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사랑
2006.05.02 07:38
또 하나의 사랑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반 염미경
부처님 오신 날 온 세상을 밝혀줄 연등을 만들려고 절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섰는데 벌써 해가 기울고 있다. 등을 만들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머릿속에 다른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는지 근심도 고통도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듯 생각이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에는 사랑마저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처럼 잊는데, 산을 내려오니 현실은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 다가오고, 많고 많은 잡다한 생각 속에서 난 지금 가슴에 가득히 차오르는 사랑을 느끼고 있다.
‘지금 당장 고백하지 못하면 또 울고싶어질 텐데, 어떡하지?’
집안엔 하루 종일 집을 비운 주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들이 쌓여 있지만 난 눈에 보이는 일들을 외면하려 애쓰며 사랑을 고백하고파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배가 고픈 줄도 잘 모르겠고 밥도 먹기 싫다. 콩닥콩닥 가슴이 설렌다. 내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얼굴이 달아오르며 뿌듯하게 차오르는 행복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이 느낌들을 어떻게 풀어낼까.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을 즐기며 한참 그렇게 눈을 감고 앉아 있었더니 콩닥거리던 가슴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아뿔사, 너무 깊이 빠져있었나 보다. 갑자기 내 느낌을 생생하게 그리듯이 표현해 낼 자신이 없어지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책도 많이 읽어두고 메모도 많이 해 둘 걸.’, 아프다는 핑계로 뒹굴뒹굴 게으르게 보낸 시간들을 거꾸로 되돌리고 싶은 후회가 한없이 밀려왔다.
‘그냥 사랑한다 말하면 되겠지‘. 하지만 가끔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귀한 느낌을 그 한 마디로 표현하고 돌아앉아 버리기에는 어쩐지 아쉬움이 남기에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의자를 살짝살짝 흔들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이리저리 보일락 말락 숨바꼭질하듯 나를 약올리며 숨어버리는 글자들. 머릿속을 그야말로 이 잡듯이 뒤지며 달콤한 단어들을 떠올려 보지만 뱅뱅 돌다 나와 부딪치게 되는 건 역시 아쉬움과 후회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나기 퍼붓듯 달콤한 단어들을 쏟아낼 것 같던 머릿속에선 점점 뚜렷해지는 아픔이 느껴진다. 두통이 시작된 것이다. 뜨거워진 내 가슴이 식어 버리기 전에 내가 가진 열정을 다 쏟아 부어가며 질리도록 사랑을 나누어 보고 싶은데 난 그 때마다 번번이 두통이란 얄미운 녀석에게 발목을 붙잡혀 그 자리에 주저앉듯 항복하고 말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질긴 병마와 싸우던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낙은 잠시나마 아픔이 물러갔을 때 늘 가까이 두었던 책장을 넘겨가며 소녀처럼 꿈을 꾸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견디기 힘든 통증 앞에 그만 무릎을 꿇고 남은 생을 포기하고 싶던 절망적인 순간들. 그럴 때면 고통을 덜어내듯 펜을 들고 가슴에 쌓인 이야기들을 써내려갔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을 채 다 마무리하기도 전에 또다시 고통은 나를 쓰러뜨렸고 결국엔 진통제를 삼키고 죽은 듯이 누워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했다. 아픈 세월 속에서도 그를 놓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는데.
난 거침없이 그와 사랑을 나누며 내 맘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지나온 세월동안 가슴에 쌓아두었던 사연들을 그의 넓은 품안에 모두 풀어놓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오늘도 그가 내 사랑을 호락호락 받아주진 않을 태세다. 몰려드는 피로와 함께 또 머리가 지끈거린다. 마음만 앞서고 정성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넘쳐나는 나의 열정을 모두 쏟아 내기엔 내 몸도 맘도 아직은 무리인가 보다. 몇 날이고 밤을 새워가며 마음껏 사랑을 나누어 보고 싶다. 하지만 더 이상 아픔이 깊어지기 전에 오늘은 이쯤에서 쉬어야할 것 같다. 어렵게 만난 사랑을 앞에 두고 욕심 부리다 또 여러 날을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지내긴 싫다,
차츰차츰 건강을 되찾아 가는 요즈음에도 기운을 써야하는 힘든 일은 엄두도 못 내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누워서 보내는 시간들도 많지만 고통으로 일그러진 삶속에서도 버릴 수 없었던 소중한 사랑이 곁에 있어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젠 내가 가진 행복 속에 서있는 그가 나를 기다려 주리라 믿는다.
때때로 여린 가슴으로 감당해내기 힘들만큼 환희롭게 차오르는 느낌들. 그 느낌을 하나도 빠짐없이 절절히 표현해 내기엔 내가 가진 언어가 가난한 탓에 오래된 나의 사랑 고백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아픔과 고통, 감사와 행복 그리고 사랑까지. 내 가슴에 찾아드는 갖가지 느낌들을 진솔하게 글로 써내려가는 이 기쁨을 무엇과 바꿀 수 있으랴. 기다려라, 나의 사랑 수필아. 내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는 날, 건강해진 몸으로 너를 끝없이 사랑해 줄테니.......
2006년 4월 30일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반 염미경
부처님 오신 날 온 세상을 밝혀줄 연등을 만들려고 절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섰는데 벌써 해가 기울고 있다. 등을 만들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머릿속에 다른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는지 근심도 고통도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듯 생각이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에는 사랑마저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처럼 잊는데, 산을 내려오니 현실은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 다가오고, 많고 많은 잡다한 생각 속에서 난 지금 가슴에 가득히 차오르는 사랑을 느끼고 있다.
‘지금 당장 고백하지 못하면 또 울고싶어질 텐데, 어떡하지?’
집안엔 하루 종일 집을 비운 주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들이 쌓여 있지만 난 눈에 보이는 일들을 외면하려 애쓰며 사랑을 고백하고파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배가 고픈 줄도 잘 모르겠고 밥도 먹기 싫다. 콩닥콩닥 가슴이 설렌다. 내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얼굴이 달아오르며 뿌듯하게 차오르는 행복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이 느낌들을 어떻게 풀어낼까.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을 즐기며 한참 그렇게 눈을 감고 앉아 있었더니 콩닥거리던 가슴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아뿔사, 너무 깊이 빠져있었나 보다. 갑자기 내 느낌을 생생하게 그리듯이 표현해 낼 자신이 없어지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책도 많이 읽어두고 메모도 많이 해 둘 걸.’, 아프다는 핑계로 뒹굴뒹굴 게으르게 보낸 시간들을 거꾸로 되돌리고 싶은 후회가 한없이 밀려왔다.
‘그냥 사랑한다 말하면 되겠지‘. 하지만 가끔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귀한 느낌을 그 한 마디로 표현하고 돌아앉아 버리기에는 어쩐지 아쉬움이 남기에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의자를 살짝살짝 흔들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이리저리 보일락 말락 숨바꼭질하듯 나를 약올리며 숨어버리는 글자들. 머릿속을 그야말로 이 잡듯이 뒤지며 달콤한 단어들을 떠올려 보지만 뱅뱅 돌다 나와 부딪치게 되는 건 역시 아쉬움과 후회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나기 퍼붓듯 달콤한 단어들을 쏟아낼 것 같던 머릿속에선 점점 뚜렷해지는 아픔이 느껴진다. 두통이 시작된 것이다. 뜨거워진 내 가슴이 식어 버리기 전에 내가 가진 열정을 다 쏟아 부어가며 질리도록 사랑을 나누어 보고 싶은데 난 그 때마다 번번이 두통이란 얄미운 녀석에게 발목을 붙잡혀 그 자리에 주저앉듯 항복하고 말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질긴 병마와 싸우던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낙은 잠시나마 아픔이 물러갔을 때 늘 가까이 두었던 책장을 넘겨가며 소녀처럼 꿈을 꾸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견디기 힘든 통증 앞에 그만 무릎을 꿇고 남은 생을 포기하고 싶던 절망적인 순간들. 그럴 때면 고통을 덜어내듯 펜을 들고 가슴에 쌓인 이야기들을 써내려갔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을 채 다 마무리하기도 전에 또다시 고통은 나를 쓰러뜨렸고 결국엔 진통제를 삼키고 죽은 듯이 누워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했다. 아픈 세월 속에서도 그를 놓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는데.
난 거침없이 그와 사랑을 나누며 내 맘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지나온 세월동안 가슴에 쌓아두었던 사연들을 그의 넓은 품안에 모두 풀어놓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오늘도 그가 내 사랑을 호락호락 받아주진 않을 태세다. 몰려드는 피로와 함께 또 머리가 지끈거린다. 마음만 앞서고 정성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넘쳐나는 나의 열정을 모두 쏟아 내기엔 내 몸도 맘도 아직은 무리인가 보다. 몇 날이고 밤을 새워가며 마음껏 사랑을 나누어 보고 싶다. 하지만 더 이상 아픔이 깊어지기 전에 오늘은 이쯤에서 쉬어야할 것 같다. 어렵게 만난 사랑을 앞에 두고 욕심 부리다 또 여러 날을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지내긴 싫다,
차츰차츰 건강을 되찾아 가는 요즈음에도 기운을 써야하는 힘든 일은 엄두도 못 내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누워서 보내는 시간들도 많지만 고통으로 일그러진 삶속에서도 버릴 수 없었던 소중한 사랑이 곁에 있어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젠 내가 가진 행복 속에 서있는 그가 나를 기다려 주리라 믿는다.
때때로 여린 가슴으로 감당해내기 힘들만큼 환희롭게 차오르는 느낌들. 그 느낌을 하나도 빠짐없이 절절히 표현해 내기엔 내가 가진 언어가 가난한 탓에 오래된 나의 사랑 고백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아픔과 고통, 감사와 행복 그리고 사랑까지. 내 가슴에 찾아드는 갖가지 느낌들을 진솔하게 글로 써내려가는 이 기쁨을 무엇과 바꿀 수 있으랴. 기다려라, 나의 사랑 수필아. 내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는 날, 건강해진 몸으로 너를 끝없이 사랑해 줄테니.......
2006년 4월 30일에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274 | 조명택 수필가의 처녀수필집 <섬김의 향기> 출간에 부쳐 | 김학 | 2006.05.05 | 221 |
| 273 | 엎드려 세상 보기 | 정현창 | 2006.05.05 | 75 |
| 272 | 수필반 병아리들의 청 보리밭 나들이 | 박성희 | 2006.05.04 | 88 |
| 271 | 우리들의 특별한 하루 | 염미경 | 2006.05.04 | 64 |
| 270 | 철쭉은 초록잎이 있어서 더 붉다 | 정현창 | 2006.05.02 | 74 |
| » | 또 하나의 사랑 | 염미경 | 2006.05.02 | 72 |
| 268 | 희망의 꿈나무 | 유영희 | 2006.05.01 | 62 |
| 267 | 진달래 아줌마 | 염미경 | 2006.05.01 | 148 |
| 266 | 수필이 마라톤보다 좋은 다섯가지 이유 | 정현창 | 2006.04.30 | 120 |
| 265 | 물파스로는낫지 않는다 | 이종택 | 2006.04.30 | 66 |
| 264 | 청 보리밭에선 모두가 꿈을 꾼다 | 정현창 | 2006.04.29 | 72 |
| 263 | 아름다운 착각 | 조종영 | 2006.04.28 | 71 |
| 262 | 겨울 어느 날 | 염미경 | 2006.04.28 | 66 |
| 261 | 어느 날의 일기 | 강용환 | 2006.04.27 | 69 |
| 260 | 청보리밭에서 법성포까지 | 신영숙 | 2006.04.27 | 106 |
| 259 | 첫 발자국 | 염미경 | 2006.04.26 | 73 |
| 258 | 어느 하룻날의 소회 | 이은재 | 2006.04.25 | 58 |
| 257 | 빗속의 춤꾼 | 정현창 | 2006.04.25 | 67 |
| 256 | 행복선언 | 박성희 | 2006.04.25 | 62 |
| 255 | 가끔 생각나는 그 사람 | 박귀덕 | 2006.04.23 | 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