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은 사랑

2005.05.26 00:27

이용미 조회 수:89 추천:12

사탕은  사랑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 이용미


  하나, 둘, 셋…….
  이제 여덟, 혹은 아홉 살의 초등학교 2학년. 바지를 입은 다리라 해도 내 팔뚝 굵기 밖에는 안 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계단수를 세는데 여념이 없다. 손으로는 장난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수를 세며 오르고 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들과 동행하는 동안 4백여 계단을 쉽게 올랐다. 조그만 얼굴들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땀방울이 흐르는데도 관심은 오직 계단의 숫자다. 상품으로 내건 사탕보다는 자기가 센 수치가 정확하게 맞아서 여러 사람 앞에서 으쓱대보는 것이리라. 그들의 뜻을 헤아리기에 빨리 답을 알려 달라는 독촉에도 맨 나중 아이가 합류할 때까지 웃음으로 보류했다.

  며칠 전 그네들의 담임인 젊은 선생님이 군청과 내게 정식으로 해설요청을 해왔다. 즉석에서는 유치원생들에게도 간단한 설명을 해준 일이 있지만 이제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무엇을 어떻게 설명을 해서 한 가지라도 머리에 남게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해설의뢰는 받지 말라는 어떤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내린 결론은 어디에선가 들은 말 중, 내가 좋아하며 즐겨 쓰는 “구멍 뚫린 시루에 콩을 놓고 물을 주면 물은 다 새버리지만 그래도 콩나물은 자란다.”였다. 그렇다. 지금껏 해온 경험으로 적당히 물을 부어보자. 새는 것은 새는 것이고 자라는 것은 자라는 것. 내가 준 한 번의 물로 얼마가 자랄까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고, 주인이 애지중지 키우는 콩나물에 객이 정성들여 한 번 물을 주어보는 심정으로 임하기로 했다.

  암수 마이산의 전설을 설명하면서 성우흉내를 내어 목소리에 변화를 주고 손과 몸동작을 곁들여 그 어린이들의 주의를 끌려고 노력했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한데 모이고, 꼴깍 침까지 삼키는 모습은 내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등나무 그늘 밑 의자에서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꼼짝도 하지 않았다.
“10년 후에는 여러분도 대학생이 되겠지요? 그때는 암마이산의 병도 다 나아서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와 다시 찾는다면 아주 반갑게 맞을 거예요. 그때가 기다려지지요?”
그때서야 여자아이들은 입을 손으로 가리며 킥킥대고 남자아이들은 씩 웃었다.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 그토록 조용하던 아이들은 한꺼번에 귀를 윙윙 울리게 난리들이었다. “정말 사람이 산으로 변했는가, 산이 사람으로 변했는가, 어떻게 산이 말을 하는가? 답을 알려 달라, 사탕은 정말 줄 것인가?” 등 질문이 쏟아졌다. 그때서야  계단 밑에서 했던 질문과 약속이 생각난 모양이다.

   생각보다 크고 무거운 배낭을 멘 조그마한 아이들을 데리고 오르막길을 쉽게 오르기 위해서 계단 수를 맞히는 사람에게는 진안의 특산물로 만든 홍삼사탕을 준다고 약속했다. 요즘 세상에 그깟 사탕으로 애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게임이라면 게임이기에 애들은 재미있어 했다. 자기도 모르는 새 마지막 계단을 밟고 있었고, 그 후에는 바로 이야기에 빠져 게임의 결과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한 아이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근사치를 얘기했지만 정확한 것은 우리도 셀 때마다 다르기에 알 수 없는 것. 모두 비슷하게 맞추었으니 돌아가는 버스를 탈 때 나눠주마고 했지만 그 뒤로 몇 곳에서 설명을 하는 중간에도 수시로 정말 사탕을 주느냐고 다그치는 걸 보니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집중력이 모자란 아이들을 2시간 가까이 한 곳에 끌어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온몸으로 느끼며 젊은 선생님을 존경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숲 체험을 한다는 아이들을 뒤에 남겨두고 내려와 판매장에서 홍삼사탕 한 봉을 샀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표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참, 내 이게 무슨 짓인가. 투자일까? 투자라면 이익창출을 위한 것이련만 사탕 한 봉에 무슨 이익창출의 의미까지 부여한단 말인가. 이건 사랑이다.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의 아줌마인 내가 신바람 나서 하는 일에 때 묻지 않은 맑고 밝은 마음으로 호응해준 아이들이 고맙고 예뻐서 사랑을 주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