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바라기

2005.07.09 00:11

김학 조회 수:64 추천:6

서울 바라기
                       김학(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


지방시대! 서울 사람들이 이 말을 선창하자, 지방 사람들도 덩달아 그 구호를 복창했다. 벌써 오래 전 이야기다. 요즘에도 이따금 지방시대란 말과 마주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처음에 비해 그 감도는 다르다. 한낱 구호만으로는 지방시대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인구의 6할이 서울에 있고, 문화시설의 55%가 서울에 편중돼 있으며, 문화예술 행사의 72%가 서울에서 이루어지고, 출판문화의 95%가 서울에 자리잡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되새겨 볼 때 지방시대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원자탄에 버금갈 위력을 지녔다는 방송이 그토록 '지금은 지방시대'라고 외쳐댔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신문들이 아무리 '지방시대'를 부추겨도 지방시대는 열리지 않았다. 월급쟁이도 예술가도 장사꾼도 서울로 가지 못해 안달이다. 서울로 가야 출세도 하고, 명예도 얻고, 벼락부자도 될 수 있다고 여긴 탓일 게다. 이러한 해바라기 성 서울 바라기 성향이 바뀌지 않는 한 지방시대는 뿌리내리기 어려우리라.
라이샤워 교수는 <일본의 근대화>란 저서에서 이런 지적을 했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스타일을 모방한 일본인들의 의식구조는 목적지향성(Goal Orientation)인데 반해 중국과 한국인의 의식구조는 지위지향성(Status Orientation)이란 것이다. 목적지향성이란 국민 각자가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 최고의 전문가가 되려는 사고방식이라면, 지위지향성은 오로지 높은 자리만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일본은 산업이 고르게 발전할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직업상 서열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머리가 좋던 나쁘던 출세를 위하여 과거시험에 매달리고, 또 과거에 급제한 행운아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자리를 향하여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게 된다. 농경사회가 산업사회, 정보화사회로 변하면서 우리네의 의식구조에도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아직도 지위지향성이란 의식이 굼틀거리고 있는 것 같다.
민선지방자치단체장을 제외한 지방 기관장의 대부분은 하숙생들이다. 가족은 서울에 두고 홀로 직장 따라 지방에 내려와 있기 때문이다. 그들 가족이 이사를 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자녀교육 문제 때문이다. 서울이란 좋은 여건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싶어하는 어버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술분야에도 서울 바라기 현상은 있다. 명성을 얻었다 하면 서울로 옮겨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고향을 지키며 예술분야에 정진하는 이는 가뭄에 콩 나기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어리석거나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문인들이 한 권의 동인지를 내려면 호주머니를 비워야 하고, 연극인이 무대에 서려 해도 호주머니를 털어야 한다. 이처럼 지방의 예술이 '호주머니 털이 예술'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면 지방시대란 구호가 얼굴을 붉히는 건 당연하다.
참다운 지방시대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지방이 서울의 신탁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지방은 지방사람들의 머리와 가슴과 손에 맡겨져야 한다. 그렇게 되는 날, 지방시대의 새로운 지평은 열릴 것이고, 지방시대를 좀먹는 서울 바라기도 사라질 것이다. 공공기관들이 지방으로 이전한다지만 결국 하숙생만 불어나게 되는 건 아닐지 그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