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케의 손목시계
2006.03.12 08:03
올케의 손목시계
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직장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법원사람들' 2월호에 내 글이 한 편 실렸다. 법원행정처 공보관실에서 원고료를 돈으로 받을 것인지 시계로 받을 것인지 묻는 전화가 왔다. '법원사람들'에 부족한 글을 실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데 원고료까지 준다니 너무도 감읍하다. 나는 시계를 선택했다. 올케에게 입학선물로 주고 싶어서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소포가 왔다. 법원의 로고 '정의의 여신상'이 그려져 있고, '大法院'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는 시계였다. 디자인이 세련되고 예뻤다.
올케의 입학선물로 예쁜 가방을 선물하고 싶었다. 비록 올케가 만학도지만 용품만은 대학생 수준의 눈높이로 맞춰 마련해주고 싶었다. 캠퍼스에 있는 동안은 올케가 세상의 잣대를 버리고 순수한 학생신분으로 돌아가 마음껏 학원을 유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올케에게 줄 예쁜 가방을 포장하고 있었는데 법원행정처에서 보내준 시계까지 때맞춰 도착했다. 가방 하나만 달랑 주는 것보다 시계를 얹어서 포장하니 더 풍성했다.
올케에게 줄 선물을 안고 친정으로 달려가는 내 마음은 삼월의 창공을 비상하는 종달새처럼 환희로 가득 찼다. 그간 숱하게 친정에 가면서 늘 올케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지만 그 날만큼은 한없이 설렜다. 올케는 삶은 계란과 구운 가래떡을 내 놓았다. 대접할 게 요것뿐이라며 소찬을 들고 온 걸 몹시 미안해하는 모습에 왜 그렇게 내 마음이 아리던지……. 남루한 마음을 감추며 슬며시 입학선물을 풀어놓았다. 시계를 본 여동생과 엄마가 탐을 냈다. 그러나 어림없었다. 아무리 엄마가 탐을 내도 어림없는 일이었다. 여동생은 올케에게 시계를 주는 것이 아까웠는지,
“뭘 자꾸 주려고 그래? 언니 손목에 차면 더 예쁘겠네!”했다.
올케에게 시계를 주려고 잠시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시계라는 울타리 안에서 상생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초침(秒針)에 맞춰 분침(分針)이 행보를 할 때 시침(時針)은 정확한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초침이나 분침 중 어느 한쪽이라도 협력하지 않는다면 시침은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계로서의 생명은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와 올케의 관계도 분침과 초침 같아지기를 바랐다.
휴대폰이 만연되면서부터 시계는 더 이상 귀한 선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올케는 버거운 농촌살림에 그 흔한 휴대폰 하나 없다.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시계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원고료 대신 받은 의미 있는 시계였고, 또 올케는 개학하면 당장 필요한 용품이었다. 그 시점에 맞춰 법원행정처에서 보내준 시계는 정말 귀한 선물이었다. 시계는 누구에게나 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신분이 귀하게 달라진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였던가? 한국의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시누이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존재였다. 읍소하는 며느리를 더욱 곤경에 빠뜨리는 사람은 때리는 시어머니보다도 말리는 시누이였다. 올케와 시누이의 보이지 않는 견원지간의 관계는 그간 오랜 세월동안 엉킨 실타래처럼 숙명적인 앙숙이었다. 그런데, 이런 한국의 악습을 초월한 내 엄마를 보았다. 엄마와 고모는 우애가 좋기로 이웃 동네까지 소문이 났다고 한다.
고모가 15살 때 엄마가 시집을 오셨는데, 그때 엄마는 19살이셨다. 엄마는 고모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닷새장날이면 할아버지 몰래 곡식을 머리에 이고 이십 리 길을 걸어서 논산읍내에까지 가서 팔았다고 한다. 이렇게 끈끈한 정을 쌓으며 두 분은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를 초월해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고모와 우리 형제들의 관계 또한 유별나게 돈독했다. 도시에서 풍요롭게 사셨던 고모 때문에 시골뜨기였던 나는 도시의 문화를 경험하곤 했었다. 고모부가 발령이 날 때마다 옮겨 사는 고모를 찾아 전국 여러 도시를 돌며 우물 안 개구리신세를 벗어날 수 있었다. 나를 낯선 법원으로 이끌어 주신 분도 고모이셨다.
서로가 얼마나 그리우셨으면 고모부가 정년퇴임을 하자 고모는 어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내려오셨다. 지금 어머니가 사시는 집은 엄마와 고모가 함께 사셨던 애틋한 집이기도 하다. 두 분은 옛날을 회상하며 추억을 더듬고 있는 것일까? 고모는 어머니가 사시는 마주 보이는 곳에 그림 같은 하얀 집을 짓고 노후를 함께 보내신다. 텃밭에 채소를 가꾸며,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을 함께 바라보며 사신다. 채마밭 두렁엔 두 분의 웃음을 닮은 옥수수가 영글고, 둔덕엔 두 분의 마음을 닮은 홍시가 익어가고 있다. 고향에 가면 두 분의 소박한 웃음소리로 평화롭기만 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 올케와 그렇게 아름답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폭격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는 것으로도 유명한‘빅벤’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시계는 내 올케의 손목시계다. 정의의 여신상이 새겨져 있는 법원행정처 공보관실 시계는 영국 국회의사당에 우뚝 선 시계탑 ‘빅벤’만큼이나 자랑스럽다. 지난 여름 유럽연수 때 템스 강가를 탐닉하다가 오후 6시를 알리는‘빅벤’의 종소리를 듣고 내 손목시계를 보니 정확하게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 손목시계 역시 2년 전에 법원행정처에서 보내 준 정의의 여신상이 그려져 있는 시계다.
올케가 입학하던 날, 창공을 쪼개는 꽃샘바람에 봄볕이 파르르 떨었다. 그 황소바람에도 올케의 손목시계는 영롱하게 빛을 냈다. 국악강사의 꿈을 키워나가는 그녀의 포석에 아직은 새벽이지만 곧 여명이 밝아 올 것을 믿는다. 내 올케는 열심히 공부할 것이고, 나는 올케를 위해 매일 기도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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