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학 신인상을 받고

2007.12.01 13:03

이수홍 조회 수:736 추천:6

대한문학 신인상을 받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이수홍



“세속의 영화보다는 댓잎 스치는 달빛과 솔바람 소리에 더 많은 애정을 쏟다가 문향이 좋아 글을 쓰시게 된 임이시여! 금번 ‘대한문학’을 통하여 당선의 영광을 누린 이 기쁜 자리에 꽃다운 정을 담아 본 패를 드립니다.”

계간 대한문학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감회가 깊다. 내가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행사장소가 부안 격포에 있는 전북학생해양수련원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다.

내가 격포항을 처음 간 것은 1973년 4월 4일이었다. 전경대소대장으로 발령을 받아 봉화봉 너머 초소에서 근무했다. 그때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애교를 떨며 날름거리는 아낙네의 혓바닥 같은 파도가 밤알만한 조약돌을 핥고 가는 것을 보았다. 자르르 소리를 들으며 어떻게 표현할까 고심을 했었다. 겁(劫)년 쯤 파도가 스치고 간 채석강의 바위가 불에 타다 남은 책장이 겹겹이 쌓인 듯한 모양을 보고 묘사할 길이 없어 머리를 싸맸었다. 무덥던 여름날 아내가 세 아들과 함께 나를 면회 오면서 고생을 많이 했었다. 6년 전에는 풍남테니스클럽 월례대회를 하고 그 수련원에서 일박했었다. 그때  崔라는 회원이 수궁가를 부를 때 나는 북을 쳤었다.

그런데 오늘 글쓰기로 상을 받았다. 시상식이 있기 전에 식전행사로 국악원에서는 판소리를, 평생교육원에서는 수필을 함께 배우는 원우이자 문우의 창에 북을 쳤다. 34년 전 6살 나이에 4살, 1살 동생들을 데리고 나를 면회하러 왔던 큰아들이 축하차 중학교 2학년인 딸과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왔다. 사진을 찍고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시상식을 마치고 대한문학 작가회에 참석했다. 대한문학에서 등단한 120여명의 모임이다. 전국에서 모인 멋쟁이들이어서 첫 인상이 좋았다. 새로 선임된 회장에게 앞으로 우리 작가회가 더 활성화 되도록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해변의 식당답게 젓갈 반찬과 우럭탕에 복분자주 한 잔은 밤무대를 달릴 산수유차(山茱萸車=이 글을 쓰는 사람)의 연료였다. 격포항의 50명쯤 뛸 수 있는 노래방에서 전국에서 모인 작가회원들 30여명의 노래시합이 벌어졌다. 김학 수필교수님이 거나하게 취한 말씀으로 오락회도 주도하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마이크를 잡았다. 18번 ‘못 잊어서 또 왔네’ 등 5곡을 불렀다. 식전행사 때 판소리를 불렀던 C회원은 ‘나의 노래’ 등 2곡을 불러 행촌수필문학회 회원들의 노래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나에게는 미인이, 해바라기님에게는 전 회장 등 멋진 남자들이 사교춤을 추자고 했다. 손놓고 디스코로 하자고 정중히 사양했지만 좀 미안한 생각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대한문학 정주환 사장님의 생일기념 케이크 자르기란 깜짝 이벤트도 좋았다.

달이 무척 밝았다. 음력 10월 보름달이었다. 이날은 또 내가 잊지 못할 날이다. 57년 전 지리산 공비가 지서를 습격하고 동네전체에 불을 질러 우리 집이 불타버리고 식구들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날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죽음과 사투를 벌인 장면을 목격했던 그 보름달이다. 이래저래  감회에 젖은 나를 팍 취해버리게 한 날이었다.

타 지역 대한문학 작가회원들과 함께 생활관에 투숙했다. 그런데 몸을 씻고 닦을 수건이 없어 문제였다. 얼른 생각나는 것이 생활 한복 속 순면셔츠였다. 다음날 아침까지 그걸로 해결을 했으니 또 하나의 씁쓸한 경험을 얻고 미소 머금은 추억을 만들었다.

이튿날은 문학기행을 하는 날이었다. 해변의 비릿한 아침바람이 쌀쌀했다. 바지락 죽으로 속을 풀었다. 버스를 타고 안개가 꽉 낀 변산반도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데 구름 위를 달리는 것 같았다. 내소사에 도착하니 안개가 걷히고 해님이 빵긋 웃어주어 관광하기 좋은 날씨였다. 입구 전나무에서 뿜어내는 향기는 사랑하는 임의 체취인 듯 예나 다름이 없었다. 정주환 사장님과 잎은 다 떨쳐 버리고 빨갛게 매달린 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부안읍내 매창공원에 갔다. 조선시대 이매창은 황진이와 쌍벽을 이룬 명기로 시와 거문고에 뛰어났다. 1610년에 죽자 거문고와 함께 묻었고 2000년에 공원을 조성하여 매창공원이라 하였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라” 
매창 시비에 적힌 이화우란 시조다. 나의 관심은 명창 이중선의 무덤에 더 끌렸다. ‘왜 이 무덤이 여기에 있을까?’ 나와 동성동본인 경주 이씨이고 이화중선의 동생임을 처음 알았다.

서정시의 큰 줄기를 이루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목가시인 신석정 님의 고택 청구원에도 들렀다. 담배 파이프를 물고 있는 석정 시인의 흑백사진은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지만 내 키보다 큰 마른 코스모스는 꽃대만 무성하게 서있었다.

홍어, 꼴뚜기회에 막걸리를 마시고 정주환 사장님의,
“앞으로 작가회가 활성화 되겠습니다.”
라는 작별인사를 듣고 전주팀은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참, 기쁜 신인상 수상이었고 즐거운 문학 기행이었다. 하느님도 인간이 없었으면 얼마나 재미가 없었을까?”
누군가가 했던 말을 의미 깊게 새기고 막을 내렸다.

사랑하는 임, 장남 내외와 손녀손자, 고향후배 안명선 내외 특히 막둥이의 여자친구가 행사장에 와서 꽃다발을 안겨줘 무한히 기뻤다. 행촌수필문학회  최준강 회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선배님들이 많이 참석하셔 고마웠다. 다음에 나도 후배들이 신인상을 받으러 가면 함께 가서 축하를 해줘야겠구나 싶었다. 이번 일은 올해 우리 집 10대뉴스감이 틀림없겠구나 싶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란 곳을 고향이라 한다. 누구나 고향은 못 잊는다. 나의 문학고향은 대한문학이다. 내 고향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능력으로 대한문학과 작가회가 활성화되도록 더 힘쓸 것을 스스로 다짐해 보았다.
                                                [2007.11.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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