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을 보셨는지요
2005.04.17 08:04
극락을 보셨는지요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 김명진
원 세상에, 와불(臥佛)이라니요! 처음 와불얘기를 들었을 땐 그저 놀랄 따름이었어요. 부처가 누워있다니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결가부좌로 참선에 드셨거나, 미소 띤 얼굴로 중생을 내려다보시는 입상부처가 내 아는 전부였거든요. 어쩌자고 누워 있는 부처를 조각할 마음이 생긴 걸까요? 궁금증은 커져만 갔지요.
양쪽으로 길게 뻗은 산등성이와 그 사이의 넓은 평지에는 불상과 석탑이 참 많기도 했어요. 이르기를 천불천탑(千佛千塔)이라네요. 천 개의 불상과 탑을 축조하고자 했으니 그 기개가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千'은 단지 산술적 숫자만이 아니라 '더 이상 채울 수 없이 가득한'을 뜻한다더군요. 그러고 보니 이곳의 불적이야말로 뭔가 큰 발원으로 이뤄진 게 틀림없단 생각이 들어요. 탑과 불상들은 형태나 위치가 특이해서 색다른 감흥을 갖게 됐어요.
방형의 다층탑들은 위로만 길쭉하게 뻗어있고 탑신이나 옥개석 폭이 좁아서 균형감각은 없어 보였어요. 굳이 애써서 매끈하고 세련되게 다듬으려는 흔적이 보이지 않아 거칠고 투박했지만 오히려 정겹더군요. 작위적이지 않고 기교부리지 않은 단순함이 이웃집 아낙을 보는 것 같아 편안했지요. 예쁠 것도 없는 자태지만 구석구석 새기고 그린 정성이 갸륵하고 애교스럽기까지 했어요. 둥근 탁자를 몇 겹 쌓아올린 것 같은 원형다층석탑(연화탑)은 본 적이 없어 참 희한하다 했더니 우리나라에는 유래가 없는 석탑이라 하더군요. 하지만 놀라기엔 이른가봐요. 이번엔 주판알 같이 가운데가 튀어나온 커다란 돌덩이를 쌓아올린 탑이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거예요. 탑에 대해 갖고있던 얄팍한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일순간에 깨뜨려버리기에 충분했지요. 놀라워하는 내 무지를 슬쩍 비웃으며 아무 일없다는 듯 능청스레 딴청부리지 뭐예요. 변화무쌍, 예측불허의 탑들이더라고요. 대체 얼마만큼이나 나를 놀라게 할건가 바짝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이 땅의 석수장이들이 누구냐고요. 돌을 밀가루 반죽하듯이 주물러서 얇게 펴고 둥글려 온갖 보물을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요. 그런 재주꾼인 그들이 어쩌려고 저렇듯 파격적으로, 도전적으로, 아무렇게나 던져놓듯이 천연덕스럽게 일을 벌여 놓았을까요?
의문은 곳곳에 산재해 있는 불상을 보는 동안 더해 갔지요. 그것 중 상당수는 눈 코 입 귀가 제멋 대로여서 부자연스러웠고 얼굴과 몸체의 크기도 조화롭지 못했어요. 우스꽝스런 표정하며 어색한 자세는 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들더군요.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 예불해야할 대상 앞에서 헤식은 웃음이나 웃게 만드는 불상이 있다니 재미있잖아요. 어쨌거나 자유분방한 불상이에요. 이런 불상들이 산중턱에 올라 앉아있는가 하면 계곡사이에 숨어있기도 하고 비를 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널따란 바위 밑에 모여있기도 했어요. 처처불상(處處佛像)이니 사사불공(事事佛供)이었겠다 싶더군요. 불교가 국교로 인정받을 때였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많은 불상 중 백미는 아무래도 석조불감 안의 두 불상이 아닐까 싶어요. 부처님이 법당을 벗어나 마당 가운데로 나오신 까닭을 생각해 보았지요. 설법이나 기도 같은 행사들이 대중을 상대로 행해졌기 때문 아니겠어요? 서로 등을 맞댄 독특한 앉음새도 모든 이가 고루 부처께 예불할 수 있도록 배려해서겠지요. 대중에게 눈높이를 맞춘 부처님의 아량이 넓은 마당만큼이나 넉넉해 보이더군요. 불상들은 흔히 보았던 거룩한 모습과는 상관없이 퍽 소탈하고 무던해 보였어요. 그래서인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지요.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까지도 순박해 지는 것 같더라고요.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는 게 종교의 미덕이라면, 여기서만큼은 그 참 뜻이 왜곡되지 않고 살아 있다고 여겨졌지요.
단언하는데요, 나는 이처럼 해학적인 절을 본 적이 없어요. 그저 헤실헤실 웃음이 흘러나오게 하는 절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도 물론 없고요. 어설픈 듯하면서도 소박하고 보기 좋은 불상과 석탑들의 비밀이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지요. 부처님의 뜻을 펼쳐 보일 도량불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거예요. 솜씨 좋은 장인일 뿐 아니라 불심을 간직한 그들은 어떤 선입견 없이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서방정토를 그리며 돌을 다듬었을 거예요. 마치 어린 아이가 모래를 끌어 모아 자기만의 성을 쌓아 가듯이 그들도 신나고 유쾌한 마음으로 작업을 해나갔겠지요.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다, 뛰어난 장인임을 보여 주겠다는 세속적 욕망은 다 털어 내 버리고 한바탕 놀이를 즐기듯이 흥겨운 마음으로 콧노래라도 흥얼거리지 않았을까요? 사심이 없으니 못생겨도 평화롭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니 그토록 다양한 형상이 나올 수 있었을 거예요. 일부러 佛性을 거둬들인 것 같은 그들에게서 도리어 더 큰 불심(佛心)을 보았다면 억지일까요?
이런 곳에서라면 누워 있는 부처도 지극히 자연스럽겠다, 아니 그보다 더 기발한 발상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그럴듯하고 가능하겠다 생각하며 서쪽 산 정상으로 향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좌상과 입상으로 조각된 두 개의 불상이 미처 세워지지 못하고 누워 있는 형태(그래서 미완성 석불이라 한다네요)그것이 와불의 실체더군요. 숱하게 나를 놀라게 했던 석공이 결정적 순간에 어이없게도 내 기대를 배신한 건가 싶으니 맥없이 허탈해지더군요. 머리가 아래로 기운 자세로 수 백년을 누워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데도 표정은 평온하더군요. 오호라, 그럼 그렇지요. 사람들이 맘 편히 살 수 있는 낙원을 꿈꾼 석공이 있었나봐요. 몽고족의 침입도, 무신정변으로 인한 혼란도 없는 순탄한 세상을요. 그는 자기가 바라는 이상세계를 어떻게 형상화할까 고민하다가 와불을 생각해 냈을 거예요. 고통스런 현실을 잠재우고 복을 기원하는 민중들 땜에 늘 마음 졸이던 부처님이시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더 이상 찾아올 일이 없어졌어요. 바라던 태평성대가 된 것이지요. 할 일 없이 무료해 하던 두 분 부처님은 그만 서로 머리를 기대고 산마루에 편히 누워버리신 거지요. 이렇게 엉뚱하고 장난스런 상상을 더하고 보니 비로소 허전함이 가시더군요. 그리고 이런 사연을 가진 와불이야말로 이곳 운주사에 딱 어울리는 불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닭이 울어 작업을 끝마치지 못했다는 전설은 설득력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 맘대로 또 다른 설화를 지어내고선 그럴듯해하며 고개까지 끄덕였지 뭐예요.
생각에 날개를 달아서 그랬나봐요. 걸음을 옮겨 탑 옆에 서면 나도 하나의 탑이 되어 하늘로 뻗어 오르고, 불상 앞에 서면 어느새 부처가 된 듯 손이 모아지더군요. 민중과 석공과 부처가 한데 어울려 흥겹게 춤추었을 절 마당에선 나도 한 사람 고려인이 되어 그들과 장단을 맞춰보았답니다. 둥기둥~둥기둥~아련히 들려오는 가락에 어깨가 자꾸 들썩거려졌지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산그늘이 계곡 아래로 내려와 앉고, 맑은 물에 헹궈 말린 치맛자락 같던 하늘에서 푸른빛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아직은 신명을 다 풀어내지 못한 아쉬움으로 뒤돌아보니, 선명한 원광(圓光)이 절 주변에 찬연히 빛나고 있더군요. 석탑도, 불상도, 사람들도 그 빛 안에서 하나가 되었지요. 거기서 내가 본 것은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 바로 극락이었어요! (2005년 3월 23일)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 김명진
원 세상에, 와불(臥佛)이라니요! 처음 와불얘기를 들었을 땐 그저 놀랄 따름이었어요. 부처가 누워있다니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결가부좌로 참선에 드셨거나, 미소 띤 얼굴로 중생을 내려다보시는 입상부처가 내 아는 전부였거든요. 어쩌자고 누워 있는 부처를 조각할 마음이 생긴 걸까요? 궁금증은 커져만 갔지요.
양쪽으로 길게 뻗은 산등성이와 그 사이의 넓은 평지에는 불상과 석탑이 참 많기도 했어요. 이르기를 천불천탑(千佛千塔)이라네요. 천 개의 불상과 탑을 축조하고자 했으니 그 기개가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千'은 단지 산술적 숫자만이 아니라 '더 이상 채울 수 없이 가득한'을 뜻한다더군요. 그러고 보니 이곳의 불적이야말로 뭔가 큰 발원으로 이뤄진 게 틀림없단 생각이 들어요. 탑과 불상들은 형태나 위치가 특이해서 색다른 감흥을 갖게 됐어요.
방형의 다층탑들은 위로만 길쭉하게 뻗어있고 탑신이나 옥개석 폭이 좁아서 균형감각은 없어 보였어요. 굳이 애써서 매끈하고 세련되게 다듬으려는 흔적이 보이지 않아 거칠고 투박했지만 오히려 정겹더군요. 작위적이지 않고 기교부리지 않은 단순함이 이웃집 아낙을 보는 것 같아 편안했지요. 예쁠 것도 없는 자태지만 구석구석 새기고 그린 정성이 갸륵하고 애교스럽기까지 했어요. 둥근 탁자를 몇 겹 쌓아올린 것 같은 원형다층석탑(연화탑)은 본 적이 없어 참 희한하다 했더니 우리나라에는 유래가 없는 석탑이라 하더군요. 하지만 놀라기엔 이른가봐요. 이번엔 주판알 같이 가운데가 튀어나온 커다란 돌덩이를 쌓아올린 탑이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거예요. 탑에 대해 갖고있던 얄팍한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일순간에 깨뜨려버리기에 충분했지요. 놀라워하는 내 무지를 슬쩍 비웃으며 아무 일없다는 듯 능청스레 딴청부리지 뭐예요. 변화무쌍, 예측불허의 탑들이더라고요. 대체 얼마만큼이나 나를 놀라게 할건가 바짝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이 땅의 석수장이들이 누구냐고요. 돌을 밀가루 반죽하듯이 주물러서 얇게 펴고 둥글려 온갖 보물을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요. 그런 재주꾼인 그들이 어쩌려고 저렇듯 파격적으로, 도전적으로, 아무렇게나 던져놓듯이 천연덕스럽게 일을 벌여 놓았을까요?
의문은 곳곳에 산재해 있는 불상을 보는 동안 더해 갔지요. 그것 중 상당수는 눈 코 입 귀가 제멋 대로여서 부자연스러웠고 얼굴과 몸체의 크기도 조화롭지 못했어요. 우스꽝스런 표정하며 어색한 자세는 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들더군요.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 예불해야할 대상 앞에서 헤식은 웃음이나 웃게 만드는 불상이 있다니 재미있잖아요. 어쨌거나 자유분방한 불상이에요. 이런 불상들이 산중턱에 올라 앉아있는가 하면 계곡사이에 숨어있기도 하고 비를 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널따란 바위 밑에 모여있기도 했어요. 처처불상(處處佛像)이니 사사불공(事事佛供)이었겠다 싶더군요. 불교가 국교로 인정받을 때였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많은 불상 중 백미는 아무래도 석조불감 안의 두 불상이 아닐까 싶어요. 부처님이 법당을 벗어나 마당 가운데로 나오신 까닭을 생각해 보았지요. 설법이나 기도 같은 행사들이 대중을 상대로 행해졌기 때문 아니겠어요? 서로 등을 맞댄 독특한 앉음새도 모든 이가 고루 부처께 예불할 수 있도록 배려해서겠지요. 대중에게 눈높이를 맞춘 부처님의 아량이 넓은 마당만큼이나 넉넉해 보이더군요. 불상들은 흔히 보았던 거룩한 모습과는 상관없이 퍽 소탈하고 무던해 보였어요. 그래서인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지요.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까지도 순박해 지는 것 같더라고요.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는 게 종교의 미덕이라면, 여기서만큼은 그 참 뜻이 왜곡되지 않고 살아 있다고 여겨졌지요.
단언하는데요, 나는 이처럼 해학적인 절을 본 적이 없어요. 그저 헤실헤실 웃음이 흘러나오게 하는 절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도 물론 없고요. 어설픈 듯하면서도 소박하고 보기 좋은 불상과 석탑들의 비밀이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지요. 부처님의 뜻을 펼쳐 보일 도량불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거예요. 솜씨 좋은 장인일 뿐 아니라 불심을 간직한 그들은 어떤 선입견 없이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서방정토를 그리며 돌을 다듬었을 거예요. 마치 어린 아이가 모래를 끌어 모아 자기만의 성을 쌓아 가듯이 그들도 신나고 유쾌한 마음으로 작업을 해나갔겠지요. 좋은 작품을 남기고 싶다, 뛰어난 장인임을 보여 주겠다는 세속적 욕망은 다 털어 내 버리고 한바탕 놀이를 즐기듯이 흥겨운 마음으로 콧노래라도 흥얼거리지 않았을까요? 사심이 없으니 못생겨도 평화롭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니 그토록 다양한 형상이 나올 수 있었을 거예요. 일부러 佛性을 거둬들인 것 같은 그들에게서 도리어 더 큰 불심(佛心)을 보았다면 억지일까요?
이런 곳에서라면 누워 있는 부처도 지극히 자연스럽겠다, 아니 그보다 더 기발한 발상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그럴듯하고 가능하겠다 생각하며 서쪽 산 정상으로 향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좌상과 입상으로 조각된 두 개의 불상이 미처 세워지지 못하고 누워 있는 형태(그래서 미완성 석불이라 한다네요)그것이 와불의 실체더군요. 숱하게 나를 놀라게 했던 석공이 결정적 순간에 어이없게도 내 기대를 배신한 건가 싶으니 맥없이 허탈해지더군요. 머리가 아래로 기운 자세로 수 백년을 누워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데도 표정은 평온하더군요. 오호라, 그럼 그렇지요. 사람들이 맘 편히 살 수 있는 낙원을 꿈꾼 석공이 있었나봐요. 몽고족의 침입도, 무신정변으로 인한 혼란도 없는 순탄한 세상을요. 그는 자기가 바라는 이상세계를 어떻게 형상화할까 고민하다가 와불을 생각해 냈을 거예요. 고통스런 현실을 잠재우고 복을 기원하는 민중들 땜에 늘 마음 졸이던 부처님이시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더 이상 찾아올 일이 없어졌어요. 바라던 태평성대가 된 것이지요. 할 일 없이 무료해 하던 두 분 부처님은 그만 서로 머리를 기대고 산마루에 편히 누워버리신 거지요. 이렇게 엉뚱하고 장난스런 상상을 더하고 보니 비로소 허전함이 가시더군요. 그리고 이런 사연을 가진 와불이야말로 이곳 운주사에 딱 어울리는 불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닭이 울어 작업을 끝마치지 못했다는 전설은 설득력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 맘대로 또 다른 설화를 지어내고선 그럴듯해하며 고개까지 끄덕였지 뭐예요.
생각에 날개를 달아서 그랬나봐요. 걸음을 옮겨 탑 옆에 서면 나도 하나의 탑이 되어 하늘로 뻗어 오르고, 불상 앞에 서면 어느새 부처가 된 듯 손이 모아지더군요. 민중과 석공과 부처가 한데 어울려 흥겹게 춤추었을 절 마당에선 나도 한 사람 고려인이 되어 그들과 장단을 맞춰보았답니다. 둥기둥~둥기둥~아련히 들려오는 가락에 어깨가 자꾸 들썩거려졌지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산그늘이 계곡 아래로 내려와 앉고, 맑은 물에 헹궈 말린 치맛자락 같던 하늘에서 푸른빛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아직은 신명을 다 풀어내지 못한 아쉬움으로 뒤돌아보니, 선명한 원광(圓光)이 절 주변에 찬연히 빛나고 있더군요. 석탑도, 불상도, 사람들도 그 빛 안에서 하나가 되었지요. 거기서 내가 본 것은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 바로 극락이었어요! (2005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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