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의 아리조나 호 기념관에서

2005.04.13 06:32

김재훈 조회 수:49 추천:6

진주만의 아리조나 호 기념관에서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 김재훈


‘도라 도라 도라’
하와이 진주만 상공에 도착한 일본 전투기들은 작전성공을 알리는 이 암호에 따라 환호성을 지르며 무차별 폭격을 시작한다. 정박해 있던 미 항공모함들과 전투기들은 순식간에 모두 박살이 나고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채 진주만은 불바다로 변한다.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다.

나는 지금 그 진주만의 아리조나 호 기념관에서 진주만의 피습 장면을 영상물로 다시 보았다. 그 때 이곳 진주만에는 미 전함 아리조나 호를 비롯한 130척의 함정들이 정박해 있었다. 이날의 폭격으로 총 사망자는 2,318명이나 됐고, 아리조나 호에 탑승했다가 죽은 자만도 1,177명이나 됐다. 부푼 휴일 아침 갑작스런 공습으로 순식간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갔다. 불에 타 죽기도 하고 바다에 빠져 죽기도 하면서 아비규환이었을 것이다. 폭격소리는 천지를 진동시키고 이 진주만의 하늘은 검은 연기로 가득했으리라. 얼마나 황당하고 참담했을까.

독일, 일본, 이태리의 3국 동맹이 이루어지자, 일본 군부는 미 태평양 함대의 기동력을 빼앗기 위하여 핵심요지, 진주만에 기습 공격을 결정한 것이다. 41년 12월 7일 아침이었다. 이날의 작전은 일본으로선 대 성공이었다.
전쟁의 발단은 일본의 지나친 야욕 때문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정책은 한국의 식민지화도 부족했다. 그들은 중국과 인도차이나에 대해서도 욕심을 냈다. 이에 미국이 강력히 제동을 걸자 일본 군부는 전쟁을 선택한 것이다.

아리조나 호 기념관은 침몰된 전함의 중앙부에 가로질러 지은 건축물로서 아리조나 호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이름을 대리석 벽에 새겨놓은 영안실이며 의식을 치르는 집회장이다. 물밑을 보니 침몰한 전함의 잔해가 있고 그 위에 수초가 너울거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얼마나 많은 폭탄 세례를 받았기에 거대한 전함이 저렇게 처참하게 침몰했을까. 불바다이던 그날의 참상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날 이 배에 탔다가 죽은 수많은 병사들의 넋이 아직도 저곳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념관에는 죽은 자의 명단과 전함의 잔해만이 있을 뿐 진주만은 말이 없다.  

인간의 욕망이 무한한 것처럼 국가라는 삶의 공동체의 욕망도 무한한 것인가.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고 싶어 하고, 아홉을 가지면 열을 채우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개인이나 국가나 서로 뺏기 싸움에 영일이 없다. 더욱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작은 이익마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공존과 평화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러기에 그 많은 전쟁의 참상을 겪었으면서도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는 것인가 보다.

생명의 존엄과 인권을 부르짖으면서도 걸핏하면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을 무차별 살상하는 저 전쟁을 지구상에서 영원히 추방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무릇 세상의 모든 종교가 설파하듯 사랑과 자비가 오대양육대주 곳곳에 넘쳐, 저 넘실거리는 물결처럼 흐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어느 날 홀연히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에 두고 부푼 꿈마저 접고 비명에 간 수많은 영령들이여! 세계평화와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고귀한 목숨을 바친 그대들에게 고개 숙여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