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시 .소곡3.

2008.10.19 15:56

강학희 조회 수:622 추천:26







황동규 시 .소곡3.











내 마음 안에서나 밖에서나

당신이 날것으로 살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끝이 있는 것이 되고 싶었습니다.



선창에 배가 와 닿듯이

당신에 가 닿고

언제나 떠날 때가 오면

넌지시 밀려나고 싶었습니다.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바라고 있지 않았던 것을.

창밖에 문득 후득이다 숨죽이는 밤비처럼

세상을 소리만으로 적시며

남몰래 지나가고 있었을 뿐인 것을.



_ 황동규 시 .소곡3.









마음이 슬플때는 기쁘게 해주고,

마음이 기쁠때는 그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글귀(Gentle Reminder · 암시) !



-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

- 그 마음, 부드럽게 열고 단단하게 닫아라.



















정길선 - 바람 강













  Gentle Reminder


소곡3.





내 마음 안에서나 밖에서나

당신이 날것으로 살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끝이 있는 것이 되고 싶었습니다.




선창에 배가 와 닿듯이

당신에 가 닿고

언제나 떠날 때가 오면

넌지시 밀려나고 싶었습니다.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바라고 있지 않았던 것을.

창밖에 문득 후득이다 숨죽이는 밤비처럼

세상을 소리만으로 적시며

남몰래 지나가고 있었을 뿐인 것을.
































      내게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당신이 날것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날것! 당신은 내 존재의 안과 밖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그 무엇이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진행형이기 때문에, 당신은 날것의 존재다.
      내 사랑은 살아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 시는 이상한 소망을 고백하기 시작한다.
      내가 '끝이 있는 것'이 되고 싶었다는 것.
      왜 내 사랑은 '끝'을 소망하기 시작했을까?

      당신이 내게 살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차라리 나는
      끝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내가 끝이 있는 존재라는 이유로,
      내 사랑의 살아 있음은 오히려 생생하게 경험된다.

      '나'의 '끝'은 '선창에 배가 와 닿고' '창밖에 문득 후득이다
      숨죽이는 밤비'의 이미지를 얻는다.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랑의 능동성은
      내 존재의 수동성과 한계성과 대비된다.

      그리하여 나는, 차라리 '아무것도 바라고 있지 않았던' 존재이고,
      내 사랑은 '남 몰래 지나가고 있었던' 누구도 모르는
      은밀한 사건일 뿐. 하지만 깊은 곳에서 욕망하는 것이
      단지 '끝'을 예감하는 사랑일까?
      내 사랑의 수동성과 무심함은, 당신의 저 눈부신 생생함을
      드러내려는 내 사소하고 내밀한 사랑의 다른 언어가 아닐까?

      내 사랑의 언어는 언제나 당신에게조차 암호처럼 속삭인다.
      가끔 내 사랑은 무심함을 가장한다.
      황동규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년을 맞는다.
      젊은 날 시인의 놀랍도록 투명한 감성은 지워지지 않는
      청춘의 문장으로 기억된다.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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