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

2010.02.07 16:45

강성재 조회 수:129

사랑하다 지치고 힘들면
나는 종종 막차를 탔다
청량리에서 안동 까지
낡은 의자에 기대어
아득한 잠속으로 빠져 들고는 했다

조금만,조금만 더 미련을 부리다가
막차 시간이 가까워서야
야위어진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이제는 잊어야지 돌아서는 순간까지
막차는 긴 호흡을 토해내며
어서 오라 소리쳐 불렀다

그리움에 지친 이들은 모두 잠이들고
잠들지 못해 가슴이 이픈 이들이
한숨처럼 뱉아내는 뿌연 담배 연기에
슬며시 잠에서 깨어나
어두운 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그리움을
가만히 불러 보고는 했다

한겨울의 차가운 눈발을 헤치며
막차는 반딧불같은 등을 켜고
구비구비 죽령고개를 넘었다

이제는 차마 돌아 갈 수 없는 먼 길을
허위허위 달려 온 막차는
차가운 길 위에서 곤한 잠이들고
홀로 잠들지 못한 나는
돌아 앉아 시발역이 된 종점에서
새벽안개 깨우며 떠나가는 첫차를
쓸쓸히 배웅 하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