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 마량리 해돋이 축제
2006.03.15 06:48
마량리 해돋이 축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급) 이 종 택
어느새 한해의 끝자락에 서있다. 거친 파도를 헤치며 힘겹게 달려온 갑신년을 슬기롭게 마무리짓고, 희망찬 을유년의 새 아침을 맞기 위한 해돋이축제가 열린다는 서해의 땅 끝, 충청남도 서천군 마량리, 외딴 마을을 찾아갔다. 마량리는 지도에서 보면 해변이 하마가 남쪽으로 누워있는 것처럼 길게 뻗어 양쪽에 바다를 품고 있는 독특한 지형 구조로 되어 있어서 한 자리에서 일출과 일몰까지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따른 자연현상으로 12월 20일경부터 약 60일 동안,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의 신비를 볼 수 있는 그 축제마당 현장이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 걸까. 어디든지 색다른 볼거리만 있다면 기어코 보고싶어하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이 추운 날씨에 마량리 일출을 보러 떠났다.
고생을 사서하는 것 같았다. 캄캄한 밤이다. 그러나 차는 익산, 군산을 거쳐 서천으로 달린다. 이정표도 분명치 않은 새벽길을 재작년에 한 번 다녀왔던 짐작만으로 해돋이가 가장 잘 보인다는 서천 해양박물관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직은 깜깜한 밤인데도 어디서 그렇게 몰려왔는지 주차장은 수많은 차들로 꽉 메워져있었다. 모두들 새해 아침 영명(英明)하신 하느님께 각자의 소원을 빌기 위해서 찾아왔으리라. 그러나 해 뜰 시간은 아직도 멀었는데 소망하는 의지를 시험이라도 해 보려는 듯 세찬 바닷바람이 살을 엔다. 나는 방한모에 파카를 둘러쓴 채 눈만 뻐끔히 내놓고 있었지만 견디기 힘들었다. 발을 동동거리며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서 동쪽 하늘이 선홍빛으로 붉게 물들더니 붉은 해가 서서히 강렬한 빛을 발하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가 바로 7시 38분, 순간 일제히 “해가 뜬다!”소리를 질렀다.
적막(寂寞)하고 고요한 이 갯마을에 울려 퍼지는 그 탄성 때문에 서해바다에 사는 고기떼까지도 놀랐으리라. 그 선명한 태양의 빛, 쭉쭉 뻗은 서기(瑞氣)가 순식간에 온 천지를 뒤덮는다. 우주의 기(氣), 하느님은 태초부터 그 영기(靈氣)를 천지만물에 골고루 베풀었으련만, 나는 오늘에야 처음으로 그 기운(氣運)을 받은 것 같다.
두 손을 모아 하느님께 비는 사람, 그 자리에 담요를 펴고 엎디어 기도하는 사람, 해돋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 나는 나라의 안녕과 우리 가족의 이름을 대며 평안을 빌었다. 다시 하늘을 우러러 보니 태양은 황홀한 듯 얼굴을 붉히고 얕게 깔린 구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빛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물 빠진 갯벌에 주저앉은 크고 작은 어선과 고기를 잡으려고 촘촘히 박아 놓은 통나무에도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포구로 내려오니 갯벌은 물결무늬 등고선을 그리며 바닥을 드러내고, 듬성듬성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마다 한 덩이씩 시뻘건 해를 담고 있었다. 어젯밤 하늘을 수놓았던 그 많은 별들이 물 빠진 갯벌에 해가 되어 다시 내려 앉았나보다. 멀리 뱃고동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밤을 새운 어선들이 깃발을 펄럭이며 갈매기 떼와 함께 줄지어 들어온다. 그러자 부둣가는 갑자기 시끌벅적, 어부들은 고기상자를 나르고, 아줌마들의 고기를 다듬는 바쁜 손놀림과 함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동백정 해돋이 축제마당에 찾아가 보니 그곳 특설무대에서는 이미 '새 희망 불 밝히기, 불꽃놀이, 통키타 연주, 사물놀이' 등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관중들은 한 신(scene)이 끝날 때마다 차가움도 잊은 채 환호성을 지르며 치는 박수소리가 파도를 타고 멀리멀리 퍼져 나간다. 북적거리는 행사장 인파를 뚫고 남쪽으로 100m쯤, 거기에는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는 작은 동산이 있었다. 좁은 계단을 타고 중턱에 오르니 양쪽으로 사철 푸른 5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동백나무 9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견디느라 그런 것일까. 그 높이가 겨우 2m, 폭이 3m정도로 숲이라기보다 잘 가꿔놓은 정원수를 보는 듯했다.
더 위쪽으로 오르니 전망대 같은 동백정(冬柏亭)이란 누각이 바다를 향해 호령이라도 하듯이 높이 서 있었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아슬아슬하여 오금이 저렸다. 누각 2층에 올라 바라본 망망한 서해바다는 마치 동해의 정동진을 옮겨다 놓은 것처럼 착각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저 아래 행사장에서 들려오는 농악소리, 구성진 엿장수의 장구소리, 오색 깃발이 파도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동백정 북쪽으로 솔밭 길을 따라 경사진 계단을 타고 조심조심 내려오면 천막식당이 죽 늘어서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 철 이른 주꾸미를 한 접시 시켜놓고 마신 한산 소곡주 한 잔은 꿀맛이었다.
어느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다. 그러나 겹겹이 쌓인 구름에 가려 그 장엄하다는 ‘해넘이’는 보지 못하고 3-4월경에 열린다는 동백꽃 주꾸미 축제 때 다시 만나기로 갈매기들과 약속하고 전주를 향하여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2005.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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