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내게
2005.04.20 23:55
꿈이 내게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유상신
"선생님, 선생님은 나를 사랑해주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지요? 그렇지요?" 아무래도 녀석에게 내 속마음을 단단히 들킨 모양이다.
우리 반 아이인 녀석은 '맘대로'병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말씀으로는 어느 수준에서 지능이 멈춰버려 어른이 되어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헤어져 사는 엄마대신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뒷바라지를 해주고 계시지만 뒤떨어지는 녀석의 행동을 전혀 감당하지 못하시는 듯했다. 입학과 동시에 교장실, 행정실, 교무실 할 것 없이 틈만 나면 얼굴을 내미는 녀석을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처음, 교무실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귀엽게 재잘거리는 모습에 잘 대꾸를 해주던 선생님들도, 아무 때나 들락거리며 귀찮게 구는 녀석에게 이젠 무관심하고 짜증나는 표정들이다.
3월 한달 동안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보며 행동에 어떤 변화가 보이길 기대했지만 녀석의 '맘대로'병은 전혀 달라질 기미가 없었다. 매 시간 뒤를 따라 다닐 수도 없고, 도대체 학교 오가길 이웃집 마실가듯 제 맘 대로인 녀석 때문에 나의 하루는 온통 신경이 곤두서있다. 며칠 전부터는 이렇게 노심초사하며 보내야하는 내 자신에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런 치료나 대책도 없이 아이를 보내놓고 무관심한 녀석의 아버지에게도 화가 났다.
어제 점심시간만 해도 그랬다. 5교시 수업종이 울리고 10분이 지나도록 녀석은 교실에 나타나질 않았다. 점심시간마다 도서실에서 책을 읽는답시고 한없이 앉아 있다가 늘 점심을 놓치기에 '혹시나'하고 급식실을 가보았다. 식당아주머니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식사 뒷정리를 하는 속에서 저와 비슷하게 지능이 떨어지는 옆 반 녀석과 '세월아 네월아'하며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라니……. 너무도 태평하게 앉아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라 그동안 꾹꾹 눌러 삼켜왔던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버렸다.
자꾸만 내 눈치를 살피며 기가 죽어있는 녀석을 교실로 데리고 와 벌을 세워놓고는 '교사로서 나의 한계가 여기까진가 싶어' 너무 속이 상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학기초 녀석의 심각성을 알게되었을 때만해도 교사로서의 사명감에 불타있었는데……. '내가 너의 학교엄마가 되어주마. 너의 '맘대로' 병을 내가 한 번 치료해보마.'하고 용감하게 다짐도 했었다.
오후 청소시간이 되자 그새 어딘가를 다녀온 녀석이 쭈뼛쭈뼛 빵 한 개를 내밀었다. 행정 주사 님께서 먹으라고 주셨는데 나를 주고싶다는 것이었다. 유난히 먹을 것을 밝히는 녀석인 줄 알기에, '고맙지만 난 배부르니 집에 가서 할머니랑 나눠 먹어라' 하였더니, 한 번 더 내밀어보다 이내 가방에 집어넣었다.
녀석에게 쏘아 부쳤던 말들이 마음에 얹혔었나보다. 어젯밤, 꿈속에 녀석이 나타났다. 녀석의 생일이어서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파티를 준비해놓고 녀석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꿈속에서도 어딜 돌아다녔는지 녀석은 한참 만에야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폭죽이 터지고 생일축하노래가 교실 가득 울려 퍼졌다. 처음엔 무슨 일인지 놀라 어리둥절하던 녀석이 이윽고 상황을 파악하고 나더니 화들짝 웃음꽃을 피웠다. 그리고 갑자기 와락 나를 껴안고 깡충거리며 큰 소리로 묻는 것이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나를 사랑해주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지요? 그렇지요?" 좋아 어쩔 줄 모르며 거듭 거듭 묻는 그 말에 나는 끝내 아무런 대답을 못한 채 꿈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종일토록 귓가에 맴도는 녀석의 질문은 '이제 그만 뜸들이고 어서 대답 좀 해 보라.'며 자꾸만 나를 채근하고 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얄팍했던 나의 다짐과 가볍기 짝이 없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호되게 나무라면서 말이다.
(2005년 4월 17일)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유상신
"선생님, 선생님은 나를 사랑해주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지요? 그렇지요?" 아무래도 녀석에게 내 속마음을 단단히 들킨 모양이다.
우리 반 아이인 녀석은 '맘대로'병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말씀으로는 어느 수준에서 지능이 멈춰버려 어른이 되어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헤어져 사는 엄마대신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뒷바라지를 해주고 계시지만 뒤떨어지는 녀석의 행동을 전혀 감당하지 못하시는 듯했다. 입학과 동시에 교장실, 행정실, 교무실 할 것 없이 틈만 나면 얼굴을 내미는 녀석을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처음, 교무실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귀엽게 재잘거리는 모습에 잘 대꾸를 해주던 선생님들도, 아무 때나 들락거리며 귀찮게 구는 녀석에게 이젠 무관심하고 짜증나는 표정들이다.
3월 한달 동안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보며 행동에 어떤 변화가 보이길 기대했지만 녀석의 '맘대로'병은 전혀 달라질 기미가 없었다. 매 시간 뒤를 따라 다닐 수도 없고, 도대체 학교 오가길 이웃집 마실가듯 제 맘 대로인 녀석 때문에 나의 하루는 온통 신경이 곤두서있다. 며칠 전부터는 이렇게 노심초사하며 보내야하는 내 자신에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런 치료나 대책도 없이 아이를 보내놓고 무관심한 녀석의 아버지에게도 화가 났다.
어제 점심시간만 해도 그랬다. 5교시 수업종이 울리고 10분이 지나도록 녀석은 교실에 나타나질 않았다. 점심시간마다 도서실에서 책을 읽는답시고 한없이 앉아 있다가 늘 점심을 놓치기에 '혹시나'하고 급식실을 가보았다. 식당아주머니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식사 뒷정리를 하는 속에서 저와 비슷하게 지능이 떨어지는 옆 반 녀석과 '세월아 네월아'하며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라니……. 너무도 태평하게 앉아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라 그동안 꾹꾹 눌러 삼켜왔던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버렸다.
자꾸만 내 눈치를 살피며 기가 죽어있는 녀석을 교실로 데리고 와 벌을 세워놓고는 '교사로서 나의 한계가 여기까진가 싶어' 너무 속이 상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학기초 녀석의 심각성을 알게되었을 때만해도 교사로서의 사명감에 불타있었는데……. '내가 너의 학교엄마가 되어주마. 너의 '맘대로' 병을 내가 한 번 치료해보마.'하고 용감하게 다짐도 했었다.
오후 청소시간이 되자 그새 어딘가를 다녀온 녀석이 쭈뼛쭈뼛 빵 한 개를 내밀었다. 행정 주사 님께서 먹으라고 주셨는데 나를 주고싶다는 것이었다. 유난히 먹을 것을 밝히는 녀석인 줄 알기에, '고맙지만 난 배부르니 집에 가서 할머니랑 나눠 먹어라' 하였더니, 한 번 더 내밀어보다 이내 가방에 집어넣었다.
녀석에게 쏘아 부쳤던 말들이 마음에 얹혔었나보다. 어젯밤, 꿈속에 녀석이 나타났다. 녀석의 생일이어서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파티를 준비해놓고 녀석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꿈속에서도 어딜 돌아다녔는지 녀석은 한참 만에야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폭죽이 터지고 생일축하노래가 교실 가득 울려 퍼졌다. 처음엔 무슨 일인지 놀라 어리둥절하던 녀석이 이윽고 상황을 파악하고 나더니 화들짝 웃음꽃을 피웠다. 그리고 갑자기 와락 나를 껴안고 깡충거리며 큰 소리로 묻는 것이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나를 사랑해주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지요? 그렇지요?" 좋아 어쩔 줄 모르며 거듭 거듭 묻는 그 말에 나는 끝내 아무런 대답을 못한 채 꿈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종일토록 귓가에 맴도는 녀석의 질문은 '이제 그만 뜸들이고 어서 대답 좀 해 보라.'며 자꾸만 나를 채근하고 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얄팍했던 나의 다짐과 가볍기 짝이 없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호되게 나무라면서 말이다.
(2005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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