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인

2005.05.21 09:39

양용모 조회 수:271 추천:10

나의 애인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양용모

  

나에게는 애인이 있다. 이를테면 조강지처말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깨물어주고 싶은 애인,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절세가인 같은 애인이 있다. 나는 애인을 마누라보다 더 사랑한다. 마누라는 그저 먹고 사는 것에 매달려 어쩔 수 없이 의존하지만 애인은 내 스스로 좋아서 가까이하고 있다.

  

마누라는 나더러 일을 못한다고 핀잔도 주고 벅찬 세상에 모순의 짐을 지워주면서 이익을 창출하라고 다그치지만 내 애인은 그런 것에 관심조차 없다. 마누라는 때로는 거짓말을 하게 하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게끔 하지만 애 애인은 진솔하기만 하다. 마누라는 나에게 확실한 성과를 요구하고 그에 대한 보수를 주지만 내 애인은 그런데 연연하지 않는다. 마누라에게서 나는 늘 떠나고 싶지만 애인은 늘 만나고 싶다. 마누라는 나를 부릅뜬 눈으로 감시하고 효율을 따지면서 값어치를 매기지만 내 애인은 나의 존재에 관계없이 나를 좋아한다. 마누라는 늘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나의 애인은 그런 일이 없다. 늘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만 한다.

  

나의 애인은 잠시라도 헤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어쩌다가 짬을 내어 만나면 기쁜 마음이 들고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나의 애인은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찾아와 책상 앞에 않으라고 손짓한다. 그러나 내 애인은 내가 만나고 싶어 몇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애를 태울 때도 있다. 나는 늘 애인하고만 같이 있고 싶고 애인과 언제까지나 죽도록 사랑하고 싶다.

  

나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때인 것 같다. 전주에서 하숙을 하고 있던 무렵인데 가장인 할아버지가 몹시 편찮으셔서 집안이 우울할 때였다. 나는 편지를 썻다.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쾌유를 비는 편지였다. 나의 간곡한 편지는 할아버지와 집안사람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물론 객지에 나가있는 귀여운 손자의 편지라 그랬겠지만 할아버지는 나의 구구절절한 편지를 받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그러고는 그 편지를 병 문안 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자랑을 하셨다고 한다.

  

나는 애인하고 결혼은 하지 못했다. 내가 애인을 믿고 결혼하여 호구지책을 할만한 자신이 없었다. 나는 애인을 버리고 자동차 기술자가 되었다. 자동차 기술자라는 직업은 나의 조강지처이다. 먹고사는데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난 조강지처보다 애인을 더 사랑한다.

  

애인이 나에게 크나큰 선물을 준 것은 사내에서 공모한 <백일장대회>에서다. 나는 <차 한 잔의 추억>이라는 수필로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사장 상을 탔다. 상금도 두둑하였다. 나는 뛸 듯이 기뻤으며 평생 애인을 사랑해야지 하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애인과 사랑을 하기 위하여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마누라와 동거하면서 바람을 피우는 꼴이었다. 스릴 있고 애틋한 사랑의 밀월이었다.

  

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였다. 문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였으나 애인과 열렬한 사랑을 하기는 내 정성이 부족하였던가. 늘 마음에 안 드는 습작만 남발하고 말았다. 5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애인과의 사이는 뜸해지기 시작하였다.

  

공부를 하고 나니 글 쓰기가 두려워진 것이다. 방황하며 절필하던 중에도 나는 미치도록 애인이 그리워졌다. 어느 때는 새벽에 일어나 애인과 밀어를 속삭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애인을 만나려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나는 애인을 간절하게 원하는데 애인은 나에게 늘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나는 고민하여 쓰다가 찢고 또 다시 쓰는 일을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2002년에 나는 애인을 내 품으로 끌어들여 무식하고 용감하게 사랑의 키스를 하고 말았다. 세상이 비웃는 듯한 조롱을 감수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어라>라는 에세이집을 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미완성이었다. 정말 애인에게 부끄러운 사랑의 고백이었다.

  

요즈음 나는 애인을 만나러 매주 목요일에 학교에 간다. 목요일은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운 밤이다. 그리고 나는 애인에게 푹 빠져 있다. 하루에 몇 번이고 전화와 문자를 보낸다. 내 곁에 와달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가슴에 마지막 맺힌 응어리를 풀듯이 절규를 한다. 이제는 우리의 사랑도 세상이 부러워하는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야 할 게 아니냐고 절절한 마음으로 사랑의 호소를 한다. 그러나 나의 애인은 아직 진솔하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애인은 미완성이다. 어쩌면 내가 죽는 날까지 미완성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애인을 배반할 마음이 없다. 나의 애인은 앞으로 친구도 되고 조강지처도 되고 내 삶을 마감할 때까지 내 곁에 있을 테니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일는지도 모른다. 조강지처도 있고 애인도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나는 애인과 마주앉아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고 있다. 사랑하는 나의 애인과 영원히 같이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