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집 · 겨울 판화(版畵) 1… - 기형도

2009.01.28 23:00

강학희 조회 수:660 추천:34









일러스트=잠산





    바람의 집-겨울 판화 (版畵) 1




    - 기형도








    내 유년 시절 바람의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 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 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 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숨, 사위어 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 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 Poet & Profile 


















소스제공: 유봉희시인님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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