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아궁이
2007.12.03 10:34
어머니와 아궁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반) 배영순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 식구들이 잠에서 깰세라 살짝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신 어머니께서 군불을 지펴 밤새 식어버린 구들장이 따뜻해지면 철부지 어린 것들은 서로 이불을 끌어당기며 아랫목으로 파고들었다.
가을 추수가 끝난 들녘엔 하얀 비닐로 둘둘 만 것들이 여기 저기 뒹굴고 있다. 그것이 추수를 끝낸 뒤 볏짚을 깔끔하고 둥글게 비닐로 싸 놓은 것이었다. 소의 먹이로 사용하려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도록 비닐로 보기 좋게 싸 놓은 것이다. 예전엔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알맞은 크기의 짚 다발로 묶어 마당 한쪽 귀퉁이에 노적가리처럼 짚단으로 쌓아두었었다. 그 짚으로 지붕을 새 옷으로 갈아입히기도 했고, 겨울이면 가마니나 멍석을 짜기도 했으며, 소의 주식인 여물로 사용하기도 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볏짚은 아궁이에서 훨훨 불에 타올라 음식도 끓이고 구들장을 따뜻이 데우는 일도 했었다.
우리 집의 넓고 커다란 부엌엔 세 개의 아궁이가 있었다. 큰 아궁이엔 커다란 검정 가마솥이 그 옆 작은 아궁이엔 은색 작은 솥이 걸려있었다. 마치 어미와 자식처럼 사이좋게 나란히 밥과 국을 끓였다. 뒤쪽 중간 크기의 검정 가마솥에서는 가족들의 세숫물이 데워지고 있었다. 재빠른 몸짓으로 짚을 한 움큼씩 세 아궁이에 넣으시고 불을 때시는 어머니는 불춤을 추는 무희 같았다. 세 아궁이에서 동시에 빨간 불빛이 너울너울 춤을 추면 어머니의 손과 몸도 느린 진양조에서 서서히 빠른 자진모리로 옮겨졌다. 불빛에 반사된 어머니의 얼굴은 아궁이에서 훨훨 타오르는 불빛 때문인지 세 아궁이에서 뿜어대는 열기 때문인지 빨갛게 상기돼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5와트 백열전구는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채 자신의 자리를 아궁이 불빛에게 내어주어야 했었다.
아궁이 크기에 따라 불을 사르는 볏짚의 양도 달라졌고, 솥에서 모락모락 솟아나는 김의 양에 따라 손에 잡히는 볏짚의 양도 조절해야했다. 밥을 끓이는 무겁고 커다란 검정가마솥 뚜껑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의 압력에 못 이겨 달그락거리며 뚜껑이 저 혼자 열릴 때쯤이면 바쁜 어머니의 손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부지깽이를 내려놓고 몸뻬 깊숙이 넣어두었던 피우다 만 반 토막 담배를 꺼내 빼어 무셨다. 가마솥 밥의 뜸을 들이고 있는 여유로운 아궁이의 빨간 불과 어머니 입에서 타오르고 있는 담뱃불이 오누이마냥 정다웠다.
가슴 깊이 쌓인 한을 잠시라도 저 불속에 태워버리고, 질곡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업보였을까? 딸 부잣집에서 환영받지 못한 목숨으로 태어난 걸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딸년들에겐 예기치 못한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19살 어린나이에 꽃도 피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간 넷째 딸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20대 초반에 교통사고로 불구가 되어버린 막내딸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일까. 반 토막 담배가 손가락을 태우는지도 모른 채 무심히 타오르는 불춤만을 바라보고 계셨다.
잠깐 사이에 옆에 수북이 쌓여있던 짚 다발이 불에 타서 큰 가마솥에서는 맛있는 밥을 지어졌고, 작은 양은솥엔 구수한 된장국이 끓었다.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도록 구들장을 따뜻하게 데워 놓고서 짚 다발은 검은 재로 변해버렸다. 검은 재는 잠시 집안 헛간에 머물다가 논으로 밭으로 뿌려져 내년 농사를 위한 거름으로 쓰였다. 아낌없이 주기만하고 떠나가신 어머니의 삶과 자신을 태우고 남은 한 줌의 재조차도 기꺼이 거름이 되는 짚의 삶이 뭐가 다르랴.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듯이 볏짚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제공해준다.
늦가을 마당 한 쪽 구석에 쌓여진 커다란 짚단은 김장김치와 함께 농촌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월동 준비였다. 서산에 해가 기울 무렵이면 저녁식사를 준비하려고 어머니는 두건을 쓰고 몇 개의 짚 다발을 부엌으로 나르셨다. 짚단 귀퉁이 짚 다발을 빼간 자리에 공간이 생기면 그곳은 아이들의 숨바꼭질 놀이터가 되었고 짚단 앞 양지바른 곳에서는 어른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었다.
농촌의 아궁이의 땔감이 연탄으로, 보일러로 바뀌어도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집에 훈김이 난다며 물이라도 따스하게 데워주셨다. 이승에서의 어머니의 삶이 다하자 우리 집의 땔감인 볏짚이 더 이상 부엌을 찾지 않았다. 아궁이에 볏짚으로 불을 사르던 집안의 역사는 어머니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심이 흉흉해졌다고들 한다. 부엌에서 아궁이가 입을 닫으면서 냉랭해진 집안 공기가 사람의 마음까지도 얼어붙게 한 건 아닐까. 바람이 차가운 겨울밤이면 타다만 반 토막 담배를 태우시면서 아궁이 안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는 불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던 우수에 젖은 어머니가 눈물나도록 그리워진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반) 배영순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 식구들이 잠에서 깰세라 살짝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신 어머니께서 군불을 지펴 밤새 식어버린 구들장이 따뜻해지면 철부지 어린 것들은 서로 이불을 끌어당기며 아랫목으로 파고들었다.
가을 추수가 끝난 들녘엔 하얀 비닐로 둘둘 만 것들이 여기 저기 뒹굴고 있다. 그것이 추수를 끝낸 뒤 볏짚을 깔끔하고 둥글게 비닐로 싸 놓은 것이었다. 소의 먹이로 사용하려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도록 비닐로 보기 좋게 싸 놓은 것이다. 예전엔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알맞은 크기의 짚 다발로 묶어 마당 한쪽 귀퉁이에 노적가리처럼 짚단으로 쌓아두었었다. 그 짚으로 지붕을 새 옷으로 갈아입히기도 했고, 겨울이면 가마니나 멍석을 짜기도 했으며, 소의 주식인 여물로 사용하기도 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볏짚은 아궁이에서 훨훨 불에 타올라 음식도 끓이고 구들장을 따뜻이 데우는 일도 했었다.
우리 집의 넓고 커다란 부엌엔 세 개의 아궁이가 있었다. 큰 아궁이엔 커다란 검정 가마솥이 그 옆 작은 아궁이엔 은색 작은 솥이 걸려있었다. 마치 어미와 자식처럼 사이좋게 나란히 밥과 국을 끓였다. 뒤쪽 중간 크기의 검정 가마솥에서는 가족들의 세숫물이 데워지고 있었다. 재빠른 몸짓으로 짚을 한 움큼씩 세 아궁이에 넣으시고 불을 때시는 어머니는 불춤을 추는 무희 같았다. 세 아궁이에서 동시에 빨간 불빛이 너울너울 춤을 추면 어머니의 손과 몸도 느린 진양조에서 서서히 빠른 자진모리로 옮겨졌다. 불빛에 반사된 어머니의 얼굴은 아궁이에서 훨훨 타오르는 불빛 때문인지 세 아궁이에서 뿜어대는 열기 때문인지 빨갛게 상기돼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5와트 백열전구는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채 자신의 자리를 아궁이 불빛에게 내어주어야 했었다.
아궁이 크기에 따라 불을 사르는 볏짚의 양도 달라졌고, 솥에서 모락모락 솟아나는 김의 양에 따라 손에 잡히는 볏짚의 양도 조절해야했다. 밥을 끓이는 무겁고 커다란 검정가마솥 뚜껑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의 압력에 못 이겨 달그락거리며 뚜껑이 저 혼자 열릴 때쯤이면 바쁜 어머니의 손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부지깽이를 내려놓고 몸뻬 깊숙이 넣어두었던 피우다 만 반 토막 담배를 꺼내 빼어 무셨다. 가마솥 밥의 뜸을 들이고 있는 여유로운 아궁이의 빨간 불과 어머니 입에서 타오르고 있는 담뱃불이 오누이마냥 정다웠다.
가슴 깊이 쌓인 한을 잠시라도 저 불속에 태워버리고, 질곡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업보였을까? 딸 부잣집에서 환영받지 못한 목숨으로 태어난 걸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딸년들에겐 예기치 못한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19살 어린나이에 꽃도 피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간 넷째 딸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20대 초반에 교통사고로 불구가 되어버린 막내딸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일까. 반 토막 담배가 손가락을 태우는지도 모른 채 무심히 타오르는 불춤만을 바라보고 계셨다.
잠깐 사이에 옆에 수북이 쌓여있던 짚 다발이 불에 타서 큰 가마솥에서는 맛있는 밥을 지어졌고, 작은 양은솥엔 구수한 된장국이 끓었다.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도록 구들장을 따뜻하게 데워 놓고서 짚 다발은 검은 재로 변해버렸다. 검은 재는 잠시 집안 헛간에 머물다가 논으로 밭으로 뿌려져 내년 농사를 위한 거름으로 쓰였다. 아낌없이 주기만하고 떠나가신 어머니의 삶과 자신을 태우고 남은 한 줌의 재조차도 기꺼이 거름이 되는 짚의 삶이 뭐가 다르랴.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듯이 볏짚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제공해준다.
늦가을 마당 한 쪽 구석에 쌓여진 커다란 짚단은 김장김치와 함께 농촌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월동 준비였다. 서산에 해가 기울 무렵이면 저녁식사를 준비하려고 어머니는 두건을 쓰고 몇 개의 짚 다발을 부엌으로 나르셨다. 짚단 귀퉁이 짚 다발을 빼간 자리에 공간이 생기면 그곳은 아이들의 숨바꼭질 놀이터가 되었고 짚단 앞 양지바른 곳에서는 어른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었다.
농촌의 아궁이의 땔감이 연탄으로, 보일러로 바뀌어도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집에 훈김이 난다며 물이라도 따스하게 데워주셨다. 이승에서의 어머니의 삶이 다하자 우리 집의 땔감인 볏짚이 더 이상 부엌을 찾지 않았다. 아궁이에 볏짚으로 불을 사르던 집안의 역사는 어머니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심이 흉흉해졌다고들 한다. 부엌에서 아궁이가 입을 닫으면서 냉랭해진 집안 공기가 사람의 마음까지도 얼어붙게 한 건 아닐까. 바람이 차가운 겨울밤이면 타다만 반 토막 담배를 태우시면서 아궁이 안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는 불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던 우수에 젖은 어머니가 눈물나도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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