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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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진정한 소통

2017.12.23 20:03

라만섭 조회 수:6

진정한 소통

 

나는 말재주가 없다.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말로 옮기고 싶은데, 말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많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면, 주눅이 들어 생각이 달아나버리는 일이 흔하다. ‘옛 어른들이 힘센 아들 보다는 말 잘 하는 아들을 낳아라고 했다던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대중 앞에서 즉흥연설(Impromptu)로 웅변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말은 생각을 담아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소통은 적시적소에서 이루어질 때에 더욱 효과가 있다. 때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소통일 수도 있다. 패장은 따로 할 말이 없다. 아마도 그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것은 침묵일 것이다. 굳이 입을 열어 보았자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이 많다 보면 실언 또는 망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입으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설화로 고생하는 사람을 가끔 본다. 또 성희롱 같은 일에 연루되는 경우도 본다. 요즘은 오디오.비데오 기술의 발달로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스마트폰과 CCTV에 항시 노출돼 있는 상태이니 말이다.

 

아마도 제2차 대전 당시의 영국수상 윈스턴. 쳐칠 만큼, 말로써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설득력 넘치는 중후한 음성으로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그의 타고난 웅변술은 가히 일품 이었다. 그것은 밤낮 가리지 않는 독일공군의 폭격으로 지리멸렬된 런던시민의 마음을 애국심이라는 용광로에 끌어 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는 그의 우렁찬 목소리는 당시 영국국민의 전의를 북돋게 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기여 하였다.

생각은 말로 전달되고 글로도 표현된다. 글은 생각을 나타내는 마음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또 글은 기록으로 남아 영원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말이 됐든 글이 됐든 본래 취지대로의 완전무결한 소통은 불가능 하다고 한다. 종종 설화에 견줄만한 필화도 있다. 말과 글의 내용(Context)을 실제로 해석하는 것은 청중이나 독자의 몫이다. 일단 화자나 저자 밖으로 나온 말이나 글은, 이미 그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즉흥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말과 달리, 글은 독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소요 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지속적인 효과면 에서는 말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글속에는 영혼에 호소하는 깊은 맛이 담겨 있다. 수백년의 역사를 통해서 변함없이 내려오는 고전문학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이점에 있어서는 문학작품뿐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작품도 결코 예외일수가 없다. 수많은 불후의 명작들은 모두가 훌륭한 소통수단이 되는 것이다.

 

가요만큼 일반대중의 정서에 깊숙히 파고드는 마력을 지닌 소통수단도 드물 것이다.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히트한 대중가요가 지니는 잠재적 위력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아는바 로서 긴말이 필요 없겠다. 오래도록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면면이 이어오는 국내외의 여러 주옥같은 가요와 가곡 (오페라,교향악 등도 포함)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대중과의 소통에 있어 그것이 가지는 영향력은 실로 지대한바 있다.

사진은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사진이 주는 이미지를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굳이 필요하다면 누가, 언제, 어디서, 왜 그 사진을 찍었는지를 간단히 밝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시각을 통해서 확인된 이미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증거가 된다. 따라서 그것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견해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 그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래에 그 예를 들어 본다.

 

1970년대 아프리카 수단의 군부독재정권과 반대세력간의 무력충돌이 피비린내 나는 장기전으로 지루하게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생활은 극도로 피폐해 갔다. 굶주림과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매일 죽어갔다. 그 무렵 유럽의 한 젊은 사진작가가 현지에서 찍은 사진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준 일이 생겼다. 굶어 죽어가는 수단의 한 어린이의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 뉴욕 타임즈에 게재되었다. 앙상한 뼈를 들어낸 채 무릎 끓은 자세로 앉아있는 사진 속 그 아이 바로 뒤에는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먹이를 앞에 둔 독수리는 호시탐탐 그 아이가 죽어서 모래위로 쓰러지기를 기다리는 극적인 장면 이었다. 이 사진을 본 많은 독자들로부터의 문의 또는 항의 전화로 인해, 한동안 신문사의 업무진행에 차질을 빚었다고 한다. 문의전화의 내용은 그 아이가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를 묻는 것이었고 항의전화의 내용은 죽어가는 아이를 눈앞에 두고, 살리려는 노력은 뒤로한 채 사진부터 찍는 상업정신을 질타하는 것이었다. 실인즉 당시 여러 가지 병균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원주민과의 직접적인 신체접촉은 금기시되어 왔다고 한다. 30여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이 사진작가는 그 때 그 아이를 한번 품에 안아 주지 못한 것이 몹시 후회된다고 술회했다는 후문이다. 아무튼 그 사진은 오랜 내전이 가져오는 참상을 그 어떤 백 마디의 말보다 더 실감나게 전달해주는 소통수단이 됐던 것이다.

 

오프라인을 통한 전통적인 소통방법이 구시대의 유물처럼 돼버린 요즈음에, 많은 사람들이 웬만한 소통을 온라인으로 해결한다. 인터넷, 스마트폰, 페이스북, 트위터등이 주된 수단이 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기계의 편리함만 있을 뿐, 정서가 통하지 않는다. 사람끼리의 소통이 단순히 문자주고받기(Texting)로 끝난다면, 어디서 삶의 맛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기계적인 문자 주고받기가 전부가 아니다. 뜻은 서로 얼굴을 마주한 채, 이심전심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진정한 소통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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