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견문기(4)
2007.06.03 16:14
유럽 견문기(4)
-이태리에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중) 김호택
이태리(ITALY)는 로마제국의 찬란한 역사와 르네상스의 화려한 꽃을 피운 나라로 자동차공업, 패션산업, 관광산업 등으로 경제를 이룩한 나라다. 지역적으로 공업과 패션이 발달해 부유한 ‘밀라노’ 등 북부 이태리는 국민소득(GNP)이 3만 불을 넘는다고 한다. 반면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농업과 어업이 주를 이루는 가난한 ‘나폴리’ 등 남부 이태리는 국민소득(GNP)이 1만 불 정도로 극심한 지역경제의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하였다. 인구는 약 5천 7백만 명이며 면적은 30만㎢로 한반도의 1.4배이다.
‘밀라노’는 대구시 크기의 경제중심도시로 근대공업, 문화의 중심지다. 또한 세계 3대 패션의 도시라고 하면 뉴욕, 파리, 밀라노를 꼽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패션쇼이고, 스파게티와 피자라는 음식문화도 잘 알려져 있다. 밀라노 시에는 3천백50개의 거대한 조각 군으로 1386년 착공하여 19C초에 완공한 것으로서 450년에 걸쳐 지은 세계에서 두 번째 큰 규모인 두오모(Duomo)성당이 있다. 중세에는 국부(國富)를 성당의 규모로 말하는 것 같았다.
북부 ‘밀라노’에서 수도 ‘로마’를 거쳐 남부 ‘나폴리’까지 가는 A원 고속도로는 우리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주간선 고속도로로서 각 지역별 노선과 연계된 고속도로였다. 1960년대 우리나라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보고 수행원에게 우리나라도 고속도로를 건설하라고 지시했다는 일화가 있다. 고속도로 실무 팀들은 일찍이 도로가 잘 발달된 이태리 A원 고속도로를 보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경부고속도로 건설계획을 세웠다고 하였다.
제한속도는 없으나 버스는 시속 100㎞ 등 차종별로 제한을 두고 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고속도로에서 500CC이상 오토바이를 통행하도록 허용하고 있었다. 휴게소 화장실 이용은 무료이나 청소 팁을 접시에 20센트씩 놓아야 한다. 그리고 고속도로 이외 화장실은 1유로(1,280원) 정도의 유료화장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밀라노에서 A원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끝없는 평야를 달려 ‘아페니노’ 산맥을 넘어 사탑이 있는 피사를 거쳐 지방도시 같은 수도 ‘로마’에 도착했다.
산맥을 넘어 오는 동안 산속의 외딴집과 마을을 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흑사병과 격리, 종교적인 차원에서 하느님과 좀 더 가까이 살고 싶어 높은 산에 집을 지어 살고 있단다.
‘로마’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지닌 도시다. 도시 전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는 옛 유적을 그대로 보존한 채 현대문명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소매치기와 좀도둑으로 악명이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간 1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을 만큼 관광업이 발달한 도시라고 한다. 고대부터 ‘모든 길은 로마로 통 한다’는 말이 있듯이 육지, 수상교통의 중심지이며 ‘로마’를 기점으로 이태리의 모든 교통이 발달되어 있다고 하였다.
콜로세움, 포르로마노, 트레비분수 등이 ‘로마시대’의 전성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태리의 수도인 ‘로마’ 안에는 바티칸시국(VATICAN CITY)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으로 잘 알려진 이곳은 전 세계 가톨릭의 총본산인 ‘교황청’이다. 인구는 약 9백 8십여 명에 면적은 1㎢의 절반도 못된다. 중심지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국경이 나온다.
나는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시국’을 보려고 국경을 이루는 천 3백년 된 성벽아래에 세계에서 구름같이 몰려온 입장객이 몇 백 미터 줄을 서서 2시간여 만에 입장할 수 있었다. 성 베드로 성당, 바티칸 박물관, 시스티나예배당을 관람하였다. 르네상스시대의 천재적인 화가 미켈란젤로가 그린 벽화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를 보고 세계의 신앙인들이 몰려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태리 남부지역으로 가는 길 폼페이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2만 5천여 명이 살고 있는 도시 전체가 화산재로 파묻힌 비운의 도시였다. 폼페이는 로마제국의 어떤 도시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위락시설로 로마귀족들 사이에 인기 높은 도시로 상업도 발달했었다고 한다. 상가는 돌 문턱에 미닫이 골이 있고, 매창가는 방문위에 춘화도가 그려져 있으며, 마차도로는 양편에 인도가 설치되고, 가정집은 마당에 우물이 있었다. 노예들에 의해 건설된 귀족도시 같았다.
“돌아오라 소렌토로 (come back to Sorrento)”와 “오! 솔레미오(O sole mio)”는 모두 세계에서 가장 친숙한 가곡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소렌토 휴양도시에서 50분간 배를 타고 카프리(capri)섬에 도착했다. ‘카프리섬’은 영국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너 태자비가 신혼여행을 즐겼다고 한 최고의 휴양지다. ‘마리나 그랑데’ 항구에서 절벽의 도로를 미니버스에 몸을 싣고 꼬불꼬불 올라가 해발 6백 2십 미터까지 아슬아슬한 드라이브를 하고나면 리프트를 타는 곳이 있었다. 다시 1인용 리프트를 타고 약 15분정도 올라가는 동안에 아름다운 바다와 동화 같은 집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나는 해발 9백 미터 ‘안나 카프리(Anacapri)’ 정상에 올라 절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지중해 물속의 산호들이 바닷새와 합창을 하며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푸르다 못해 검푸른 지중해와 파란하늘의 조각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모습은 마치 내가 신선이 된 착각에 빠지곤 했었다. 귀여운 ‘섬’ 카프리를 뒤로하고 80분정도 크루즈 배를 타고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나폴리 ‘산타루치아’ 항구에 닿았다. 마피아 조직이 유명한 나폴리 시를 떠나 A원 태양의 고속도로를 달려 14C~16C 르네상스시대에 건설된 ‘피렌체’시에 당도하였다.
진입로 분리대에 오래된 소나무를 심어 ‘피렌체’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전통문화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작은 언덕위의 ‘미켈란젤로’ 광장에 오르니 전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7백년 된 시청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광장에는 포세이돈 상, 미켈란젤로 상, 헤라클레이 상 등의 예술적 조각 작품이 있었다. ‘꽃의 성모마리아 대성당’은 연두색, 하얀색, 분홍색 등 3색의 대리석으로 조화롭게 건축미를 자랑하며 세워져서 웅장함을 더했다. 피렌체 시가지 뒷골목 옛날 마찻길을 거닐어보니 중세풍의 도로와 인도가 작은 대리석 그대로이고, 마차를 만날 수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거꾸로 500년 중세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물위에 떠있는 아름답고 이색적인 수상도시 ‘베니스’는 123개의 섬으로 되어 있었다. 섬을 연결하는 자유의 다리 3㎞의 도로와 철도는 섬 입구 ‘싼타루 역’까지만 바퀴가 달린 차가 갈 수 있었다. 도시 전체가 큰길 , 작은 길, 골목까지 모든 교통수단이 ‘배’였다. 수상버스, 수상택시, 수상청소차 등이 있었다. 인구는 약 30만 명이며 9~15세기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했던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한 도시다.
나는 수상택시로 도시 중심부 수로(水路)를 달리노라니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란 작품을 쓴 호텔이 지금도 성업 중이고, 세계적인 바람둥이 ‘카사노바’의 생가도 수로 옆에 있었다. 또한 ‘곤돌라’를 타고 성악가와 악사가 함께 승선하여 연주하며 수상골목길을 돌아보니 중세 귀족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었다.
‘베로나(Verona)’는 중세적 분위기가 살아 있는 도시로 섹스피어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 의 배경이 된 도시다. ‘줄리엣’ 생가 앞 동상의 ‘줄리엣’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주민과 관광객이 어찌나 만졌는지 빛이 났다. 배경무대라는 ‘영국’과 실화라는 ‘이태리’가 사실여부를 놓고 논쟁중이라고 한다.
‘이태리’는 공중목욕탕이 없고, 신문․우유배달 등 배달이 없는 특이 한나라다. 그리고 ‘낙서동우회’가 있을 정도로 벽면, 지하철 등이 낙서천지다. 동우회 자기들만의 예술이라나? 그리고 점심시간에 손님이 와도 물건을 안파는 등 민원인이나 고객위주가 아닌 ‘주인’위주라고 한다. 알프스산 중턱을 넘어 4시간 반을 달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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