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2006.03.16 19:14
아름다운 만남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야) 이우송
며칠 전 중학교 동창모임이 있어서 고향인 충남 서천에 다녀왔다. 시골이고 학생수가 적어서 남녀공학이었다. 분기마다 한 번씩 만나는 동창모임은 활기차고 즐거워서 더 기다려지곤 한다. 벌써 졸업한지가 30년이 넘었다. 그 어렸던 동창생들의 모습에서 가버린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곤 한다. 이마엔 인생의 훈장인 주름이 도랑처럼 파여 있고 머리엔 하얀 서리가 내렸지만 만나면 그저 반가운 친구일 뿐이다. 3년 간 제대로 얘기 한 번 해 보지도 못하고 졸업하여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다시 만나게 됐지만 금방 친해져서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기에 바쁘다.
1시간 20분을 걸어 다니면서 한 손에는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엔 단어장을 들고 영어단어를 외우며 혼자 걸어 다녔다. 가다가 재수 좋으면 이웃동네에 사는 선배언니를 만나 함께 가고, 안 그러면 거의 혼자 걸어 다녀야 했던 등·하교 길이었다. 들판을 지나고 깊은 산을 넘어 걸어다녀야 했다. 여름이면 키 큰 미루나무에서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걷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길이라 두려움이 항상 따라 다녔기에 해가 기울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교대로 마중을 나오곤 하셨다.
자전거로 통학하는 오빠가 책가방을 실어준다고 해도 내 책가방은 꼭 내가 들고 다녔다. 버스는 하루에 두 번 다녔는데 비포장도로여서 버스가 한 번 지나가면 뽀얀 흙먼지를 뒤집어써야 했기에 하얀 교복칼라는 저녁마다 붉은 황토색으로 변하곤 했었다. 들판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또 오늘날 내가 마라톤 하프코스(21.0975㎞)를 10회, 풀코스(42.195㎞)를 2회나 완주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에 왕복 2시간 40분이나 걸어 다녔기 때문이려니 싶다.
군무원(軍務員)으로 근무하다 명예퇴직하고 고향에서 축산업에 종사하는 동창회장 친구는 모임 때면 돼지 2마리를 잡아 한 마리는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한 마리는 부위별로 잘라 놓았다가 헤어지는 친구들 손에 한 보따리씩 들려준다.
서울, 대전, 익산, 아산, 전주 등 도시에서 온 친구들을 위해서 그의 부인은 방마다 이브자리를 준비하고 술상을 마련하느라 바쁘다. 또 동창회총무는 자기 집에서 손수 빚은 '한산 소곡주'를 가지고 와서 대령한다. 소곡주는 찹쌀을 100일 동안 발효 숙성시켜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뜨는데 독특한 술맛 때문에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한다. 1,500년 전 백제왕실에서 마시던 술로 한국전통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술로 알려져 있다. 총무는 고향방문 기념으로 한산소곡주 한 병씩을 승용차에 살짝 실어준다.
거실에 둘러앉아 지나간 추억들을 주고받으며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정경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정이 넘치고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중학교 동창모임은 아름다운 만남이다. 우리의 고향에 추억의 모교가 있기에 이루어진 모임이기도 하다. 우리가 재학당시에는 전교생이 360명이었으나 지금은 입학생과 졸업생이 각 25명 정도이고 전교생이 72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오늘날 우리 농촌학교의 현실이다. 시골의 인구가 줄어들고 학생들은 도회지로 자꾸 빠져나가니 농촌학교의 학생수가 줄어들 수밖에…….
우리의 모교인 동강중학교는 충남도교육청으로부터 농어촌 거점학교(영어특성화)로 지정을 받아 방학중에 원어민과 함께 하는 영어캠프가 열려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외국학교와 교환프로그램을 통해 현재 10여 명의 재학생들이 미국과 인도, 멕시코 등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작지만 강한 동강중학교! "자주정신에 살며, 올바르게 알고, 부지런히 행하자"는 교훈아래 같은 학교에서 같은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공부했던 중학교 동창생들의 훈훈한 정을 나이가 들어서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이 아름다운 행복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참 좋겠다. (2006. 03. 17.)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야) 이우송
며칠 전 중학교 동창모임이 있어서 고향인 충남 서천에 다녀왔다. 시골이고 학생수가 적어서 남녀공학이었다. 분기마다 한 번씩 만나는 동창모임은 활기차고 즐거워서 더 기다려지곤 한다. 벌써 졸업한지가 30년이 넘었다. 그 어렸던 동창생들의 모습에서 가버린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곤 한다. 이마엔 인생의 훈장인 주름이 도랑처럼 파여 있고 머리엔 하얀 서리가 내렸지만 만나면 그저 반가운 친구일 뿐이다. 3년 간 제대로 얘기 한 번 해 보지도 못하고 졸업하여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다시 만나게 됐지만 금방 친해져서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기에 바쁘다.
1시간 20분을 걸어 다니면서 한 손에는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엔 단어장을 들고 영어단어를 외우며 혼자 걸어 다녔다. 가다가 재수 좋으면 이웃동네에 사는 선배언니를 만나 함께 가고, 안 그러면 거의 혼자 걸어 다녀야 했던 등·하교 길이었다. 들판을 지나고 깊은 산을 넘어 걸어다녀야 했다. 여름이면 키 큰 미루나무에서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걷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길이라 두려움이 항상 따라 다녔기에 해가 기울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교대로 마중을 나오곤 하셨다.
자전거로 통학하는 오빠가 책가방을 실어준다고 해도 내 책가방은 꼭 내가 들고 다녔다. 버스는 하루에 두 번 다녔는데 비포장도로여서 버스가 한 번 지나가면 뽀얀 흙먼지를 뒤집어써야 했기에 하얀 교복칼라는 저녁마다 붉은 황토색으로 변하곤 했었다. 들판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또 오늘날 내가 마라톤 하프코스(21.0975㎞)를 10회, 풀코스(42.195㎞)를 2회나 완주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에 왕복 2시간 40분이나 걸어 다녔기 때문이려니 싶다.
군무원(軍務員)으로 근무하다 명예퇴직하고 고향에서 축산업에 종사하는 동창회장 친구는 모임 때면 돼지 2마리를 잡아 한 마리는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한 마리는 부위별로 잘라 놓았다가 헤어지는 친구들 손에 한 보따리씩 들려준다.
서울, 대전, 익산, 아산, 전주 등 도시에서 온 친구들을 위해서 그의 부인은 방마다 이브자리를 준비하고 술상을 마련하느라 바쁘다. 또 동창회총무는 자기 집에서 손수 빚은 '한산 소곡주'를 가지고 와서 대령한다. 소곡주는 찹쌀을 100일 동안 발효 숙성시켜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뜨는데 독특한 술맛 때문에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한다. 1,500년 전 백제왕실에서 마시던 술로 한국전통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술로 알려져 있다. 총무는 고향방문 기념으로 한산소곡주 한 병씩을 승용차에 살짝 실어준다.
거실에 둘러앉아 지나간 추억들을 주고받으며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정경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정이 넘치고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중학교 동창모임은 아름다운 만남이다. 우리의 고향에 추억의 모교가 있기에 이루어진 모임이기도 하다. 우리가 재학당시에는 전교생이 360명이었으나 지금은 입학생과 졸업생이 각 25명 정도이고 전교생이 72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오늘날 우리 농촌학교의 현실이다. 시골의 인구가 줄어들고 학생들은 도회지로 자꾸 빠져나가니 농촌학교의 학생수가 줄어들 수밖에…….
우리의 모교인 동강중학교는 충남도교육청으로부터 농어촌 거점학교(영어특성화)로 지정을 받아 방학중에 원어민과 함께 하는 영어캠프가 열려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외국학교와 교환프로그램을 통해 현재 10여 명의 재학생들이 미국과 인도, 멕시코 등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작지만 강한 동강중학교! "자주정신에 살며, 올바르게 알고, 부지런히 행하자"는 교훈아래 같은 학교에서 같은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공부했던 중학교 동창생들의 훈훈한 정을 나이가 들어서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이 아름다운 행복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참 좋겠다. (2006. 03. 17.)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214 | 물이 마르니 정도 마르고 | 김영옥 | 2006.03.28 | 146 |
| 213 | 새로운 출발 | 조종영 | 2006.03.26 | 156 |
| 212 | 조용한 이별 | 김병규 | 2006.03.26 | 131 |
| 211 | 그분 때문에 | 조윤수 | 2006.03.24 | 177 |
| 210 | 수다떠는 남자 | 정현창 | 2006.03.24 | 155 |
| 209 | 전자수필집 제목찾기 | 정현창 | 2006.03.23 | 311 |
| 208 | 꼭 얻어지지 않아도 | 김정자 | 2006.03.23 | 178 |
| 207 | 대한문학 2006년 여름호 김학 수필가 인터뷰 | 탁현수 | 2006.03.19 | 322 |
| 206 | 홈드레스와 몸뻬바지 | 유영희 | 2006.03.18 | 227 |
| 205 | 나는 노무족이다 | 정현창 | 2006.03.18 | 226 |
| 204 | 수필과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며 | 남애순 | 2006.03.17 | 125 |
| » | 아름다운 만남 | 이우송 | 2006.03.16 | 239 |
| 202 | 하늘이 탐낸 웃음꾼, 김형곤 | 김학 | 2006.03.15 | 225 |
| 201 | 충남 서천 마량리 해돋이 축제 | 이종택 | 2006.03.15 | 177 |
| 200 | 마음은 홍당무가 되어도 | 김영옥 | 2006.03.14 | 125 |
| 199 | 소냐의 변명 | 유영희 | 2006.03.13 | 225 |
| 198 | 전자수필집 상재 | 정현창 | 2006.03.12 | 219 |
| 197 | 올케의 손목시계 | 이은재 | 2006.03.12 | 112 |
| 196 | 영상의 마술사 촬영감독 | 박선배 | 2006.03.04 | 188 |
| 195 | 나와 황송문 시인 | 김학 | 2006.03.01 | 1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