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2020.07.18 16:42
가끔씩
느닷없이 넘어질 때처럼 느닷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소나기가 마른 공터를 사정없이 할퀼 때나 시나브로 어둠이 내려 초승달이 혼령처럼 뜰 때
나는 달빛 한 가방 챙겨 떠나고 싶다
미끄덩한 음악이 물컹한 오후를 출렁일 때나 시간이 엿처럼 늘어져 구불거릴 때
나는 누군가의 적이 되어 짜릿하게 맞짱 한번 뜨고 싶다
애기 담요만 한 때 낀 헝겊 위에
자질구레한 것을 파는 가난한 눈을 본다거나
검불 같은 머릿결에 비뚤하니 눈썹을 그린
늙어도 여자인 할머니를 볼 때
나는 또 어디론가 하염없이 달리고 싶어진다
하늘이 아리도록 흐드러진 날은 어느 들풀 닮은 역에서 누군가를 사무치게 기다리다
그가 나오면 깡충 팔짱을 끼고 나풀나풀 국밥집에서 오손도손 뜨건 정을 나누고 싶다
다시 그때가 온다면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 비정함을 용서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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