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오늘:
10
어제:
10
전체:
5,464

이달의 작가

오줌싸개의 기도(수필)

2017.12.23 12:10

라만섭 조회 수:10

오줌싸개의 기도

라만섭

 

비록 삶은 고달프고 전쟁으로 찌들긴 했어도, 사람들의 마음속 에는 한 가닥 희망의 불길이 살아 있었다. 머지않아 일본은 망하고 광복의 새아침이 찾아 올 것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좀 바보스러웠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철없던 그때가 얼핏 그리워진다.

 

나는 일제 강점기가 아직 한창이던 시절 삼형제중 늦둥이 막내로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때 내 어머니의 나이는 40 이었다. 나는 만 5살이 지나서까지 모유를 찾아 밤마다 어머니의 품을 떠나지 못하던 늦되기 이었다. 거의 매일 밤 엄마의 젖꼭지를 입에 문채 잠들곤 했다. 낮에 친구들과 놀다가 점심 먹으러 집에 와서는 엄마를 끌고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엄마의 젖꼭지를 물기 위해서 이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계속 됐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그랬던 것 같다. 이같이 다소 늦된 듯한 경향은, 성장해서도 나타났던 것으로 생각된다. 귀가 하도 여려서 남의 말에 곧잘 솔깃 하곤 했다.

 

나는 8살이 돼서도 가끔 잠자리를 적시곤 하는 오줌싸개 이었다. 그 무렵 평양의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전날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 지쳐서 피곤해진 몸을, 긴 겨울밤 석탄불로 달구어진 온돌방에서 밤새 지지고난 이튿날 새벽녘에 흔히 그 일을 저지르곤 했다. 오줌이 나오는 꿈속에서의 행위와, 실제로 이부자리에 오줌을 싸는 행위는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것인데, 그 순간의 기분은 마치 구름 위를 걸어 다니는 듯 아슬아슬 하면서도 황홀한 것이었다. 그러나 환상은 이내 깨지곤 했다. 아랫도리에 뜨끈뜨끈 하고 축축하게 와 닿는 촉감이 점차 차가워짐을 느끼며,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면서 환상은 무참히도 짓밟히고 말았다. 밤새 참았다 나오는 오줌의 양 또한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 된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천당과 지옥을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당황한 나머지 흠뻑 젖은 이부자리를 말리면 되는 줄 알고 뒤집어서 아랫목에 펴놓았다가, 다 말라서 뻣뻣해진 이부자리를 붙들고 안절부절 하던 기억이 새롭다. 무엇보다도 그때마다 한마디의 나무람도 없이 세계 지도로 얼룩진 내 이부자리의 홑청을 새로이 갈아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어린 내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그 당시를 회상 할 때면 지금도 아리게 다가오곤 한다.

그 날도 긴 겨울밤 끝에 기분 좋게 오줌을 갈기는 새벽꿈을 꾸면서, 잠자리를 적시는 짓을 기어이 또 저지르고 말았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하시던 나의 아버지가 그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오늘아침 조회 시간에 모든 선생님과 학생들 앞에서 너의 오줌싸개 사실을 폭로 하겠다.”고 하시지 않는가.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면서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세상이 끝장나는 기분 이었다. 순간 조롱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러 친구들 특히 여학생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아침 이었다.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옆에서 들릴 정도로 갈수록 커져갔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나더러 키(옛날 곡식을 거를 때 쓰던 기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소금을 구해 오라고 하시지 않는가. 죽어도 그 일은 못 하겠다고 나는 생각 했다. 다시는 잠자리에 오줌을 싸지 않겠노라고, 잠들기 전에 다짐 하라고 당부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내 귓전을 때린다. 어머니와의 약속을 어기고 감당 할 수 없는 일을 또 저지르고 말았다. 당장 아침 조회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당하게 될 창피는 동네 골목대장의 체면을 송두리째 구

기는 것이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서 도망칠 생각도 해보았지만 막상 갈 데가 없었다.

부모님한테서도 버림받은 터라 나는 한없는 소외감과 함께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생전 처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다시는 그런 짓을 않겠노라고 한참을 울면서 매달렸다. 하늘도 무심치 않았다. 나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을 움직이는 기적을 낳은 것이다. 아침 조회 시간에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에 대하여 한마디도 안하셨다. 널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죽여 가며 이제나 저제나 마음 조리던 나는 안도의 한숨 끝에 이제는 살았구나 싶었다. ‘다시 이불에 오줌 싸면 사람 새끼도 아니야라고 몇 번을 되 뇌이며 혀를 깨물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오줌싸개 버릇에서 해방 되고, 그 일도 가뭇없이 추억의 뒤안길에 묻혀 버리게 되었다.

 

얼마 전에 열한 살짜리 막내 손자 녀석에게 내 오줌싸개 얘기를 슬쩍 흘렸더니 재미있다고 나뒹굴면서, 자기는 오줌싸개가 아니란다. 오줌싸개 현상은 다분히 유전적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어린애들의 신경계통의 발육이 자리 잡히면서 자연히 없어지는 증상 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증상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으로 말미암아 성장 과정에 있는 애들의 성격형성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이에 대한 부모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 하다는 것이다. 의사인 아들이 하는 말이다.

 

가끔 그때의 일을 회상 하게 된다. 나는 평소에 기도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자칫 기도를, 기복(祈福)의 속물 수단 삼아 영혼의 호흡을 오염 시키는 오류를 저지를까 해서이다. 내가 믿는 신을 의인화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보다는 정당한 노력에 따른 응분의 결과를 기대 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생각 한다. 그러면서도, 기도 하면 뜻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소박 하고 순수한 마음, ‘를 변화 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기적이 일어 날수 있다.

 

이제 세상 때가 잔뜩 낀 옷을 걸친 채, 사위어가는 황혼의 언덕을 넘으며 상념에 젖는다. 기적을 바란다면, 오줌싸개 시절의 기도정신인 말간 빈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