서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던 날, 머리를 짧게 자른 아들의 모습이 왜 그리도 춥게 보이던지, 누나와 헤어지면서 서로 끌어안고 펑펑 울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들 혼자 보낼 수 없어 우리 부부는 논산까지 동행했었다. 훈련소의 이모저모를 화면으로 소개하고 가족과 함께 숙소 세탁실 등을 둘러보게 한 후 연병장에 모인 신병들을 열을 세워 점호를 한 뒤 모두 어디론가 빠져나갔다. 아들의 모습을 눈으로 더듬으며 한참을 서있다가 연병장이 텅 비워버린 걸 확인하고서 우리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시절 남편의 직장은 서울에 있었지만 나를 혼자 가게 할 수가 없었던지 전주까지 함께 하면서 우리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이 퉁퉁 부어오르도록 울었다. 이튿날 아침, 어디서 시계소리가 울리기에 아들방 문을 여니 주인 없는 방에서 시계는 제 직분을 다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현관 열쇠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걸 보다 당분간은 아들이 집에 올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퍼져서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나는 그때의 기분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는 편지가 왔다. 자식 소식에 지쳐있던 내게 한 고비를 넘겼구나 하는 안도와 또 다른 시작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넋두리를 늘어놓고 싶어 대상을 물색하다가 이름도 모를 대대장에게 위문편지를 썼다. 아들에 대한 얘기들을 적다보니 장문의 편지가 되었다.
어렸을 때 아파서 가슴 철렁하게 했던 얘기, 군대를 보낸 후의 심정 등, 너무도 간절하게 적다보니 많은 얘기들을 늘어놓게 되었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저 대대장입니다, 아들을 정성 드려 키워서 군대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들여 기른 나무는 옆으로 틀어지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잠깐 기다리십시오." 하더니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바꿔주는 게 아닌가. 얼마나 긴장했던지 말을 못하고 네! 네! 네! 만 연발했다.
갓 들어온 신병이 대대장 앞에 불려 갔으니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나만 자식 군대 보낸 것도 아닌데 왜 그리도 못 견뎌했던지. 면회를 갔다 헤어질 시각이 되면 아들도 고개를 돌리고, 나도 목으로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그 무엇을 참아 내느라 손은 자꾸만 눈가를 훔치고 그러기를 몇 번이었는지 모른다.
상병이 된 후론 면회 시간이 남았는데도 엄마 빨리 가시라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쯤에는 나도 차츰 마음이 안정되고 접어두었던 수영장도 드나들며 내 생활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다 제대를 하게 되고 학교에 돌아오니 더 큰 취업이라는 과제가 앞을 가로막았다. 대학 졸업을 하고 제 꿈을 펼치기 위해 서울의 고시원 한 평 짜리 방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제대로 발도 뻗지 못할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햇볕을 받지 못해 얼굴은 백짓장보다 더 희고 계절이 바뀌었는지, 봄꽃이 피었는지, 무슨 옷이 유행인지, 요즘 인기 있는 연예인은 누구인지, 세상과 담을 쌓고 토굴 같은 방안에 묻혀 생활하기를 몇 년, 그 좋은 나이에 데이트 한 번 못해보고 세월을 보냈다. 처음에는 정말 느긋한 마음으로 해보자고 시작했던 게, 해가 자꾸만 바뀌다보니 나이가 들어 물러 설 곳이 없었다.
아들이 큰 결심을 하고 방향을 선회하여 펼쳤던 꿈의 날개를 접고 이제 공무원이 되었다. 사회 초년생! 이제 첫 발을 내딛었다. 국방의 의무도 마치고 나라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아들은 이제 진짜 사나이가 되었다. 그런 아들이 준 용돈이니 얼마나 대견하고 소중한지 모른다. 내 어찌 그 돈을 허투루 사용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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