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서 찾아내는 큰 기쁨

나에게는 여름이 되면 부딪히는 골치거리 하나가 있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빛도 못 보는 가여운 열개의 발톱이 그것이다. 내 몸의 각 부분 부분마다 강하기도 하고 약하거나 이쁘거나 못나거나한 나름대로의 특징이 다 있지만 가장 못나고 더구나 약하기 까지 한 것이 발톱이다.

사연은 그리 눈물겹지는 않아도 오래되고 처량맞다. 정장을 차려 입어야만 했던 직업 탓으로 수십년을 스타킹 속에서, 뽀족구두 속에서 시달린 탓이다. 한 여름인들 그 차림새는 다를 수 없었다. 바람 하나 통하지 않는 스타킹과 구두 속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발은 이미 오래 전에 무좀이라는 질긴 인연을 만났다. 질기기로 치면 이보다 더한 인연이 또 있을까! 얼마 후,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그 인연은 발톱에 까지 침입하고 말았다. 온갖 처방으로 질긴 악연의 고리를 끊고자 발버둥쳐 보았지만 마지막 수단이었던 먹는 무좀약은 내 위장마저 해칠 지경이었다. 어쩌랴! 두손 두발 다 들고 같이 살자고 손잡을 수 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가운데 발가락은 등이 굽어 노틀담의 곱추, 카지모도의 형상이고 엄지발톱은 살갗을 파고들고 있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변색되고 쭈글거리는 발톱에서 아예 시선을 거두는 수 밖에...

발톱과는 상관없이 계절은 여름을 향하고 있다. 시원한 여름에의 갈망으로 초록빛의 원피스를 하나 구입했다. 이 옷에는 하얀 샌들을 신어야 제격이다. 그것도 가는 선으로 된 발이 다 드러나는 것이면 더 좋을 것이다. 여기서 생각이 머뭇거려진다. 도대체 샌들을.. 발을 내놓으라니...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햇살이 늘어지는 뜰에 앉아 발을 내려다보았다. 불쌍한 것들! 한숨이 나온다. 밝은 빛 속에서 더 자세히 눈에 들어오는 발톱 열개가 울상이 되어 내게 뭔가 애원하는듯, 도움을 구하는듯, 훌쩍이고 있는 형국인듯 했다. 얄상한 하얀 샌들 한번 신어보자구요! 저 애들을 어쩌면 좋누!

아! 번쩍거리는 빛으로 떠오르는 색깔이 있었다. 얼마 전 누군가에게서 선물 받은 네일팔리쉬(nail polish)의 색은 진하게 피어나는 진달래색을 하고 있었다. 무작정 발라보았다.

내 불쌍한 발톱에는 색을 입혀줄 생각을 당최해보지 않고 그저 감추려고만 했었던 나였다. 하나 하나 색을 입으며 환해지는데 다 바르고나니 전혀 다른 발이 나란히 얼굴을 마주댄듯 했다. 와! 입이 벌어지고 환호가 터져나온다. 어째 이걸 몰랐을까?

진달래색은 아픈 흔적을 감싸주면서 일그러진 발톱에 새로운 기운을 주었다. 발톱에만 아니라 발에게 아니, 내 마음까지 곱게 칠하여 곧게 펴주었다. 생각지 못했던 작은 손놀림 하나가 가져온 결과에 나는 너무 기뻐 어쩔 줄 모르고 만나는 이마다 발의 화사한 탄생을 꺼내보여주고 싶은 지경이다.

감추어야할만큼 미운 발톱은 내게는 없었던 지체이듯 내 몸의 가장 구석지고 어두운 곳에서 숨겨져 있었다. 버려두었던 발톱이 단 한번 닿은 손길에 대한 보답을 초여름 햇살의 눈부심으로 되돌려준 것이다. 잃었던 것들을 다시 찾은 기쁨이 새로 얻은 어떤 것보다 더 크고 귀하게 여겨진다. 작은 것에서 찾은 기쁨이 혼자 즐기기에는 벅찬 큰 기쁨이 되고 말았다.

이번 나들이에는 초록빛을 띤 원피스에 몇가닥 가는 줄, 가벼운 하얀 샌들을 신어 그동안 푸대접했던 발톱에게 고마움 전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