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 정호승

2008.10.08 12:17

강학희 조회 수:385 추천:20




수선화에게 - (정호승 詩)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 숲 속에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 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번씩은 마을로 향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빈 벽 


정호승






벽에 걸어두었던 나를 내려놓는다

비로소 빈 벽이 된 벽이 가만히 다가와

툭툭 아버지처럼 내 가슴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 준다

못은 아직 빈 벽에 그대로 박혀 있다

빈 벽은 누구에게나 녹슨 못 하나쯤 운명처럼 박혀있다고

못을 뽑으려는 나를 애써 말린다

지금까지 내 죄의 무게까지 견디고 있었던 저 못의 일생에 대해

내가 무슨 감사의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벽에 걸어놓아야만 벽이 아름다워지는 줄 알았다

내가 벽에 걸려 있어야만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줄 알았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스러져 보이지 않는 별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캄캄한 내 눈물의 빈방에

한 줄기 밝은 햇살이 비치는 것은

사라져 보이지 않는 어둠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빈 벽이 되고 나서 비로소 나는 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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