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탐낸 웃음꾼, 김형곤

2006.03.15 08:14

김학 조회 수:225 추천:55

하늘이 탐낸 웃음꾼, 김형곤
                                                                 金 鶴


"하늘에는 웃기는 재주꾼이 그렇게도 없습니까? 이주일 형님도 양종철 아우도 보내드렸는데 왜 자꾸 코미디언을 데려가십니까?"

코미디언 김형곤 씨가 돌연히 이승을 하직하자 하느님께 쏘아붙인 개그맨 엄용수 씨의 항변이다. 그럴 법도 하다. 인기 코미디언이었던 훌쭉이와 뚱뚱이, 살살이 서영춘, 땅딸이 이기동 등 '웃으면 복이 와요'란 프로그램에서 우리에게 즐거운 웃음을 선사하던 기라성 같은 이 땅의 코미디언들도 모두 이승을 떠났다. 그런데 왜 저승에서는 아직도 이승의 코미디언과 개그맨들을 자꾸 불러 가는지 모를 일이다. 이승은 아예 포기하고 저승을 웃음천국으로 만들려는 게 하느님의 속셈일까? 그것이 진정 하느님의 계획일까?

몸도, 마음도, 삶도 코미디였던 코미디언 김형곤 씨가 어느 날 갑자기 눈을 감았다. 꽃피고 새우는 병술년 3월 둘째 주 토요일, 건강을 지키려고 새벽에 축구를 하고 나서 다시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던 김형곤 씨가 한 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돌연히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직은 마흔 아홉! 젊디젊은 그 나이에 세상을 떠나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그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길 기회를 주었더라면 그는 무슨 말을 남겼을까?

"온 국민이 웃으면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방송국 심야프로그램은 모두 코미디로 방송해야 한다. '웃음의 날'을 제정하고 그 날 하루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웃고 지내야 한다. 늘 웃는 습관을 갖도록 어릴 때부터 연습해야 한다. 준비 없이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

이것은 코미디언 김형곤 씨가 생전에 주장했던 이야기라고 한다. 결국 이것이 그의 유언이 된 셈이다. 지금 생각해도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방송사들이 날마다 심야에 코미디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정부가 웃음의 날을 선정하여 국민이 웃고 살 수 있는 날을 제정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진실로 그런 때가 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웃음은 보약이자 화장품이다. 더구나 남에게 웃음을 준다는 건 얼마나 보람찬 일이랴. 웃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지 않던가. 어린이는 하루에 3백 번이나 웃지만 어른은 겨우 17번 웃는다는 통계가 있다. 웃음이란 게 사람만이 가진 것이지만 평소 충분히 연습을 하지 않아 그 웃음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게 또한 사람이다. 오죽하면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했을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철이 들면서 웃을 일이 자꾸 줄어드는 것인가 보다.

코미디언 김형곤! 나는 그를 무척 좋아했었다. 한 마디로 그의 팬이었다. 그가 누구보다도 나에게 재미있는 웃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표정과 언행은 모두가 코미디였다. 웃음의 배달부 김형곤, 그는 언제나 코미디만을 생각했고, 코미디만을 위해서 살다 간 사람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는 정치풍자 코미디의 선두주자였다. 그 암울하던 군사정부 시절에도 우리는 그의 정치풍자 코미디를 보면서 속으로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코미디언 김형곤이 한때 정치판에 뛰어들어 국회의원에 출마한 적이 있었다. 그가 금 배지를 달고 국회의사당에 들어갔더라면 우리의 정치판은 훨씬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이 여야의원간에 때때로 복싱과 유도를 하는 체육관 닮은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국회의사당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의 낙선은 참 아쉬운 일이었다. 그가 정치에 뛰어든 것은 어찌 생각하면 개그콘서트를 녹화하다 그 차림 그 분장 그대로 거리로 뛰쳐나간 스튜디오 밖 코미디였던 게 아닐까? '회장님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 그가 출연한 풍자코미디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런데 이제는 그가 웃음을 자아내던 그런 코미디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으랴.

코미디언 김형곤은 폭소클럽을 조직하여 무대에 올리면서 동료 코미디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체인점, 이벤트 프로덕션, 연극제작, 빌딩임대 등 사업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했었다고 한다. 미국의 카네기홀 공연과 효도디너쇼 등을 준비하는 등 앞으로 할 일이 태산 같은 만능 코미디언 김형곤을 하느님은 왜 이렇게 일찍 부르셨느냐며 울먹이는 후배 코미디언들의 푸념이 진정으로 팬들의 눈시울마저 자극한다. 남을 웃기던 코미디언도 이승을 떠날 때는 밀린 눈물을 모두 회수해 가는 것일까?

코미디언 김형곤은 축구를 사랑했다고 한다. 축구와 헬스가 자신의 몸무게를 38㎏이나 줄이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워낙 축구를 좋아하기도 했었단다. 미국과 이탈리아 월드컵 때 응원단장을 맡아서 나라사랑 축구사랑을 몸으로 실천했다지 않던가.

공포의 삼겹살 김형곤! 그는 언제나 근엄한 표정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웃음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웃음 전도사였다. 칠판 하나를 소품으로 삼아 강의식 코미디를 여는 등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은 꾀돌이 코미디언이었다고 한다. 내로라 하는 일류 기업들도 그를 초청하여 사원들에게 '웃음경영학'을 보급했다고 한다. 신세대 개그맨들조차도 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추진력에는 혀를 내둘렀다지 않던가.

사라진 천재 코미디언 김형곤! 그는 팬들에겐 웃음을, 코미디언들에겐 용기와 희망을, 가톨릭의대에는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고 태어날 때처럼 아무것도 갖지 않은 빈손인 채 천국으로 떠났다. 대한민국 희극인장으로 이 세상 온갖 인연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묵묵히 우리 곁을 떠났다. 장례식 날, 관 뚜껑을 열고 일어나서 "깜짝 놀랐지?"하며 우리를 놀라게 했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런 우리의 마지막 기대는 끝내 일어나지 않고 말았다. 코미디언 김형곤! 그는 하늘조차 탐낸 타고난 웃음꾼이었다.
                                    (2006.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