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불뚝이의 비애

2005.04.21 21:49

양용모 조회 수:76 추천:8

배불뚝이의 비애(悲哀)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양용모


  어느 해부터인지 내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복부비만이지 말하자면 똥배가 튀어나온 것이다. 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먹는 것, 운동하는 것에 별 신경을 안 썼지만 이제는 꽤 근심이 된다. 몸무게도 불어 의사가 비만이라고 진단한지도 이미 오래 되었다. 옷을 입으면 앞으로 푹 나온 배를 감추려 신경을 써야 하고, 목욕탕에 가서 옷을 벗으면 내가 봐도 흉하다. 작달막한 다리에 푹 나온 배, 떡 벌이진 가슴, 어찌 내 모습이 이리 되어 버렸는가. 나도 한때는 배에 임금왕자가 그려지는 단단한 근육질의 멋진 사나이이었다.


예전 같으면 적당하게 배가 나오면 고생을 하지 않은 귀공자로 치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 옛날 말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 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삼십대 후반부터인 것 같다. 술을 좋아한 탓에 맥주를 즐겨 마시고, 새벽까지 술집에 눌러 않아 권커니잣커니 하였으니 그리 될 만도 하다. 세상사 만만한 게 아니고 직장이 즐거운 놀이터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산다는 것이 피곤하지 않겠는가.  


복부 비만의 공포는 나를 늘 짓누른다. 아내는 나의 뱃살에 대한 염려로 노심초사하고 있다. 음식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운동을 권하는 일까지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급기야 3년 전에는 한방병원에서 복부 살 빼기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한 달 남짓 침도 맞고 한약도 먹고 운동을 하였지만 일시적으로 6kg 정도 빼는데 그치고 말았다.


살 빼는 일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남들은 쉽게 말할 수도 있고, 또 살을 빼는 일로 업을 하는 사람들은 쉬운 말로 유혹하기 일쑤지만 그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음식의 유혹은 물론이고 피골이 상접하여 사람들로부터 “어디 아프냐?” “얼마나 살겠다고 그리 무리를 하느냐?” 심지어는 “그리 살아서 무슨 영화가 있겠느냐?”는 등의 조롱을 받기 일쑤였다. 그 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또다시 속세의 섭생을 탐닉한 결과 내 배는 원위치가 되어 버렸다.


한의학적으로 인간의 체질은 태음인(太陰人) 소음인(少陰人) 소양인(少陽人) 태양인(太陽人)으로 나눈다고 한다. 태음인은 간대폐소(간이 크고 폐가 작다)의 체질로써 영양의 흡수축적의 기능이 강하고, 소모배설의 기능이 약하여,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비만인 경우가 많다. 즉 비만인 사람의 70%는 태음인인 것이다. 내가 바로 태음인인 모양이다. 반면에 소음인은 소모배설의 기능은 강하고 흡수축적의 기능은 약하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찐다. 소양인은 흡수축적의 기능은 강하나 태음인만 못하고, 소모배설의 기능은 약하나 소음인만 못하는 체질을 말한단다. 또한 태양인은 드물지만 폐대간소(폐가 크고 간이 작다)로써 소모배설의 기능은 강하고 흡수축적은 약하지만 적당하여 비만이 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근육질의 몸짱이 된다. 나로서는 부러운 체질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음식을 가리면서 적게 먹는 습관이 있었다. 어릴 적에는 맛있는 것 위주로 적게 먹었으며 나이 들어서는 음식을 가리지 않으며 적게 먹는다. 이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친구들과의 모임에 가면 음식을 시킬 때에 언제나 내 의견은 무시당한다. 조금 먹고 말 사람이 대충 얻어먹으라는 뜻이다. 그 말에 나는 크게 이의를 달지 않는다. 어차피 조금 먹고 말 것이니 그렇다. 또한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 습관 때문에도 그렇다. 아무거나 잘 먹는다. 문제는 적게 먹고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먹는데도  살이 자꾸 찐다는 것이다.


배나온 사람의 설음을 아는가. 출근 준비를 하는 나의 배를 보고 아내의 근심은 깊어만 간다. 나이도 있으려니와 텔레비전의 무슨 대사중후군이니, 비만이 만병의 원인이라느니 하는 프로그램의 경고에 걱정이 앞서서일 게다. 그런 아내의 걱정도 걱정이지만 나의 처지는 어떠한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공포를 느껴야 한다. 밥 한 숟갈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마음이 편치 않다. 먹는 게 즐거워야 하는데 이것은 도무지 고통스러운 일이다. 좋아하는 한 잔 술에 취하고 싶어도 고개를 저을 때가 많다. “에라, 참자 참아.” 어쩌다 사우나에 가면 이것은 죄진 사람 행세를 해야 할 지경이다. 떡 벌어진 체구, 균형 잡힌 몸매, 쏙 들어간 배, 단단한 근육질의 젊은이들은 나를 주눅 들게 한다.


문득 내 나이를 돌아보니 50줄이다. 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부지런히 운동을 하여 뱃살을 줄여 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내 배를 툭툭 쳐본다. 아직도 장구 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