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 마술사 촬영감독
2006.03.04 05:01
영상의 마술사 촬영감독
KBS전주방송총국 박선배
3월 3일은 KBS한국방송 창립기념일이다. 나는 올 창립기념일에 20년 근속 기념패를 받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나는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20년 세월을 방송 카메라맨이라는 직업 외길을 걸어왔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면 방송은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방송국은 PD, 기자, 촬영기자, 아나운서, 엔지니어, 행정, 사서, 컴퓨터, 구성작가, 리포터 등과 내가 몸담고 있는 카메라 직종까지 많은 전문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보도국에 소속되어 뉴스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카메라맨을 촬영기자라 하고, 다큐멘터리, 교양, 오락, 드라마, 스포츠 등 뉴스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의 녹화와 생방송에서 촬영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촬영감독 또는 카메라 감독이라 부른다.
촬영감독은 PD나 기자 아나운서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한다. 업무의 특성상 화려한 옷을 입지도 않는다.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항상 간편한 차림이지만 TV 방송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가끔 한 장의 사진이나 한 토막의 영상이 세상의 여론을 뒤바꾸어 놓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 이처럼 백 마디 천 마디의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나 한 토막의 영상이 모든 진실을 대변해주는 경우가 있다.
영상(映像)은 언어이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장 진솔하게 전해주는 언어이다. 통역이나 번역이 필요 없는 만국 공통의 언어이다. 그 영상 속에는 촬영감독의 철학이 담겨있고, 심리상태까지도 내포되어 있다.
촬영감독은 전문가이며 직장인이다. 촬영감독도 다른 직종과 마찬가지로 해마다 실시하는 방송국 공채에서 몇 차례의 시험을 거쳐 선발되는 아주 우수한 인재들이다. 이들은 입사해서 약 1년여 집중적인 교육훈련을 받는다. 기본적인 촬영은 물론 특수촬영 등 배울 것도 많다. 이렇게 해서 한 사람의 촬영감독이 탄생하지만 자유로운 영상의 창작을 위해서는 최소한 10년 이상의 오랜 세월을 갈고 닦아야만 한다.
촬영감독은 예술가이다. 혹자는 촬영감독을 기술자로 생각하는데 카메라라는 기계를 다루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는 단지 영상을 창작하는 도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의 주위에는 수많은 예술 장르가 존재하고 그 표현 도구 또한 각양각색이다. 성악가는 몸의 일부인 목소리로 예술을 표현하고, 무용가는 그의 몸짓 하나 하나가 곧 예술이다. 화가는 붓이나 나이프 등을 사용하고, 조각가는 망치 등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도구를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화가나 조각가가 도구를 사용한다고 해서 기술자라고 할 것인가?
기술은 수많은 공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항상 그 공식에 대입해서 물건을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예술은 비교적 단순한 법칙만이 존재할 뿐이고, 그 간단한 법칙들을 응용하고 작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을 이입하여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예술과 기술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일 것이다. 동일한 사물을 동일한 카메라로 동일하게 촬영했다 하더라도 어느 거리(Distance)에서, 어느 위치(Position)에서, 어느 각도(Angle)에서, 어떤 렌즈(Lens)로 어떤 구도(Composition)로 누가 촬영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촬영감독은 항상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세상을 본다. 글은 현장에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쓸 수 있으나, 촬영은 현장에 가지 않는 한 절대 불가능하다. 그래서 화제(話題)의 현장 가장 가까이에는 항상 촬영감독들이 존재한다. VIP행사 때 촬영감독에게는 국가원수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며, 예쁜 여배우의 가슴 밑까지도 무리 없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촬영감독이다. 지난 해 가을 파리 쁘레따뽀르떼 패션쇼를 촬영하러 갔을 때는 여자 모델들의 탈의실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카메라 덕분에…….
촬영감독은 다재다능하다. 음악회를 촬영할 때는 그 음악의 리듬을 알고, 악기의 음색을 알며, 악기의 이름과 악기의 배치를 알아야 한다. 스포츠 중계를 할 때는 그 경기의 룰을 알아야 하는 것 또한 기본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촬영감독이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영상이다. 촬영감독들은 항상 고민한다. 무엇을 촬영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
촬영감독은 동물적인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스포츠 중계방송을 보면 카메라가 야구공, 골프공을 따라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을 것이다. 넓은 야구장에서 야구공은 하나의 점일 뿐이다. 특히 타자가 친 공이 '딱!'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날아갈 때 촬영감독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 공을 따라간다. 촬영감독이 보는 카메라의 뷰파인더는 그 크기가 작기 때문에 야구공이 깨알보다도 더 작게 보이거나 아예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촬영감독들은 오랜 경험에서 습득한 노하우와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 공을 따라간다.
촬영감독은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이다. 촬영을 다니다보면 가끔 카메라의 무게에 관심을 갖는 사람을 보게된다. "무겁지 않느냐?" "힘들지 않느냐?" 하는 질문들을 한다. 방송국에서 사용하는 ENG카메라의 무게는 보통 8-9kg 정도이다. 결코 가벼운 게 아니다. 들고 다니기에도 무거운 도구이다.
촬영감독들은 그 무거운 카메라를 한 쪽 어깨에 메고 하루종일 촬영한다. 그렇지만 촬영할 때는 무게감을 느끼지 못한다. 초점이 맞지 않은 흐릿한 상태의 사물이 선명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파인더에 들어오는 순간 촬영감독은 숨이 멎는 듯한 희열과 쾌감을 느낀다. 이런 연유로 촬영감독들이 카메라를 메고 촬영에 임하는 순간에는 카메라 무게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촬영감독은 프로다. 촬영감독으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위험한 촬영을 할 때도 많다. 달리는 차에서 몸을 반쯤 차창 밖으로 내 밀고 촬영을 하는 경우도 있고, 헬리콥터에 매달려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아주 높은 크레인에 올라가 촬영하는 경우도 있고, 오물로 뒤덮인 수중을 촬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모두가 위험한 행동들이다. 카메라 감독들은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가? 그것은 보다 생생한 영상을 시청자에게 보여주려는 투철한 직업의식 때문이다.
2년 전 여름 특집 '중국의 붉은 별 음악가 정율성' 제작을 위해 중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북경과 서안을 거쳐 중국 내륙지방인 연안에 갔었다. 연안의 시장 부근을 촬영하고 우리의 분식집 비슷한 허름한 음식점에서, 나와 PD 그리고 중국 인민해방군 대대장 출신 대학교수인 가이드, 이렇게 셋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카메라가 없어진 것이다. 그 당시 우리가 가지고 간 카메라는 ENG 카메라가 아닌 소형의 6mm 카메라였다. 나중에 음식점 여주인을 통해 전해 들었는데, 우리 카메라를 노린 강도 4명이 손님을 가장해 들어와 우리를 등으로 감싸고 여주인에게 빵을 주문한 후, 여주인이 빵을 포장하는 동안 한 남자가 카메라를 몰래 들고 나갔다는 것이다.
음식점 여주인은 그 강도들이 무서워 말을 하지 못하고, 그들 4명이 모두 다 나간 뒤에야 우리에게 사실을 전해 준 것이다. 카메라를 식당 바닥에 놓을 수 없어 우리 옆의 식탁에 올려놓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카메라를 도둑맞은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나갔다. 그런데 누가 강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음식점 앞은 왕복 4차선의 포장도로였지만 터미널 근방이라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고 교통질서가 매우 혼잡했다. 2차선에는 시골로 가는 완행버스들이 줄지어 서서 떠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음식점을 뛰어나와 왼쪽으로 무작정 뛰었다. 왜 왼쪽으로 뛰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뛰면서 생각했다. 어느 누구든 뛰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강도일 것이고 잡기만 해 봐라, 내 그냥 용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300m 정도를 정신 없이 뛰었는데 도망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강도를 찾을 길이 없었다.
사람의 심리란 묘한 것이다. 절망의 상태에서도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뛰어 올 때는 인도로 뛰어왔으나, 돌아갈 때는 줄지어 서 있는 버스의 바깥쪽 즉 차도 쪽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와 정차되어 있는 어느 버스의 뒤를 지나 버스의 옆으로 돌아서는 순간, 그 버스의 모서리에서 누군가와 마주쳤다. 20대 초반의 비교적 마른 체형의 남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남자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장승처럼 꼼짝 못하고 서있는 것이었다. 행동이 이상해서 아래위로 훑어보니 그의 한 손이 윗옷 속으로 들어가 있고 그 곳이 불룩했다. 만져보려고 내가 손을 내밀자, 그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 듯 카메라를 순순히 나에게 돌려주었다.
카메라는 무사했다. 나는 강도의 얼굴을 전혀 몰랐지만 그 강도는 이미 내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길목을 지키며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 강도는 얼마나 놀랐을까? 카메라를 찾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그를 그냥 돌려보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냥 보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그를 바라보는 내 눈에 힘을 주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고 아찔했던 추억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송국 촬영감독들의 카메라는 쉬지 않고 돌고 있다. 산에서, 들에서, 바다에서, 또는 해외의 어느 오지에서…….
<약력>
박선배(pine-60@hanmail.net)
전북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마케팅 전공 경영학 석사)
1985년 12월 : KBS 입사(공채 12기)
1997년 '한국농촌의 어린 왕자'로 제 25회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 수상
2006년 2월 현재 : KBS 전주방송총국 근무(촬영감독)
KBS전주방송총국 박선배
3월 3일은 KBS한국방송 창립기념일이다. 나는 올 창립기념일에 20년 근속 기념패를 받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나는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20년 세월을 방송 카메라맨이라는 직업 외길을 걸어왔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면 방송은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방송국은 PD, 기자, 촬영기자, 아나운서, 엔지니어, 행정, 사서, 컴퓨터, 구성작가, 리포터 등과 내가 몸담고 있는 카메라 직종까지 많은 전문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보도국에 소속되어 뉴스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카메라맨을 촬영기자라 하고, 다큐멘터리, 교양, 오락, 드라마, 스포츠 등 뉴스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의 녹화와 생방송에서 촬영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촬영감독 또는 카메라 감독이라 부른다.
촬영감독은 PD나 기자 아나운서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한다. 업무의 특성상 화려한 옷을 입지도 않는다.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항상 간편한 차림이지만 TV 방송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가끔 한 장의 사진이나 한 토막의 영상이 세상의 여론을 뒤바꾸어 놓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 이처럼 백 마디 천 마디의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나 한 토막의 영상이 모든 진실을 대변해주는 경우가 있다.
영상(映像)은 언어이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장 진솔하게 전해주는 언어이다. 통역이나 번역이 필요 없는 만국 공통의 언어이다. 그 영상 속에는 촬영감독의 철학이 담겨있고, 심리상태까지도 내포되어 있다.
촬영감독은 전문가이며 직장인이다. 촬영감독도 다른 직종과 마찬가지로 해마다 실시하는 방송국 공채에서 몇 차례의 시험을 거쳐 선발되는 아주 우수한 인재들이다. 이들은 입사해서 약 1년여 집중적인 교육훈련을 받는다. 기본적인 촬영은 물론 특수촬영 등 배울 것도 많다. 이렇게 해서 한 사람의 촬영감독이 탄생하지만 자유로운 영상의 창작을 위해서는 최소한 10년 이상의 오랜 세월을 갈고 닦아야만 한다.
촬영감독은 예술가이다. 혹자는 촬영감독을 기술자로 생각하는데 카메라라는 기계를 다루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는 단지 영상을 창작하는 도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의 주위에는 수많은 예술 장르가 존재하고 그 표현 도구 또한 각양각색이다. 성악가는 몸의 일부인 목소리로 예술을 표현하고, 무용가는 그의 몸짓 하나 하나가 곧 예술이다. 화가는 붓이나 나이프 등을 사용하고, 조각가는 망치 등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도구를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화가나 조각가가 도구를 사용한다고 해서 기술자라고 할 것인가?
기술은 수많은 공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항상 그 공식에 대입해서 물건을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예술은 비교적 단순한 법칙만이 존재할 뿐이고, 그 간단한 법칙들을 응용하고 작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을 이입하여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예술과 기술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일 것이다. 동일한 사물을 동일한 카메라로 동일하게 촬영했다 하더라도 어느 거리(Distance)에서, 어느 위치(Position)에서, 어느 각도(Angle)에서, 어떤 렌즈(Lens)로 어떤 구도(Composition)로 누가 촬영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촬영감독은 항상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세상을 본다. 글은 현장에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쓸 수 있으나, 촬영은 현장에 가지 않는 한 절대 불가능하다. 그래서 화제(話題)의 현장 가장 가까이에는 항상 촬영감독들이 존재한다. VIP행사 때 촬영감독에게는 국가원수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며, 예쁜 여배우의 가슴 밑까지도 무리 없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촬영감독이다. 지난 해 가을 파리 쁘레따뽀르떼 패션쇼를 촬영하러 갔을 때는 여자 모델들의 탈의실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카메라 덕분에…….
촬영감독은 다재다능하다. 음악회를 촬영할 때는 그 음악의 리듬을 알고, 악기의 음색을 알며, 악기의 이름과 악기의 배치를 알아야 한다. 스포츠 중계를 할 때는 그 경기의 룰을 알아야 하는 것 또한 기본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촬영감독이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영상이다. 촬영감독들은 항상 고민한다. 무엇을 촬영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
촬영감독은 동물적인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스포츠 중계방송을 보면 카메라가 야구공, 골프공을 따라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을 것이다. 넓은 야구장에서 야구공은 하나의 점일 뿐이다. 특히 타자가 친 공이 '딱!'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날아갈 때 촬영감독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 공을 따라간다. 촬영감독이 보는 카메라의 뷰파인더는 그 크기가 작기 때문에 야구공이 깨알보다도 더 작게 보이거나 아예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촬영감독들은 오랜 경험에서 습득한 노하우와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 공을 따라간다.
촬영감독은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이다. 촬영을 다니다보면 가끔 카메라의 무게에 관심을 갖는 사람을 보게된다. "무겁지 않느냐?" "힘들지 않느냐?" 하는 질문들을 한다. 방송국에서 사용하는 ENG카메라의 무게는 보통 8-9kg 정도이다. 결코 가벼운 게 아니다. 들고 다니기에도 무거운 도구이다.
촬영감독들은 그 무거운 카메라를 한 쪽 어깨에 메고 하루종일 촬영한다. 그렇지만 촬영할 때는 무게감을 느끼지 못한다. 초점이 맞지 않은 흐릿한 상태의 사물이 선명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파인더에 들어오는 순간 촬영감독은 숨이 멎는 듯한 희열과 쾌감을 느낀다. 이런 연유로 촬영감독들이 카메라를 메고 촬영에 임하는 순간에는 카메라 무게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촬영감독은 프로다. 촬영감독으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위험한 촬영을 할 때도 많다. 달리는 차에서 몸을 반쯤 차창 밖으로 내 밀고 촬영을 하는 경우도 있고, 헬리콥터에 매달려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아주 높은 크레인에 올라가 촬영하는 경우도 있고, 오물로 뒤덮인 수중을 촬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모두가 위험한 행동들이다. 카메라 감독들은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가? 그것은 보다 생생한 영상을 시청자에게 보여주려는 투철한 직업의식 때문이다.
2년 전 여름 특집 '중국의 붉은 별 음악가 정율성' 제작을 위해 중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북경과 서안을 거쳐 중국 내륙지방인 연안에 갔었다. 연안의 시장 부근을 촬영하고 우리의 분식집 비슷한 허름한 음식점에서, 나와 PD 그리고 중국 인민해방군 대대장 출신 대학교수인 가이드, 이렇게 셋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카메라가 없어진 것이다. 그 당시 우리가 가지고 간 카메라는 ENG 카메라가 아닌 소형의 6mm 카메라였다. 나중에 음식점 여주인을 통해 전해 들었는데, 우리 카메라를 노린 강도 4명이 손님을 가장해 들어와 우리를 등으로 감싸고 여주인에게 빵을 주문한 후, 여주인이 빵을 포장하는 동안 한 남자가 카메라를 몰래 들고 나갔다는 것이다.
음식점 여주인은 그 강도들이 무서워 말을 하지 못하고, 그들 4명이 모두 다 나간 뒤에야 우리에게 사실을 전해 준 것이다. 카메라를 식당 바닥에 놓을 수 없어 우리 옆의 식탁에 올려놓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카메라를 도둑맞은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나갔다. 그런데 누가 강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음식점 앞은 왕복 4차선의 포장도로였지만 터미널 근방이라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고 교통질서가 매우 혼잡했다. 2차선에는 시골로 가는 완행버스들이 줄지어 서서 떠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음식점을 뛰어나와 왼쪽으로 무작정 뛰었다. 왜 왼쪽으로 뛰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뛰면서 생각했다. 어느 누구든 뛰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강도일 것이고 잡기만 해 봐라, 내 그냥 용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300m 정도를 정신 없이 뛰었는데 도망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강도를 찾을 길이 없었다.
사람의 심리란 묘한 것이다. 절망의 상태에서도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뛰어 올 때는 인도로 뛰어왔으나, 돌아갈 때는 줄지어 서 있는 버스의 바깥쪽 즉 차도 쪽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와 정차되어 있는 어느 버스의 뒤를 지나 버스의 옆으로 돌아서는 순간, 그 버스의 모서리에서 누군가와 마주쳤다. 20대 초반의 비교적 마른 체형의 남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남자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장승처럼 꼼짝 못하고 서있는 것이었다. 행동이 이상해서 아래위로 훑어보니 그의 한 손이 윗옷 속으로 들어가 있고 그 곳이 불룩했다. 만져보려고 내가 손을 내밀자, 그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 듯 카메라를 순순히 나에게 돌려주었다.
카메라는 무사했다. 나는 강도의 얼굴을 전혀 몰랐지만 그 강도는 이미 내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길목을 지키며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 강도는 얼마나 놀랐을까? 카메라를 찾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그를 그냥 돌려보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냥 보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그를 바라보는 내 눈에 힘을 주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고 아찔했던 추억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송국 촬영감독들의 카메라는 쉬지 않고 돌고 있다. 산에서, 들에서, 바다에서, 또는 해외의 어느 오지에서…….
<약력>
박선배(pine-60@hanmail.net)
전북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마케팅 전공 경영학 석사)
1985년 12월 : KBS 입사(공채 12기)
1997년 '한국농촌의 어린 왕자'로 제 25회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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