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
2006.03.26 23:37
새로운 출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조종영
행촌수필문학회 게시판에 나의 등단을 알리는 소식이 떴다. 내 글이 실린『좋은 문학』30호를 받았을 때에도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김 학 교수님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소개 글을 보며 갑자기 내가 그 주인공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수필가라는 명예스러운 명칭이 내 이름 앞에 붙다니…….
내게 과분한 일이다. 그리고 감사하다! 내가 감사할 일과 그리고 감사드릴 분들이 너무 많다. 가깝게는 내가 살아 있음이며, 또 이 글을 쓸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위해 애써 주시고 마음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조 대령' 이것이 지금까지 나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내 성 뒤에는 항상 군 계급이 부부처럼 세트로 붙어 다녔다. 제복을 벗은 지금도 나를 아는 이들의 그 호칭에는 변함이 없다. 아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호칭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또 하나의 명예롭고 아름다운 호칭이 생긴 것이다.
나는 평생 푸른 제복을 입고 여러 지방을 전전하며 살았다. 한 지방이라 해도 실제 생활 한 곳은 한두 곳에 불과하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16개 시·도 중에서, 4개 시·도를 제외하고는 한 번 이상은 내 삶의 체취를 남겼다. 그런데 전라북도 지역은 내가 근무해보지 못한 네 지방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운명은 감사하게도 나를 전주로 인도하여 주었다.
군복을 벗으면서 더 이상 집을 떠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전주에 오게 된 것은 이미 운명에 계획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수필가라는 명예를 받는 것까지도…….
결국 나의 이 아름다운 인연과 기쁨은, 전주가 나에게 준 큰 선물이다. 그리고 전주가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가장 귀중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와 전주는 제일 늦게 만나서 가장 깊은 인연의 도시가 된 것이다.
이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뜻밖의 값진 선물이다. 작년 7월 전주에 발을 디디며, 남은 인생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사실 문학이란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다른 세상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내 운명의 창고 한 구석에 팽개쳐져있는 아주 작은 재능은 무엇일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수필이라는 영역을 침범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염치없는 침입자를 너그러이 한 가족으로 인정해 준 과분한 은혜를 받게 되었다. 그러니 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기쁨도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를 인정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특히 나의 이 기쁨은 미숙한 졸작을 한 번도 마다 않으시고 지도해주신 김 학 교수님 은덕이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글을 읽고 격려해 주신 문우들과 행촌수필문학회 회원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있어서이다. 사실 한 마디의 칭찬에도 나는 소년 같은 부픈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샘솟았었다. 그러니 내가 이 모든 분들에게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 기쁨의 한쪽에는 두려움도 있다. 명예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나는 화려한 명예 속의 빈 공간을 하나하나 채워가야 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 틈에서, 내 삶을 다듬고 마음을 닦으며 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아름다운수필로 형상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것은 이제 수필가라는 명예뿐인 나의 공간을 가꾸며 채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감사해야 할 모든 분들에게 진정으로 드려야 할 보답인지도 모른다.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니 내가 너무 메마른 삶을 살아 온 것만 같다. 그래서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고 불만스러운 것이 그렇게도 많았나 보다. 이것이 내가 수필을 쓰기 시작하며 알게 된 자신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제야 깨달은 아쉬움은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내 영혼을 항상 감사의 아름다운 향기로 채우며 살고 싶다.
나이 들어 늦바람이 나면 걷잡을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재능도 없으니 늦바람이라도 들어야 수필가라는 명예의 공간을 채울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점점 메마르고 황폐해 가는 내 가슴을 적실 작은 물줄기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능력도 안 되는 과욕은 그것이 나를 괴롭힐 것이 뻔하다. 그리고 내 가슴에 일어나는 감사의 연약한 새싹마저도 아마 밟아 버리고 말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주 소박하게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그 한 가지 행복만으로도 항상 감사하며 살 생각이다.
-등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에게 등단의 기회를 만들어 주시고, 격려와 축하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2006. 3. 25.)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조종영
행촌수필문학회 게시판에 나의 등단을 알리는 소식이 떴다. 내 글이 실린『좋은 문학』30호를 받았을 때에도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김 학 교수님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소개 글을 보며 갑자기 내가 그 주인공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수필가라는 명예스러운 명칭이 내 이름 앞에 붙다니…….
내게 과분한 일이다. 그리고 감사하다! 내가 감사할 일과 그리고 감사드릴 분들이 너무 많다. 가깝게는 내가 살아 있음이며, 또 이 글을 쓸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위해 애써 주시고 마음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조 대령' 이것이 지금까지 나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내 성 뒤에는 항상 군 계급이 부부처럼 세트로 붙어 다녔다. 제복을 벗은 지금도 나를 아는 이들의 그 호칭에는 변함이 없다. 아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호칭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또 하나의 명예롭고 아름다운 호칭이 생긴 것이다.
나는 평생 푸른 제복을 입고 여러 지방을 전전하며 살았다. 한 지방이라 해도 실제 생활 한 곳은 한두 곳에 불과하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16개 시·도 중에서, 4개 시·도를 제외하고는 한 번 이상은 내 삶의 체취를 남겼다. 그런데 전라북도 지역은 내가 근무해보지 못한 네 지방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운명은 감사하게도 나를 전주로 인도하여 주었다.
군복을 벗으면서 더 이상 집을 떠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전주에 오게 된 것은 이미 운명에 계획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수필가라는 명예를 받는 것까지도…….
결국 나의 이 아름다운 인연과 기쁨은, 전주가 나에게 준 큰 선물이다. 그리고 전주가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가장 귀중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와 전주는 제일 늦게 만나서 가장 깊은 인연의 도시가 된 것이다.
이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뜻밖의 값진 선물이다. 작년 7월 전주에 발을 디디며, 남은 인생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사실 문학이란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다른 세상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리고 내 운명의 창고 한 구석에 팽개쳐져있는 아주 작은 재능은 무엇일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수필이라는 영역을 침범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염치없는 침입자를 너그러이 한 가족으로 인정해 준 과분한 은혜를 받게 되었다. 그러니 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기쁨도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를 인정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특히 나의 이 기쁨은 미숙한 졸작을 한 번도 마다 않으시고 지도해주신 김 학 교수님 은덕이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글을 읽고 격려해 주신 문우들과 행촌수필문학회 회원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있어서이다. 사실 한 마디의 칭찬에도 나는 소년 같은 부픈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샘솟았었다. 그러니 내가 이 모든 분들에게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 기쁨의 한쪽에는 두려움도 있다. 명예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나는 화려한 명예 속의 빈 공간을 하나하나 채워가야 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 틈에서, 내 삶을 다듬고 마음을 닦으며 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아름다운수필로 형상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것은 이제 수필가라는 명예뿐인 나의 공간을 가꾸며 채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감사해야 할 모든 분들에게 진정으로 드려야 할 보답인지도 모른다.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니 내가 너무 메마른 삶을 살아 온 것만 같다. 그래서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고 불만스러운 것이 그렇게도 많았나 보다. 이것이 내가 수필을 쓰기 시작하며 알게 된 자신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제야 깨달은 아쉬움은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내 영혼을 항상 감사의 아름다운 향기로 채우며 살고 싶다.
나이 들어 늦바람이 나면 걷잡을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재능도 없으니 늦바람이라도 들어야 수필가라는 명예의 공간을 채울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점점 메마르고 황폐해 가는 내 가슴을 적실 작은 물줄기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능력도 안 되는 과욕은 그것이 나를 괴롭힐 것이 뻔하다. 그리고 내 가슴에 일어나는 감사의 연약한 새싹마저도 아마 밟아 버리고 말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주 소박하게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그 한 가지 행복만으로도 항상 감사하며 살 생각이다.
-등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에게 등단의 기회를 만들어 주시고, 격려와 축하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2006.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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