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시계
2007.11.26 09:19
배꼽시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최정순
공과금 마감일이어서 농업협동조합은 초만원이었다. 내 차례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서 돌아왔다. 몹시 배가 고팠다. 배꼽시계의 태엽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천 원에 붕어빵 4개를 샀다. 두개도 안 먹었는데, 태엽소리는 멎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쪼르륵 소리를 되뇌면서 나는 이미 배꼽시계로 시간을 가늠하며 살았던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논두렁에 핀 클로버 꽃으로 시계반지를 만들어 서로 채워주며 쑥이랑 냉이를 캤던 소꿉친구 점순이가 불현듯 그립다. 점순이는 손놀림이 빨라서 나물을 잘 캘 뿐만 아니라 인정도 많아서 털털하게 캔 나물을 내 바구니에 덜어주기도 했었다. 어쩌다 뒤늦게 개똥이 있는 곳에서 나물을 캤다싶으면 호들갑을 떨며 깨끗한 곳에서 캔 나물까지 몽땅 버리곤 했었다. 이뿐인가 지렁이나 뱀을 보면 놀라서 바구니며 나물 칼까지도 내던지고 논두렁을 빠져 나왔던 일들이 떠올라 그 시절의 점순이가 더욱 보고 싶다. 클로버 꽃 반지시계를 찾아, ‘TV는 사랑을 싣고’ 프로그램에 한 번 신청해볼까 싶다.
우리 집은 만경벌판을 가로지른 전라선 철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였다. 대장촌역을 출발한 기차가 동 이리역으로 들어서며 요란하게 질러대는 기차 화통소리는 새벽잠을 깨워주는 괘종시계 같은 것이었다. 그 기적소리를 듣고 시간을 짐작하며 살았다. 기적소리를 못 듣거나 기차가 연착해 버리면 그나마도 종잡을 수 없어 나는 늘 달음질을 쳤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역에 당도했지만,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애절함을 넘어 매정하게 떠나보내는 연습도 해야 했고, 음악수업을 놓쳐버려 늘 내 이름을 불러주신 쌍꺼풀에 서글서글한 미남 선생님 얼굴을 못 봐서 서운한 일도 있었다. 자취생활을 할 때 쌀이며 김치나 간장을 나르는 일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플라스틱 병이 나오기 전이라서 간장을 담아 가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주둥이 좁은 옹기단지나 대두병에 간장을 담아 아무리 잘 틀어막아도 장 냄새는 진동했다. 배꼽시계 가늠을 잘 못해서 막차를 탈 때면 꺼벙한 대학생들이 짐을 들어다 준다며 치근대던 일이 많았는데, 얼마나 창피했으면 몰래 버리고는 깨져버렸다고 어머니한테 거짓말을 했을까.
처마 끝 그림자가 ‘이만큼’ 올 때 새참을 가져오라며 호미로 마당에 금을 긋고는 놉들을 앞세우고 성급히 밭으로 가시곤 했던 어머니. 어머니가 그어 놓은 금에 그림자가 언제쯤 닿을까 어린 내 가슴을 조였었다. 그림자가 금 가까이 올 때쯤이면 양은주전자에 담긴 막걸리와 쑥 개떡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밭으로 갔었다. 그때의 처마 끝 그림자는 어머니의 새참꺼리 시계였다.
할아버지 제사는 새벽닭이 울기 전 일찌감치 끝내야 했었다. 달그림자나 별자리를 보고 진설을 해서 제사를 올리고, 눈 내리는 겨울밤이면 아랫목도 화롯불도 사그라질 무렵 출출한 배꼽시계로 가늠해 젯밥을 지어 제사를 모시지 않았던가. 지금이야 초저녁에 제사를 드리고, 심지어 성묘 겸 대낮에 제사를 지내는 세상이다.
숭늉은 위아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오죽했으면 글방 훈장님이 애들한테 먼저 물을 마시게 한 뒤 마지막에 마셨을라고. 질퍽한 무밥으로 고픈 배를 달래고 오줌 한 번 싸버리면, 초저녁인데도 배가 고파 배꼽시계의 태엽 풀리는 소리와 퐁퐁 뀌어대는 방귀소리로 방안가득 폭소가 터졌었다. 지금이야 무밥을 배가 고파서 먹나, 향수에 젖어 맛보기로 먹지.
먼저 가버린 방귀쟁이 동생이 보고 싶다. 젖 먹을 시간을 놓쳐버린 동생의 배꼽시계는 집안일로 바빠서 젖을 빨릴 시간을 놓쳐버린 어머니 젖꼭지시계와 딱 맞아 돌아갔었다.
짐승인 소나 밭의 상추도 배꼽시계를 가늠할 줄 알았다. 새벽이면 고삐에 단 방울을 딸랑이며 여물을 끓이라는 신호를 보냈고, 햇볕에 시달려 축 늘어진 상추도 물 한 모금 달라며 배꼽시계 신호를 알렸다.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까지도 배꼽시계가 보내는 손짓이었다. 이렇듯 내 어린 시절 시계는 쪼르륵 ‘배꼽시계’ 클로버 ‘꽃시계’ 처마 끝 ‘그림자시계’ 어머니의 ‘젖꼭지시계’ 그리고 ‘꼬끼오시계’였다. 그중에서도 배꼽시계는 시계중의 시계 곧 생명시계였다. 그런데, 너도나도 하나같이 차게 된 요즘 시계들. 나도 난생 처음 시계를 차게 되었다. 어느 섣달 그믐날밤 눈이 소복이 쌓인 전동성당 성모님 상 앞에서였다. 눈처럼 하얀 내 손목에 사랑의 족쇄가 되어 채워진 시계, 그것은 스테인리스 시티즌 손목시계였다.
오늘날은 온통 시계세상이다. 거리의 큰 스크린에서부터 대합실, 회관이나 종탑, 집안구석구석 심지어 산속 나무에도 걸려있다. 서랍을 정리하다 보니 손목시계가 5개나 나왔다. 아무리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다지만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는 배꼽시계 쪼르륵 소리에 시름하고 있는 이웃들이 있는데…….
벌써 김장철이 닥쳤다. 아침 공기가 매섭다. 자선냄비가 등장하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거리에 넘치고, 밍크코트며 가죽잠바가 쇼윈도에 넘쳐나도 그림의 떡인 사람들, 제발 ‘풍요 속의 빈곤’을 벗어나 살아있는 배꼽시계로 지구촌 모든 이가 따뜻한 겨울을 맞았으면 좋겠다.
결국 배꼽시계만큼 사는 인생, 삶의 원동력인 배꼽시계를 살려서 나 자신의 진솔한 삶을 창조해 나가야겠다. 요사이 ‘비만’이라는 허깨비가 씌워져서 허둥거리는 배꼽시계들이 느는가하면, 아름다워지고 싶어 멀쩡한 배꼽시계를 거역해서 일어나는 ‘날씬’이라는 족쇄는 또 어떤가. 거리에 넘쳐나는 시계보다도 내 안에서 소리치는 배꼽시계, 사회의 배꼽시계, 지구촌의 배꼽시계가 내는 소리에 나 자신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본다.
인생이란 그 자체가 배꼽시계다. 배꼽시계는 시간을 엮고, 시간은 세월을 엮어,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주의 부품처럼 돌아가는 배꼽시계들, 내 배꼽시계는 지금 몇 시쯤일까. 아니, 몇 나노 분초쯤일까.
(2007. 11. 26.)
* 나노(nano):나노라는 말은 난쟁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는데 지금은 아주 미세한 물리학적 계량 단위로 사용된다. 나노세컨드(ns)는 1/1,000,000,000초 나노미터(nm)는 1/1,000,000,000m를 나타내며 접두사로 사용한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최정순
공과금 마감일이어서 농업협동조합은 초만원이었다. 내 차례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서 돌아왔다. 몹시 배가 고팠다. 배꼽시계의 태엽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천 원에 붕어빵 4개를 샀다. 두개도 안 먹었는데, 태엽소리는 멎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쪼르륵 소리를 되뇌면서 나는 이미 배꼽시계로 시간을 가늠하며 살았던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논두렁에 핀 클로버 꽃으로 시계반지를 만들어 서로 채워주며 쑥이랑 냉이를 캤던 소꿉친구 점순이가 불현듯 그립다. 점순이는 손놀림이 빨라서 나물을 잘 캘 뿐만 아니라 인정도 많아서 털털하게 캔 나물을 내 바구니에 덜어주기도 했었다. 어쩌다 뒤늦게 개똥이 있는 곳에서 나물을 캤다싶으면 호들갑을 떨며 깨끗한 곳에서 캔 나물까지 몽땅 버리곤 했었다. 이뿐인가 지렁이나 뱀을 보면 놀라서 바구니며 나물 칼까지도 내던지고 논두렁을 빠져 나왔던 일들이 떠올라 그 시절의 점순이가 더욱 보고 싶다. 클로버 꽃 반지시계를 찾아, ‘TV는 사랑을 싣고’ 프로그램에 한 번 신청해볼까 싶다.
우리 집은 만경벌판을 가로지른 전라선 철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였다. 대장촌역을 출발한 기차가 동 이리역으로 들어서며 요란하게 질러대는 기차 화통소리는 새벽잠을 깨워주는 괘종시계 같은 것이었다. 그 기적소리를 듣고 시간을 짐작하며 살았다. 기적소리를 못 듣거나 기차가 연착해 버리면 그나마도 종잡을 수 없어 나는 늘 달음질을 쳤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역에 당도했지만,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애절함을 넘어 매정하게 떠나보내는 연습도 해야 했고, 음악수업을 놓쳐버려 늘 내 이름을 불러주신 쌍꺼풀에 서글서글한 미남 선생님 얼굴을 못 봐서 서운한 일도 있었다. 자취생활을 할 때 쌀이며 김치나 간장을 나르는 일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플라스틱 병이 나오기 전이라서 간장을 담아 가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주둥이 좁은 옹기단지나 대두병에 간장을 담아 아무리 잘 틀어막아도 장 냄새는 진동했다. 배꼽시계 가늠을 잘 못해서 막차를 탈 때면 꺼벙한 대학생들이 짐을 들어다 준다며 치근대던 일이 많았는데, 얼마나 창피했으면 몰래 버리고는 깨져버렸다고 어머니한테 거짓말을 했을까.
처마 끝 그림자가 ‘이만큼’ 올 때 새참을 가져오라며 호미로 마당에 금을 긋고는 놉들을 앞세우고 성급히 밭으로 가시곤 했던 어머니. 어머니가 그어 놓은 금에 그림자가 언제쯤 닿을까 어린 내 가슴을 조였었다. 그림자가 금 가까이 올 때쯤이면 양은주전자에 담긴 막걸리와 쑥 개떡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밭으로 갔었다. 그때의 처마 끝 그림자는 어머니의 새참꺼리 시계였다.
할아버지 제사는 새벽닭이 울기 전 일찌감치 끝내야 했었다. 달그림자나 별자리를 보고 진설을 해서 제사를 올리고, 눈 내리는 겨울밤이면 아랫목도 화롯불도 사그라질 무렵 출출한 배꼽시계로 가늠해 젯밥을 지어 제사를 모시지 않았던가. 지금이야 초저녁에 제사를 드리고, 심지어 성묘 겸 대낮에 제사를 지내는 세상이다.
숭늉은 위아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오죽했으면 글방 훈장님이 애들한테 먼저 물을 마시게 한 뒤 마지막에 마셨을라고. 질퍽한 무밥으로 고픈 배를 달래고 오줌 한 번 싸버리면, 초저녁인데도 배가 고파 배꼽시계의 태엽 풀리는 소리와 퐁퐁 뀌어대는 방귀소리로 방안가득 폭소가 터졌었다. 지금이야 무밥을 배가 고파서 먹나, 향수에 젖어 맛보기로 먹지.
먼저 가버린 방귀쟁이 동생이 보고 싶다. 젖 먹을 시간을 놓쳐버린 동생의 배꼽시계는 집안일로 바빠서 젖을 빨릴 시간을 놓쳐버린 어머니 젖꼭지시계와 딱 맞아 돌아갔었다.
짐승인 소나 밭의 상추도 배꼽시계를 가늠할 줄 알았다. 새벽이면 고삐에 단 방울을 딸랑이며 여물을 끓이라는 신호를 보냈고, 햇볕에 시달려 축 늘어진 상추도 물 한 모금 달라며 배꼽시계 신호를 알렸다.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까지도 배꼽시계가 보내는 손짓이었다. 이렇듯 내 어린 시절 시계는 쪼르륵 ‘배꼽시계’ 클로버 ‘꽃시계’ 처마 끝 ‘그림자시계’ 어머니의 ‘젖꼭지시계’ 그리고 ‘꼬끼오시계’였다. 그중에서도 배꼽시계는 시계중의 시계 곧 생명시계였다. 그런데, 너도나도 하나같이 차게 된 요즘 시계들. 나도 난생 처음 시계를 차게 되었다. 어느 섣달 그믐날밤 눈이 소복이 쌓인 전동성당 성모님 상 앞에서였다. 눈처럼 하얀 내 손목에 사랑의 족쇄가 되어 채워진 시계, 그것은 스테인리스 시티즌 손목시계였다.
오늘날은 온통 시계세상이다. 거리의 큰 스크린에서부터 대합실, 회관이나 종탑, 집안구석구석 심지어 산속 나무에도 걸려있다. 서랍을 정리하다 보니 손목시계가 5개나 나왔다. 아무리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다지만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는 배꼽시계 쪼르륵 소리에 시름하고 있는 이웃들이 있는데…….
벌써 김장철이 닥쳤다. 아침 공기가 매섭다. 자선냄비가 등장하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거리에 넘치고, 밍크코트며 가죽잠바가 쇼윈도에 넘쳐나도 그림의 떡인 사람들, 제발 ‘풍요 속의 빈곤’을 벗어나 살아있는 배꼽시계로 지구촌 모든 이가 따뜻한 겨울을 맞았으면 좋겠다.
결국 배꼽시계만큼 사는 인생, 삶의 원동력인 배꼽시계를 살려서 나 자신의 진솔한 삶을 창조해 나가야겠다. 요사이 ‘비만’이라는 허깨비가 씌워져서 허둥거리는 배꼽시계들이 느는가하면, 아름다워지고 싶어 멀쩡한 배꼽시계를 거역해서 일어나는 ‘날씬’이라는 족쇄는 또 어떤가. 거리에 넘쳐나는 시계보다도 내 안에서 소리치는 배꼽시계, 사회의 배꼽시계, 지구촌의 배꼽시계가 내는 소리에 나 자신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본다.
인생이란 그 자체가 배꼽시계다. 배꼽시계는 시간을 엮고, 시간은 세월을 엮어,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주의 부품처럼 돌아가는 배꼽시계들, 내 배꼽시계는 지금 몇 시쯤일까. 아니, 몇 나노 분초쯤일까.
(2007. 11. 26.)
* 나노(nano):나노라는 말은 난쟁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는데 지금은 아주 미세한 물리학적 계량 단위로 사용된다. 나노세컨드(ns)는 1/1,000,000,000초 나노미터(nm)는 1/1,000,000,000m를 나타내며 접두사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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