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일기

2006.04.27 10:53

강용환 조회 수:69 추천:13

어느 날의 일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강용환


*2003. 11. 26. 수요일 맑음*



오늘은 어제보다 몸이 많이 좋다. 어제같이 몸이 불편할 때는 누군가가 따뜻한 차 한 잔을 권하며 위로를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부부들이 살다보면 누구나 자기의 와이프나 남편이 못 마땅한 적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못 마땅하다 못해 이혼까지 해야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한두 번쯤 심각하게 고려해 본 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적이 있었다.지금은 마누라가 헤어지자고 한다면 마누라 치맛자락이라도 붙잡고 제발 함께 살아달라고 애원해야한다고 누구에게나 강조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나이에 새 장가를 갈 수도 없을 뿐더러 또 새 장가를 간다고 해도 처녀를 만나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와이프보다 나은 여자를 만난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미운정 고운정이 든 와이프에게 매달려서라도 백년해로를 해야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산다.


나는 사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사업만했기에 어려운 고비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도 불황에 엄청 시달리고 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의 와이프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 와이프도 나에게 시집와서 처음 몇 년은 별 어려움 없이 살았는데 사업을 확장하려다 보니 가진 것은 조상님이 물려주신 몸뚱아리뿐이라 와이프 친정은 물론이고 돈이 있을만한 동네 아주머니들에게도 빌려왔다. 눈만 뜨면 젊은 새댁이 돈을 빌려달라고 하니 동네 아주머니들도 나중에는 슬슬 피하는 처지가 되었다. 사실 그때 생각해서라도 딴 마음 먹으면 벼락을 맞으리라. 와이프 성격이 활달한 편이라서 동네사람들과 쉽게 어울려 지냈기에 돈을 마련하는 일은 와이프가 도맡았다. 돈을 이곳저곳에서 빌렸는데 형편이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자도 제대로 주지 않자 나중에 동네 사람들은 물론 처가에서도 우리 집사람에게 이자 달라 원금 갚아라 문턱이 닳을 지경이 되자 와이프가 이제 더는 못 살겠으니 위자료를 주면 이혼하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뭐라해도 내가 꿈쩍도 하지않고 또 형편이 쉽게 나아지지도 않을 듯 싶자 위자료를 받고 가려면 영영 이 어려움에서 헤어날 기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나중엔 위자료를 안 받고 그냥이라도 간다고 그랬다.

당신이 지금껏 고생하고 살았는데 그냥 가면 억울해서 어떡하냐, 그냥 보내면 지금껏 몇 년을 살 맞대고 살아온 남편의 도리도 아니고 사람들이 나보고 나쁜 놈이라 할 테니 나를 나쁜 놈 만들지 말고 위자료를 줄 테니 그동안 우리가 번 돈을 계산해보자 했다. 와이프는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돈이 한 푼도 없고 빚뿐인데 계산은 무슨 계산이냐고 눈을 쌜쭉하기에 우리나라 민법에 부부가 결혼해서 살면서 형성된 재산은 와이프가 내조한 공을 인정해서 50%를 아내의 몫으로 본다고 하며, 당신과 내가 살면서 생긴 재산이라고는 빚밖에 없고, 빚도 회계학에서는 자산으로 보니 당신에게 우리 자산인 빚의 50%를 위자료로 줄 테니 가져가라고 했다.

내가 얼추 계산해보니 처가에서 얻어온 돈과 동네빚 및 기타가 50%정도 반반이 되기에 당신의 집에서 가져온 돈만 아프터 서비스 하는 셈치고 당신이 가져가고 나머지는 내가 해결하면 공평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와이프가 도끼눈을 해가지고 나 억울해서라도 이혼 못하고 당신이 돈 벌거든그때 가서 보란듯이 50%를 가지고 이혼을 한다며 부지런히 돈을 벌라고 악을 써서 지금껏 아웅다웅하며 아들 하나에 딸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다. 사실 내가 돈을 많이 벌면 재산을 나누고 이혼을 하자고 할까 두려워 돈을 많이 안 벌고 적당히 벌려고 노력한다.(이거 말이 되나?)

일기를 쓰는 도중에 와이프에게서 전화가 왔다. 몸이 아직도 완쾌가 안 되어 불편한데 보일러에 불 넣었으니 일찍 들어와 뜨신 밥 먹고 이불 속에 들어가 텔레비전 연속극이라도 보자고 한다. 와이프 말대로 지금 바로 집으로 가야겠다. 와이프는 지금 내가 자기 말을 하는 줄 알면 뭐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