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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잘 운다.”




씻어주는 눈물이라든가 눈물이 주는 카타르시스...

눈물이 어질러진 마음을 가지런히 해주고 탁한 가슴을 정화시켜준다는 말을 간혹 듣는다.

그 말이 그럴듯 한 것이 실컷 울고나면 후련하게 가슴이 뚫리는 경험을 하곤 하기 때문이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이 슬픔을 씻겨내리면서 가슴 속에 담긴 것들을 오히려 맑게 하는 능력이 눈물 속에는 있는가.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슬픔은 담아두는게 아니라 흘러가게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지나온 시절의 많은 사연들을 다 가슴에 담아두기만 했다면 아마 가슴은 가는 바람소리도 들어설 수 없는 꽉 막힌 납덩이나 다름없을 것이 아닌가. 눈물과 함께 흘러간 세월을 고맙다 해야할 듯하다.


울음에 대해서는 혹은 눈물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잘 우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내 울음의 수준은 과히 비교할 대상이 없을 만큼 도를 넘었다고 한. 울음소리에 참다 못한 아버지는 돌이 안 된 갓난쟁이를 방에서 마루로 던져버렸다고도 하고 할머니 손도 마다하고 엄마만 찾으며 우는 나로 인해 엄마는 고부간의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고도 했다.

걸음을 뗄만큼 커서도 버릇을 버리지 못해 엄마를 내 곁에서 붙잡아 매어두거나 죽자고 따라다녔다... 엄마가 잠시 시장에라도 나설라치면 골목을 지나 큰길까지 쫓아나와 울며 따라붙었고 집으로 돌아가라며 달래던 엄마에게 기어이 한대 얻어맞고서야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울음소리와 함께 돌려세웠다고 한다.

철이 들고나서 내 나름으로 분석해본 어린 시절 내 울음의 이유는 뿌리 깊은 우리 집안의 역사에 있었다. 삼대독자이신 아버지께서는 애타게 아들을 기다리셨지만 첫딸이 태어나고 삼년이 지난 후 둘째로 다시 딸을 보게 되었다. 아들을 소원하던 아버지께서는 둘째딸인 나에게 이름조차 남자 이름을 주셨고 짧게 자른 머리모양이라던지 가지고 노는 장난감등, 영낙없는 남자아이로 키우셨다.

그후에 뒤를 이어 두명의 남동생들이 태어났으니 살림밑천 첫딸과 대를 이을 아들들 사이에 끼어든 나로서는 알게 또 모르게 받은 차별에 그리 울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변명해 본다.


울던 기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린 시절, 공연한 울음이 터지면 그칠 줄을 몰랐다.

워낙 잘 울기에 소리를 내고 울어도 아무도 돌아다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칠 수 없. 울다가 생각하면 우는 이유가 겸연쩍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나도 모르는 사이 방 한쪽 구석에서나 다락 깊은 곳에서 잠이 들어버리곤 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소리가 잠든 고요한 집안에서 잠 속에서도 한번씩 숨을 몰아쉬며 긴 울음의 뒤끝을 이어가던 날들이었다. 그러다 잠이 깨어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이 늘 오듯이 그렇게 오는 무위로운 저녁 무렵이었다.

울보였던 어린 시절의 푸르스름한 저녁, 어둠이 깊어지면 구석에서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라도 튀어나올듯한 다락방에서의 저녁처럼 나의 기억은 어둑하고 푸르스름하게 남아 아직도 잊히지 않고 곳곳에서 만나지곤한다.


초등학교 시절은 반친구들의 작은 놀림에도 담임선생님이 알도록까지 울어댔고 울음이 많은 만큼 겁이 많았던 까닭에 예방접종을 하지 않으려 울며 도망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또래 친구들과 말다툼이라도 하게 되면 눈물부터 쏟아지면서 말문은 막혀버렸으니 결국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진 싸움에 억울해하며 다시 울었다.


살아오면서 울 일은 정말 많았다.

젊은 날의 눈물은 그 시절의 감격과 희열만큼이나 붉고 뜨거웠다. 기뻐서 흘렸던 눈물의 농도는 그리 짙지 못한 것인가 긴 기억의 터널을 지나온 지금 돌이켜도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슬펐고 외로왔던 날들의 눈물은 어제인양 다시금 눈가를 데운다. 진하게 붉었던 날들과 그 날들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눈물은 시간이 갈수록 아름다운 무지개를 피워올린다.

차츰 어른이 되면서 나의 의지를 꺾어야 하는 서글픈 상황 앞에서는 차갑게 식어가는 눈물을 뒤돌아서 아무도 몰래 흘리기도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아픈 이별 뒤에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던 눈물이 마르면서 시린 가슴도 더불어 달래지고 맑아진 눈으로 긴 날들을 견딘 것은 아닐까 여기는 여유갖는.

새로운 가족을 맞아들이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어울려 행복해야 할 집에서 망망한 바다를 건너듯 살았던 날들이 있었다. 턱없이 넓은 마루를 청소하면서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걸레로 닦으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아이가 자라 어느새 엄마와 어깨동무를 할만큼 키가 자라면서 바깥 일에 몰두하는 엄마를 이해하며 일찍 철든 아들이 안스럽고 자랑스러웠다. 키가 자라고 가슴이 넓어지는 아들은 엄마의 눈물을 말리고 시름을 거둬가는 빛 고운 햇살에 다름 아니다.


하늘로 먼저 보낸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에서는 오히려 눈물이 야박했었던것은 그들의 영원한 안식을 믿어 기꺼이 보내는 마음이었으리라 믿어 의심지 않는다.


그 울음은 지금도 이어진다.

한가한 주말 오후, 한두편의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준비하는 것이 티슈박스를 찾아 옆에 가져다 놓는 일이다. 그리 슬픈 줄거리가 아니어도 나를 눈물나게 하는 이야기는 곳곳에 숨어 있다. 요즘야 소리내어 울는 경우는 드물지만 아무도 없이 혼자 보는 날, 슬픈 대사에 마음이 술렁이고 연기자의 눈물 연기에 동화가 되면 소리를 내어 울 때도 있다.


슬프거나 안타까운 상황에 맞딱뜨리면 전혀 준비되지 않은 눈가가 먼저 데워지고 콧물을 훌쩍이면 이어 눈물이 떨어진다. 그리고 나는 울음을 참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울음에 대단히 관대하다. 또한 나는 눈물이 가져다주는 카타르시스를 내가 운만큼 가감없이 믿는다. 눈물을 거두고 멀리 내다보면 멀리 맑게 푸르른 하늘로 부터 새로운 기운이 내게로 불어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부터 울보였던 나이지만 그악스럽게 울어대는 아이를 보면 한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참기 힘들 때가 있고 간 주변에서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여 분함으로 눈물을 쏟아내거나 얼토당토않은 값싼 감정을 주체못해 훌쩍이는 사람을 대하면 빈정대듯 흘겨보면서 내가 가진 울보라는 이름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에도 불구하고 쉽게 다시 눈물이 나려할 때 그런 나를 위로하는 고마운 한 마디가 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잘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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