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를시작하며...
요즘들어 부쩍 잠자리에 누워도 쉬이 들지 않는 잠에 애를 먹는 날이 많아졌다. 눈은 감겨들건만 머리 속으로 온갖 그림이 펼쳐지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되면 다음 날 아침 일어날 걱정까지 이어져 잠에 빠지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 낮동안 몸을 쓰지 않아 그렇다고들 말하지만 편히 앉아 노닥이는 성격도 체질도 아닌 나로서는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지 도무지 대책이 없었다.
그 러다 어느 밤부터 누워 잠을 부르려 애쓰지 않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잠을 되쫓아버리기로 작정하니 뒤척이며 시간을 보내지 않아서 좋고 그동안의 시간을 요긴하게 쓸 뿐 아니라 피할 수 없게 졸음이 몰려오면 이내 깊은 잠에 들 수 있어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리게 되니 이 작정은 오랜만에 내린 기분좋은 작정이 아닐 수 없다.
그시간을 빌어 최인호작가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라는가족소설이라 이름 붙여진 산문집을 읽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 못다 갚은 사랑의 빚이 회한이 된 가슴 저린 이야기들이다. 거의 모든 부분을 공감하며 읽었다. 그 중에서도 부엌에 큰 고무대야에는 김이 무럭무럭나는 더운 물이 그득하고 그 곳에 발가벗긴 몸을 담그고 박박 문질러 씻기던 어머니의 얘기를 읽을 때 벗은 내 등짝에 매운 손맛이 아찔하던 내 엄마의 손바닥이 철썩거리며 달라붙는 기분이었다. 그시절 목욕 광경이란 늘 그렇듯이 아프게 문질러대는 엄마와 아프다며 징징거리는 아이 그리고 이어지는“철썩”하는 소리.
따가왔던 손매가 아프도록 그리웠다. 그리고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잠을 부르려고 읽던 책에서 번쩍하도록 내 머리를 깨우는 광경을 만난 것이었다.
그로부터 얼마되지 않았다, 예전으로 돌아가 본래의 내 모습을 찾자는 바람을 가지게 된 것은.
혼탁해 흐려진 세상을 알기 전 ,어두움보다는 밝은 것에 먼저 눈이 갔던 순전했던 시절에 내가 꿈꾸던 것들과 그걸 위해 아끼고 보듬었던 가치를 돌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 우선 그 길로 떠나야 할 것같았다. 오던 길 돌아 옛날로, 그곳에서 다시 오늘로 찬찬이 처음 떠나왔던 길부터 지금 선 자리까지 되짚어오기를...
다시금 그 날들을 눈에 또 가슴에 채워넣으면 아직 남은 가야할 길 위에서 주저앉고 싶을 때 힘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여기며 작은 계획을 세워본다.
새해 신새벽의 소망이 되돌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내일로의 이정표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자 이제 깊이 묻힌 그날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빛 속에 펼쳐놓고 다시 살펴보자.
얼마나 기억이 날지...
처음 이야기는 나의 세상 나들이길의 시원이 된 부모님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흑백필름의 시대이거나 총천연색 만발한 요즘이거나 시대를 막론하고 여자가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인연이라는 한 마디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굵고 질긴 줄로 얽혀고 설켜서 자식을 낳아 키우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고 키우며 세월은 흘러 열 손가락으로 꼽지 못할 만큼의 많은 자손으로 일가를 이루는 역사의 시작은 언제나 예기치 않았던 뜻밖의 우연에서 시작한다. 운명이라는 말로 대신하는 뜻밖의 우연은 나의 가족사의 시발점에서도 있었다.
여기에 1950년 6.25전쟁 중에 피어난 어느 사랑 이야기가 작은 줄기가 되어 오늘로 흘러들어 큰 강을이룬 이야기가 있다.
6.25전쟁이 시작되고 물밀듯 밀려온 인민군이 한강을 넘기까지는 채 여름이 깊어지기 전이었다고 한다.한강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전투에서는 총성이 천지로 피어오르고 눈 앞에서 빗발치듯하는 총탄으로 쓰러지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동족끼리 목숨을 겨누는 슬픈 전쟁의 시작이었던 한강 전투 중에 경찰이셨던 아버지는 팔에 총상을 당하여 대구로 후송되게 된다.
전쟁통이라 일반 시민의 민가도 수용소로, 혹은 부상자를 위한 치료소로 활용했던 경우가 있었던 것인가 제법 규모를 갖춘 외가도 부상병들의 수용과 치료를 위해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리 심각한 부상이 아니었던 이유로 그 곳으로 이송되고 치료를 받게 된다. 그리고 전쟁 중의 후송 기간에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난다.
오며가며 마주치던 그 집의 아리따운 둘째딸을 눈여겨 보게 된 것이다. 그 무렵의 처녀로는 드물게 양잠기술자였는데 비단의 질을 최종으로 검사하여 급수를 매기는 검사관이라는 전문직의 직업을 가진 당찬 아가씨였다. 사랑이 싹트고 어느덧 굳어진 마음을 서서히 드러내며 아버지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작업을 시작한다.
여동생들과 남동생 그리고 장모님이 될 할머니에게 먼저 호의를 갖게 외둘러 작업을 시작한다. 당시 중고등학생부터 코흘리개 꼬마였던 이모들과 외삼촌들에게 맛난 것을 사주고 영화를 보여주는 등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했다 한다. 너무나 안전하고 고급한 작업이 아닌가.
그 결과 둘째딸보다 사위감을 더 사랑하게 된 할머니는 임지로 떠난 아버지가 보고 싶어 먼 길을 덜컹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멀미로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보러가셨다고 하니 아버지의 작업은완전하고도 무결했던 것이다.
그시절의 연애도 요즘과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가슴 두근거리는 설레임과 아슬한 안타까움의 우여곡절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연인들의 사연을 만들어간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의 연애를 믿을 수 없었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다는 얘기보다 더 믿을 수 없는 것이 흑백영화의 시절 내 부모님도 서로 설레며 손을 잡고 그리움으로 가득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그리 믿기지 않던 부모님의 옛이야기가 나이가 들면서 귀한 사랑이야기로 믿어지게되었고 오래 묵은 그 사랑이야기는 내가 접했던 어떤 사랑이야기보다 더한 축복의 이야기로 여겨졌다.
그렇게 연애의 시절을 지내고 부모님은 결혼하신다. 3년만에 첫딸인 언니가 태어나고 다시 3년, 둘째인 내가 세상에 온다. 이어 두명의 아들이 뒤를 이어 태어나고...
이 부분에서 나는 할 말이 많아진다. 첫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두 분 사랑의 첫열매인 언니는 굳이 알려고 들지 않아도 눈에 본듯이 지극한 돌봄을 받으며 어여쁜 아이로 나이를 더해 갔을 터이고 나를 뒤이어 태어난 장남은 물론, 막내인 남동생까지도 나와는 다른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는 단정은 그리 힘들이지 않고도 내리게 된다.
울보가 된 나에 대해 늘어지는 변명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3대 독자이신 아버지는 그 시절의 사회 풍토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틀림없이 아들을 바라셨을터이지만 처음 태어난 맏이가 비록 딸이었어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그지 없이 이뻤을 것이다. 다음에는 아들을 보리라는 희망을 키우면서 3년동안 온갖 것으로 퍼부어주면서 귀하게 키웠을 것이다. 그리고 3년후, 둘째로 또 딸이 태어난다. 기다린만큼 실망도 큰 법이라 둘째딸에게 준 사랑은 그 순도에서 많은 것들이 섞여들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섭섭함, 엄마의 까닭없는 미안함과 대를 잇는 일에 대한 할머니의 근심 등 이런 것들로...
어른들의 이런 감정들이 젖먹이도 알만큼 컸던 것인지 엄마 만을 붙잡고 놓치 않던 둘째딸은 우는 일로 해가 뜨고 해가 졌다며 울보라는 이름을 하나 더 갖게 된다. 워낙에 호적에 오른 이름도 남자이름으로 붙여주셨다.
아버지가 나를 그리 이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정은 순전히 내가 어린 그 날로 돌아가 상황을 재구성해 본 것이나 솔직히 티끌만큼은 의심도 하였다. 아버지,용서하소서.
젖을 물리고 입히고 씻기고 토닥여 키를 키우고 몸을 살찌우던 때, 코흘리던 철부지가 말을 하고 글을 깨치고 노래하고 친구를 사귀도록 자랐던 때, 그날 동안에 그리고 그후로도 늘 나와 함께 하셨던 날들을 기뻐하며 젊은 시절의 두분의 모습을 때때로 그려본다.
울보라는 별명과 함께 추억하는 어린 시절을 가진 나, 그 시절에 터진 눈물샘으로 인해 여린 감정을 마구 쏟아낼수 있는 나, 그런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하신 부모님, 두분의 만남의 인연이 갈수록 새로이 귀하다.
하늘에서, 내곁에서 늘 나를 감싸는 엄마와 아버지께 아직도 나는 아무 것도 해 드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 때를 잊지 않고 가슴 속 깊숙히 따뜻한 빛으로 담아 시시때때로 꺼내 맛보는 비싼 보약보다 값진 엑기스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