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자국

2006.04.26 16:45

염미경 조회 수:73 추천:11

첫 발자국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반 염미경



  어렵사리 첫 번째 원고를 끝냈다. 부끄럽게도 밝은 세상에 발가벗은 나의 몸을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글 쓰기를 다 끝내고서도 쉽사리 교수님께 원고를 보낼 수 없었던 심정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수 있으리라. 수필이라 하기엔 아직도 모자람 투성이인 줄 알면서 용기를 낸답시고 나의 아픈 과거까지 들추어가며 나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 보였다. 그게 잘한 일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알몸을 내보이듯 첫 발자국을 어렵게 내딛었으니 이제는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진솔한 글을 쓸 수 있으리라. 한편으로는 조심스런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간절히 바라고 이루어보고 싶은 꿈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내 이름 앞에 수필가란 칭호를 붙일 자신도 없다. 하지만 “열심히 가르쳐 주는 대로 따르다 보면 할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믿고, 무조건 손을 잡아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글을 쓰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나의 삶도 더욱 더 둥글어지고 향기로워 지리라. 선배님들이 써 놓은 깊이 있는 글을 읽으며 부러움에 주눅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려 본다. 더 많은 시간들을 빈 가슴에 채워간다 생각하며 책도 가까이 하고 좋은 분들이 들려주시는 이야기에도 더 활짝 귀를 열어둘 생각이다.

  영원한 후원자인 남편의 소리 없는 응원에 힘을 얻어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는 까닭인지, 매주 수요일 밤이면 딸아이 눈에 비치는 내 얼굴에 생기가 넘치고 젊어 보이기까지 한다니, 변함없는 나의 일상에 찾아 온 또 하나의 기쁨이요 변화다.

  수요일이면 강의실에서 반갑게 마주치는 색다른 인연들……. 손에 쥐어주듯 알기 쉽게 재치 넘치는 강의를 해 주시는 덕분에 매번 우리를 웃게 만드시는 교수님, 연세 지긋하신 동기 분들에게선 넉넉함과 함께 푸근함이 느껴지고, 언니라고 부르는 분들에게선 친근함과 포근함이, 나와 비슷한 또래들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같은 편안함이 느껴지니, 모두들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소중한 인연들이다.

  열려있는 문 앞에서 서성이고 서성이며 보낸 시간들, 등단이라는 두 마디를 들을 때마다 마치 나의 일인 양 가슴이 뻐근해지는 걸 느낀다. 그리고 수필을 쓰는 마음으로 단아한 말씨를 쓰며 순수를 간직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싶은데.......

  어느 책을 읽다가 차곡차곡 개켜 두었던 내 기억 속에서, 우리 꽃차를 마실 때 느낄 수 있다던 다섯 가지 맛을 끄집어 내 본다. "맨 처음 꽃차를 우릴 때는 화려함으로 마시고, 두 번째는 그윽함으로, 세 번째는 빛바랜 아름다음으로, 네 번째는 순수함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시는 꽃차는 자연이라 생각하며 마신다." 했었다. 여러 번 우려내어 마시는 꽃차에서 이렇게 다양한 맛을 찾아내기까지 그 사람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차와 함께 했을까.

  여름날 울타리에 피어난 꽃을 따던 유년의 그리움을 추억하며 마시던 인동꽃차의 향기가 혀끝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오늘도 아득히 먼 곳을 생각하며 한 발 두 발 조심스럽게 내딛는 발걸음.

  나는 특별히 시간을 내어 다도를 배워본 적도 없고 아직까지는 차의 깊은 맛도 잘 모른다. 하지만 코와 혀를 통해 온몸으로 전해지는 향을 음미하며 차를 마시다 보면 마음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너무 좋아 비워버린 찻잔을 앞에 두고서도 쉽사리 일어서지 못한다.

  먼 훗날에 아니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은은한 차향에서 느껴지는 두 번째 맛처럼 나만의 그윽한 향기를 지닌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이렇게 글을 쓰며 주름살 늘어가는 나를 다듬어가고 싶다.

  

                                                             (2006년 4월 7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