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특별한 하루
2006.05.04 08:09
우리들의 특별한 하루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염미경
아침에 기초반 총무인 순애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은 고창 청보리밭에서 야외수업을 하기로 한 날이라 출발하기 전에 미리 만날 시간약속을 하려고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언니, 아직 출발 못했는데 성희언니가 우리 먹을 도시락 다 싸왔어.”
“응?”
수업이 있는 날이면 문자며 전화며 항상 동기생들을 챙기는 귀여운 순애씨, 앞에서 챙기고 뒤에서 챙기고 수고를 마다않는 여러 동기들의 희생으로 함께 얼굴을 마주한지 겨우 두 달이 지났건만 우리 기초반의 분위기는 몇 년씩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편안하고 다정하기만 하다. 야외수업 덕분에 전주까지 수업을 받으러 가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아침시간에 전주에 있는 순애씨는 고창에서 기다리는 나까지 챙기느라 오늘도 바빴을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난 후 청소기까지 돌려가며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 내 모습에 새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김제에서 출발했을 부지런한 성희씨는 이 시간에 벌써 도시락까지 준비해서 전주까지 간 모양인데 그 시간동안 이곳에 사는 나는 무얼 했나.
매년 다녀본 길이었지만 지난 일요일 남편과 함께 사전답사를 한답시고 청보리밭을 두 번째 다녀왔었다. 그리고 남편이 챙겨준 복분자주 술병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면 되는 길이었는데, 현관에 세워 둔 술병을 보자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위안을 삼았다.
전주에서 도착한 일행들과 중간에서 합류하고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에 위치한 청보리밭으로 향하는 도중에 앞서가던 차가 길을 잘못 들어 사전답사 하느라 나를 태워다 주었던 남편의 노고가 그야말로 헛수고가 되어버렸지만, 가까운 길을 두고서 멀리 돌아오느라 배고프다면서도 웃고 떠드느라 재미난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늘에 자리를 펴고 성희씨가 싸온 점심보따리를 풀어놓자 우리들은 다 같이 감탄사를 쏟아냈다. 찰밥에 초밥 그리고 색색이 예쁘게 말아온 김밥까지 성희씨는 집에서 먹는 반찬에 밥만 조금 더 싸온 것뿐이라며 쑥쓰러워 했지만 우리 입속에 넣기 아까운 김밥을 보며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맛깔스런 반찬에 반주까지 돌아가는 행복한 점심시간이 끝나고 준비해온 자료를 보며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귀엽게 웃는 얼굴만큼이나 마음 씀씀이가 예쁜 순애씨는 수업도중 칭찬시간에 박꽃이란 애칭을 얻었다. 우리 동기생들은 나이도 잊은 채 그동안의 수고에 보답이라도 하듯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화창한 날씨에 기온은 초여름 같았지만 양산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보리이삭 물결치는 청보리밭을 거닐며 은숙씨가 만들어 주는 보리피리를 이 사람 저 사람이 불어보았다. 하지만 은숙씨가 불면 소리가 잘나던 피리도 다른 사람 손으로 건너가면 소리가 작아지거나 아예 소리가 나질 않았다. 매력 있는 은숙씨의 말에 의하면 폐활량의 차이라 했다. 그러고 보면 은숙씨는 마라톤을 꾸준히 해 온 사람이니 맞는 말 같다. 하늘과 맞닿은 청보리밭 사잇길에서 어린날의 추억을 회상해 보고 또 다른 추억을 만들기 위해 찰칵 찰칵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푸른 보리밭을 떠나 고창읍에 위치한 모양성답사까지 우리들의 야외수업은 계속되었다. 넓게 펼쳐진 초록물결이 하늘과 맞닿은 청보리밭. 그 곳을 나란히 거닐던 동기생들의 가슴엔 어떤 느낌들이 찾아들었을지 모르겠다.
청보리밭에서 다 같이 어깨를 맞대고 찍은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느 사이 내 가슴 한쪽에 자리를 잡고 들어앉아버린 동기생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른다.
노래를 잘 부르시는 회장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에버그린'이란 노래가 흘러나왔다. 분위기 있는 멋쟁이 회장님, 항상 우리들을 칭찬하느라 바쁘신 자상하고 인자한 미소를 간직하신 전직 교장선생님이셨던 김행모 님, 아내 사랑이 지극하고 청보리밭에서 밀짚모자가 잘 어울리던 강용환 님, 집안에서 제일 어린 학생이라 행복한 놀림을 당하신다는 환갑을 넘긴 왕 언니 김금례 님, 야외수업 날 쓰려고 새로 샀다는 공주 풍 모자가 청순한 소녀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던 순기 언니, 바쁜 일과 중에도 모처럼 반가운 얼굴을 보여주셨던 세련된 오숙경 부회장님, 마라톤 풀코스를 뛴다는 강인한 체력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외모에, 만남을 더해 갈수록 매력을 느끼는 은숙씨, 맛있는 쑥 개떡과 호박죽을 얻어먹은 후유증(?)인지 청보리밭을 사전답사 하던 날 보리개떡을 먹다가도 생각나던 솜씨 좋은 성희씨, 나이를 잊게 할만큼 젊고 세련된 감각에 많은 재주를 가진 숙희 언니,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내 짝꿍이 되고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예쁜 눈웃음을 가진 민영 언니.
야외수업이 있던 오늘, 우리 동기생들은 말 솜씨 좋으신 교수님을 모시고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모양성을 뒤로하고 다음 주를 기약하며 헤어지던 우리들의 가슴속엔 미래와 함께 서로를 생각하는 아쉬움이 청보리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으리라.
2006년 5월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염미경
아침에 기초반 총무인 순애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은 고창 청보리밭에서 야외수업을 하기로 한 날이라 출발하기 전에 미리 만날 시간약속을 하려고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언니, 아직 출발 못했는데 성희언니가 우리 먹을 도시락 다 싸왔어.”
“응?”
수업이 있는 날이면 문자며 전화며 항상 동기생들을 챙기는 귀여운 순애씨, 앞에서 챙기고 뒤에서 챙기고 수고를 마다않는 여러 동기들의 희생으로 함께 얼굴을 마주한지 겨우 두 달이 지났건만 우리 기초반의 분위기는 몇 년씩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편안하고 다정하기만 하다. 야외수업 덕분에 전주까지 수업을 받으러 가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아침시간에 전주에 있는 순애씨는 고창에서 기다리는 나까지 챙기느라 오늘도 바빴을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난 후 청소기까지 돌려가며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 내 모습에 새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김제에서 출발했을 부지런한 성희씨는 이 시간에 벌써 도시락까지 준비해서 전주까지 간 모양인데 그 시간동안 이곳에 사는 나는 무얼 했나.
매년 다녀본 길이었지만 지난 일요일 남편과 함께 사전답사를 한답시고 청보리밭을 두 번째 다녀왔었다. 그리고 남편이 챙겨준 복분자주 술병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면 되는 길이었는데, 현관에 세워 둔 술병을 보자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위안을 삼았다.
전주에서 도착한 일행들과 중간에서 합류하고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에 위치한 청보리밭으로 향하는 도중에 앞서가던 차가 길을 잘못 들어 사전답사 하느라 나를 태워다 주었던 남편의 노고가 그야말로 헛수고가 되어버렸지만, 가까운 길을 두고서 멀리 돌아오느라 배고프다면서도 웃고 떠드느라 재미난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늘에 자리를 펴고 성희씨가 싸온 점심보따리를 풀어놓자 우리들은 다 같이 감탄사를 쏟아냈다. 찰밥에 초밥 그리고 색색이 예쁘게 말아온 김밥까지 성희씨는 집에서 먹는 반찬에 밥만 조금 더 싸온 것뿐이라며 쑥쓰러워 했지만 우리 입속에 넣기 아까운 김밥을 보며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맛깔스런 반찬에 반주까지 돌아가는 행복한 점심시간이 끝나고 준비해온 자료를 보며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귀엽게 웃는 얼굴만큼이나 마음 씀씀이가 예쁜 순애씨는 수업도중 칭찬시간에 박꽃이란 애칭을 얻었다. 우리 동기생들은 나이도 잊은 채 그동안의 수고에 보답이라도 하듯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화창한 날씨에 기온은 초여름 같았지만 양산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보리이삭 물결치는 청보리밭을 거닐며 은숙씨가 만들어 주는 보리피리를 이 사람 저 사람이 불어보았다. 하지만 은숙씨가 불면 소리가 잘나던 피리도 다른 사람 손으로 건너가면 소리가 작아지거나 아예 소리가 나질 않았다. 매력 있는 은숙씨의 말에 의하면 폐활량의 차이라 했다. 그러고 보면 은숙씨는 마라톤을 꾸준히 해 온 사람이니 맞는 말 같다. 하늘과 맞닿은 청보리밭 사잇길에서 어린날의 추억을 회상해 보고 또 다른 추억을 만들기 위해 찰칵 찰칵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푸른 보리밭을 떠나 고창읍에 위치한 모양성답사까지 우리들의 야외수업은 계속되었다. 넓게 펼쳐진 초록물결이 하늘과 맞닿은 청보리밭. 그 곳을 나란히 거닐던 동기생들의 가슴엔 어떤 느낌들이 찾아들었을지 모르겠다.
청보리밭에서 다 같이 어깨를 맞대고 찍은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느 사이 내 가슴 한쪽에 자리를 잡고 들어앉아버린 동기생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른다.
노래를 잘 부르시는 회장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에버그린'이란 노래가 흘러나왔다. 분위기 있는 멋쟁이 회장님, 항상 우리들을 칭찬하느라 바쁘신 자상하고 인자한 미소를 간직하신 전직 교장선생님이셨던 김행모 님, 아내 사랑이 지극하고 청보리밭에서 밀짚모자가 잘 어울리던 강용환 님, 집안에서 제일 어린 학생이라 행복한 놀림을 당하신다는 환갑을 넘긴 왕 언니 김금례 님, 야외수업 날 쓰려고 새로 샀다는 공주 풍 모자가 청순한 소녀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던 순기 언니, 바쁜 일과 중에도 모처럼 반가운 얼굴을 보여주셨던 세련된 오숙경 부회장님, 마라톤 풀코스를 뛴다는 강인한 체력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외모에, 만남을 더해 갈수록 매력을 느끼는 은숙씨, 맛있는 쑥 개떡과 호박죽을 얻어먹은 후유증(?)인지 청보리밭을 사전답사 하던 날 보리개떡을 먹다가도 생각나던 솜씨 좋은 성희씨, 나이를 잊게 할만큼 젊고 세련된 감각에 많은 재주를 가진 숙희 언니,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내 짝꿍이 되고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예쁜 눈웃음을 가진 민영 언니.
야외수업이 있던 오늘, 우리 동기생들은 말 솜씨 좋으신 교수님을 모시고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모양성을 뒤로하고 다음 주를 기약하며 헤어지던 우리들의 가슴속엔 미래와 함께 서로를 생각하는 아쉬움이 청보리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으리라.
2006년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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