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결혼 선물
2007.07.14 20:28
아들의 결혼 선물
청민 조종영
한 폭의 그림에도 혼이 들어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의 얼, 동해를 수호하는 독도의 혼이 살아있다.
몇 해 전, 광주에서 근무할 때다. 독도를 주제로 하는 그림전시회가 있었다. 그 지방 화가들이 독도에 가서 가슴으로 그린 작품들이었다. 시민들의 호응도 대단히 높았다. 내가 그 전시회에 관심을 갖게된 것도 독도라는 그 주제 때문이었다. 우리의 섬, 독도가 화가들의 정성스러운 붓끝으로 너른 동해 바다 한가운데에 의연하게 서 있었다. 동해의 맑고 푸른 물결이 넘실거렸다. 하늘을 나는 평화로운 갈매기의 울음소리와 고기를 잡는 어부들의 희망에 노래가 들려왔다. 오랜 질곡의 세월에도 독도를 사랑하고 지켜온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화가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 폭의 그림에 독도의 혼을 모두 담아왔던 것이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그림 한 점을 사기로 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월급쟁이가 선뜻 그림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독도의 혼이 담긴 그림 한 점을 꼭 갖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도 독도그림이 걸리게 되었고, 나는 그 그림 속의 독도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살게 되었다. 항상 너른 동해를 굽어보며 우리의 섬과 바다를 넘보는 이웃을 마음으로 경계하게 된 것이다. 동해의 푸른 물결과 힘찬 파도소리를 듣고, 수평선을 차고 오르는 붉은 태양을 상상하며 조국이라는 존재를 생각했다. 길고 긴 세월 독도를 지켜온 선조들의 얼을 가슴에 새겼다. 한 점 그림 속의 독도는 언제나 변함없이 영원한 우리의 하나임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평화를 사랑하는 선조들은 숱한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며 우리를 지켜 왔지만,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는 않았다. 항상 평화를 지향하며 끈기와 지혜로 오 천 년의 긴 역사를 이루고, 고유의 아름다운 문화를 창조해왔다. 그런 우리의 삶의 터전에 항상 평화를 깨뜨리고 피와 눈물로 얼룩진 역사를 쓰게 한 나라는 어디였는가. 그들이 바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들이었다. 그리고 그 탐욕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바로 일본의 부정적인 역사관과 독도영유권주장의 억지가 그 하나이다.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며 진실을 부정하는 염치없고 추한 이웃에 대한민국이 분노하는 것이다.
우리는 좋은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지난 날, 일본이 우리에게 안겨준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과거의 감정에 얽매여서 이웃나라의 잘못된 행태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오로지 좋은 미래를 위하여 용서하려 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희망도 일방적인 짝사랑에 불과한 것 같다. 일제 강점기의 수탈과 비인도적인 만행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고 합리화시키려 한다. 지금 일본은 그 시대의 일방적인 자국에 기록을 들이대며, 수천 년을 영유한 우리의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일본의 억지 논리에 세계인이 침묵하고, 동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더욱 가슴 아프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이기는 법이다. 이럴 때일수록 온 국민의 독도사랑과 그를 지키려는 확고한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에 널리 그 진실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정의가 승리하는 길이요, 그들이 마음을 바로 먹고 좋은 이웃으로 함께 살게 하는 길일 것이다.
큰 아들은 군인이 되기를 희망했다. 내가 그 길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일시적인 감정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일 년 간의 최전방 소대장을 경험하고서도 그 소신은 변함이 없었고 결국 그 길을 택했다. 그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결혼하는 아들에게 평생 의미있는 그 무엇을 하나 주고 싶었다. 아직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조국의 얼을 심어야할 빈 자리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독도의 혼을 주기로 했다. 집에 걸린 독도그림을 아들 내외에게 결혼선물로 주었다. 어차피 내일의 이 나라는 그들의 시대가 아닌가. 그 뒤 아들은 벌써 여러 번의 이사를 했다. 잦은 이사를 하다보면 때로는 그림 한 폭도 짐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아들네 집에 가면 그 그림은 항상 거실의 한 가운데에 걸려 있었다. 그때마다 한 폭의 그림에 담긴 독도의 의미가 아주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그렇게 독도와 함께 사노라면 반드시 그 혼이 후손들의 가슴에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아들 내외와 또, 그 자식들도 동해의 파도소리와 독도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것보다 더 강한 독도를 지키는 힘은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아들의 집에 걸려있는 독도그림에서 동해의 파도소리와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진정으로 좋은 이웃과 함께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곧 세상 사람들이 갈망하는 평화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의 이웃나라가 욕심을 버리고 진실하고 좋은 이웃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다. 그런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내 것을 지키고 보전하는 확고한 정신과 힘, 그것을 소홀이 하거나 잃어버린 민족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도의 혼을 담은 한 폭의 그림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청민 조종영
한 폭의 그림에도 혼이 들어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의 얼, 동해를 수호하는 독도의 혼이 살아있다.
몇 해 전, 광주에서 근무할 때다. 독도를 주제로 하는 그림전시회가 있었다. 그 지방 화가들이 독도에 가서 가슴으로 그린 작품들이었다. 시민들의 호응도 대단히 높았다. 내가 그 전시회에 관심을 갖게된 것도 독도라는 그 주제 때문이었다. 우리의 섬, 독도가 화가들의 정성스러운 붓끝으로 너른 동해 바다 한가운데에 의연하게 서 있었다. 동해의 맑고 푸른 물결이 넘실거렸다. 하늘을 나는 평화로운 갈매기의 울음소리와 고기를 잡는 어부들의 희망에 노래가 들려왔다. 오랜 질곡의 세월에도 독도를 사랑하고 지켜온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화가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 폭의 그림에 독도의 혼을 모두 담아왔던 것이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그림 한 점을 사기로 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월급쟁이가 선뜻 그림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독도의 혼이 담긴 그림 한 점을 꼭 갖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도 독도그림이 걸리게 되었고, 나는 그 그림 속의 독도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살게 되었다. 항상 너른 동해를 굽어보며 우리의 섬과 바다를 넘보는 이웃을 마음으로 경계하게 된 것이다. 동해의 푸른 물결과 힘찬 파도소리를 듣고, 수평선을 차고 오르는 붉은 태양을 상상하며 조국이라는 존재를 생각했다. 길고 긴 세월 독도를 지켜온 선조들의 얼을 가슴에 새겼다. 한 점 그림 속의 독도는 언제나 변함없이 영원한 우리의 하나임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평화를 사랑하는 선조들은 숱한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며 우리를 지켜 왔지만,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는 않았다. 항상 평화를 지향하며 끈기와 지혜로 오 천 년의 긴 역사를 이루고, 고유의 아름다운 문화를 창조해왔다. 그런 우리의 삶의 터전에 항상 평화를 깨뜨리고 피와 눈물로 얼룩진 역사를 쓰게 한 나라는 어디였는가. 그들이 바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들이었다. 그리고 그 탐욕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바로 일본의 부정적인 역사관과 독도영유권주장의 억지가 그 하나이다.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며 진실을 부정하는 염치없고 추한 이웃에 대한민국이 분노하는 것이다.
우리는 좋은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지난 날, 일본이 우리에게 안겨준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과거의 감정에 얽매여서 이웃나라의 잘못된 행태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오로지 좋은 미래를 위하여 용서하려 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희망도 일방적인 짝사랑에 불과한 것 같다. 일제 강점기의 수탈과 비인도적인 만행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고 합리화시키려 한다. 지금 일본은 그 시대의 일방적인 자국에 기록을 들이대며, 수천 년을 영유한 우리의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일본의 억지 논리에 세계인이 침묵하고, 동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더욱 가슴 아프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이기는 법이다. 이럴 때일수록 온 국민의 독도사랑과 그를 지키려는 확고한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세계에 널리 그 진실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정의가 승리하는 길이요, 그들이 마음을 바로 먹고 좋은 이웃으로 함께 살게 하는 길일 것이다.
큰 아들은 군인이 되기를 희망했다. 내가 그 길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일시적인 감정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일 년 간의 최전방 소대장을 경험하고서도 그 소신은 변함이 없었고 결국 그 길을 택했다. 그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결혼하는 아들에게 평생 의미있는 그 무엇을 하나 주고 싶었다. 아직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조국의 얼을 심어야할 빈 자리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독도의 혼을 주기로 했다. 집에 걸린 독도그림을 아들 내외에게 결혼선물로 주었다. 어차피 내일의 이 나라는 그들의 시대가 아닌가. 그 뒤 아들은 벌써 여러 번의 이사를 했다. 잦은 이사를 하다보면 때로는 그림 한 폭도 짐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아들네 집에 가면 그 그림은 항상 거실의 한 가운데에 걸려 있었다. 그때마다 한 폭의 그림에 담긴 독도의 의미가 아주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그렇게 독도와 함께 사노라면 반드시 그 혼이 후손들의 가슴에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아들 내외와 또, 그 자식들도 동해의 파도소리와 독도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것보다 더 강한 독도를 지키는 힘은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아들의 집에 걸려있는 독도그림에서 동해의 파도소리와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진정으로 좋은 이웃과 함께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곧 세상 사람들이 갈망하는 평화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의 이웃나라가 욕심을 버리고 진실하고 좋은 이웃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다. 그런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내 것을 지키고 보전하는 확고한 정신과 힘, 그것을 소홀이 하거나 잃어버린 민족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도의 혼을 담은 한 폭의 그림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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