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그리워했던 조국이던가

2005.05.23 16:38

황만택 조회 수:40 추천:7

얼마나 그리워했던 조국이던가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야) 황 만 택


내 나이 채 스무 살도 안 되던 해 군에 입대하여 월남전 파병이라는 국가의 명령을 받았다. 혹독한 훈련을 받은 뒤 부산항 제 3부두를 떠날 때는 내 나라 대한민국 땅을 다시 밟게될지 모르겠다고 맘속으로 되뇌면서 남지나해 검푸른 파도를 타고 장장 5박6일 간의 긴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은 월남 땅 퀴논이라는 항구였다.

도착시각은 오전 10시30분 정도. 역시 열대의 나라답게 날씨는 무척 뜨거웠다. 월남인의 특이한 삼각형 모자며, 두부장수처럼 어깨에 걸머진 물통 같은 짐들, 아오자이 입은 가냘픈 여인들의 자태, 이 모든 것이 낯선 이국 모습으로 다가왔지만, 임무를 마치고 꼭 살아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만은 간절했다.

그 뒤 16개 월 간의 파월 생활동안 생과 사의 전투에서 피비린내 나는 실전을 경험했다.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팬텀 비행기 소리며, 콩 볶듯 쏘아대는 소총소리, 내 키보다 훨씬 큰 정글을 헤매며 숨가쁜 베트콩과의 치열한 총격전이 있을 때 그 날의 참상들이 영화 속의 장면처럼 내 뇌리에 떠오른다.

치열한 싸움터에서 임무를 마치고 내 나라 내 조국으로 향하는 거대한 군함에 올랐을 때에는 벅찬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이 파병됐던 많은 전우들 중에는 전사한 자도 있었고 부상을 입은 전우도 있어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렇지만 살아서 돌아가면서  파랗게 철썩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내 나라 내 조국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그때가 벌써 30년이 훨씬 넘었으니 세월의 무상함이 내 가슴을 저민다. 이제 내 나이 오십대 후반, 내 나라 대한민국에 또 다시 6.25같은 처절한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는 그때의 실전 경험을 살려 누구보다도 내가 먼저 총칼을 메고 뛰어나가 내 조국을 지키리라 스스로 다짐도 해본다.

월남참전으로 전 세계에 강력한 한국군의 인상을 심어주었고, 경제발전은 물론 수 조원의 홍보효과도 거뒀으며, 대한민국의 위상도 한껏 드높였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지나친 지역이기주의, 세대간의 갈등, 극약과도 같은 이념갈등까지 겹쳐 혼란스럽다. 우리들 스스로 마음만 먹으면 매듭을 풀 수 있는 과제들인 것을…….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서 그 풍요로움의 씨앗이 되었던 참전용사들의 앞뒤를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보고, 생명을 바쳐 우리 조국에 헌신한 영령들과 국가유공자들의 고마움을 마음 깊이 새겨볼 일이다. 또 우리들도 앞으로 우리의 자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모두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좋겠다. 호국 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조국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할 일이다. ( 2005. 5.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