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를 그리며
2007.06.28 12:13
수채화를 그리며
행촌수필문학회 김재훈
얼마 전부터 수채화를 공부하고 있다. 꽃이나 과일 같은 구체적인 정물을 보며 그린다고는 하지만 백지에다 그리는 그 과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는 일이다. 사물에 대한 자기 나름의 관찰을 자신의 느낌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리는 그림인데 생각과는 달리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솜씨가 많이 부족한 모양이다. 새 그림을 다시 시작할 때는 잘 그려 보겠다고 다짐을 해 보지만 끝나고 나면 매번 아쉬움이 남는다. 채색은 물론이고 스케치 단계에서부터 좀 더 신중을 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그림을 그려 본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때가 전부였지 싶다. 그때는 누가 특별히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는데 왠지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고 미술 시간이 좋았다. 가끔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기라도 하면 하늘이라도 날 듯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손을 놓아야 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아마도 내 진로가 그 방면과는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 후 그림은 내게서 아주 멀리 떠나버린 듯했다. 학교를 다 마치고 나서야 가끔 전시회를 찾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림을 감상하다보면 종종 나도 모르게 그림에 깊이 빠져서 자리를 뜰 줄 몰랐다. 특히 풍경화에 관심이 많이 갔다. 그것도 유화보다는 맑고 투명한 수채화에 매력이 더 느껴졌다. 구름이며 물빛이며 자연의 그 절묘한 표현이라니…….
직장에서 퇴직을 하자 시간이 많아졌다. 갑작스레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궁리하다가 그림 생각이 났다. 어쩌면 그것은 나를 유년의 기억 속으로 불러내어 즐겁게 해줄 듯싶었다. 강에서 부화한 연어가 저 멀리 알래스카나 연해주의 심해를 떠돌다가 마지막에는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삶만이 아니라 취미에도 귀소본능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일이 뒤늦게 다시 떠오르는 것이었다.
마침 집 가까운 곳에 수채화를 가르치는 곳이 있어 아내와 함께 등록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조급한 마음에 앞 단계인 데생 과정은 대충 끝내고 곧 채색을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역시 그림이 잘 되지 않았다. 수채화는 투명해야 한다는데 자꾸만 여러 색을 덧칠하여 채도가 낮아지고, 또 입체감이 살아나려면 명암을 잘 나타내야 하는데 그것마저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았다. 잘 그리기 위해 욕심을 낼수록 너무 세세한 데 치우치게 되어 수채화의 멋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격이 여러 번이었다.
이런 내게 지도 선생님이 조언을 해주었다. 그림은 어차피 3차원의 세계에 있는 것을 평면에 반영하는 것인데, 사실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환영(幻影)을 가져와서 그리는 것이라고. 그러니 대상을 너무 자세히 보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거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라고 했다. 실제로 그래야 명암도 더 뚜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도 수채화를 그리듯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간과 공간이란 백지 위에 내 나름대로 그려나가는 내 인생의 수채화. 지나온 세월이 덧없는 한 순간처럼 느껴지는 것은 눈앞의 일에만 지나치게 가까이하며 정신없이 살아온 때문은 아닐까. 한 걸음 뒤떨어져 좀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수채화는 유화와는 많이 다르다. 그리면 수정이 불가능하고, 흰색을 쓰지 않기 때문에 하일라이트 부분을 미리 생각하며 그려야 한다. 우리네 삶도 수채화를 그리듯 먼 훗날의 자신을 그려보며 조금은 더 조심스럽게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염두에 두며 걸어가면 좋지 않을까 싶다.
연두와 갈색을 섞는다. 나뭇가지를 칠하고 옹이 부분은 한 번 더 덧칠을 해 준다. 물이 오른 나무의 끝가지에는 새 잎이 피어나고, 사이사이로 꽃이 수줍게 웃는다. 입체감이 나도록 명암을 좀 더 강하게 처리해 본다. 이번 그림은 어떤 모습으로 귀결될까. 궁금해진다.
행촌수필문학회 김재훈
얼마 전부터 수채화를 공부하고 있다. 꽃이나 과일 같은 구체적인 정물을 보며 그린다고는 하지만 백지에다 그리는 그 과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는 일이다. 사물에 대한 자기 나름의 관찰을 자신의 느낌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리는 그림인데 생각과는 달리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솜씨가 많이 부족한 모양이다. 새 그림을 다시 시작할 때는 잘 그려 보겠다고 다짐을 해 보지만 끝나고 나면 매번 아쉬움이 남는다. 채색은 물론이고 스케치 단계에서부터 좀 더 신중을 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그림을 그려 본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때가 전부였지 싶다. 그때는 누가 특별히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는데 왠지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고 미술 시간이 좋았다. 가끔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기라도 하면 하늘이라도 날 듯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손을 놓아야 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아마도 내 진로가 그 방면과는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 후 그림은 내게서 아주 멀리 떠나버린 듯했다. 학교를 다 마치고 나서야 가끔 전시회를 찾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림을 감상하다보면 종종 나도 모르게 그림에 깊이 빠져서 자리를 뜰 줄 몰랐다. 특히 풍경화에 관심이 많이 갔다. 그것도 유화보다는 맑고 투명한 수채화에 매력이 더 느껴졌다. 구름이며 물빛이며 자연의 그 절묘한 표현이라니…….
직장에서 퇴직을 하자 시간이 많아졌다. 갑작스레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궁리하다가 그림 생각이 났다. 어쩌면 그것은 나를 유년의 기억 속으로 불러내어 즐겁게 해줄 듯싶었다. 강에서 부화한 연어가 저 멀리 알래스카나 연해주의 심해를 떠돌다가 마지막에는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삶만이 아니라 취미에도 귀소본능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일이 뒤늦게 다시 떠오르는 것이었다.
마침 집 가까운 곳에 수채화를 가르치는 곳이 있어 아내와 함께 등록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조급한 마음에 앞 단계인 데생 과정은 대충 끝내고 곧 채색을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역시 그림이 잘 되지 않았다. 수채화는 투명해야 한다는데 자꾸만 여러 색을 덧칠하여 채도가 낮아지고, 또 입체감이 살아나려면 명암을 잘 나타내야 하는데 그것마저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았다. 잘 그리기 위해 욕심을 낼수록 너무 세세한 데 치우치게 되어 수채화의 멋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격이 여러 번이었다.
이런 내게 지도 선생님이 조언을 해주었다. 그림은 어차피 3차원의 세계에 있는 것을 평면에 반영하는 것인데, 사실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환영(幻影)을 가져와서 그리는 것이라고. 그러니 대상을 너무 자세히 보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거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라고 했다. 실제로 그래야 명암도 더 뚜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도 수채화를 그리듯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간과 공간이란 백지 위에 내 나름대로 그려나가는 내 인생의 수채화. 지나온 세월이 덧없는 한 순간처럼 느껴지는 것은 눈앞의 일에만 지나치게 가까이하며 정신없이 살아온 때문은 아닐까. 한 걸음 뒤떨어져 좀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수채화는 유화와는 많이 다르다. 그리면 수정이 불가능하고, 흰색을 쓰지 않기 때문에 하일라이트 부분을 미리 생각하며 그려야 한다. 우리네 삶도 수채화를 그리듯 먼 훗날의 자신을 그려보며 조금은 더 조심스럽게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염두에 두며 걸어가면 좋지 않을까 싶다.
연두와 갈색을 섞는다. 나뭇가지를 칠하고 옹이 부분은 한 번 더 덧칠을 해 준다. 물이 오른 나무의 끝가지에는 새 잎이 피어나고, 사이사이로 꽃이 수줍게 웃는다. 입체감이 나도록 명암을 좀 더 강하게 처리해 본다. 이번 그림은 어떤 모습으로 귀결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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